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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y 21. 2016

핀란드에 대한 오해와 내가 겪은 현실 #2

교육강국 핀란드라는 흔한 말

핀란드 이주를 준비하는 동안 가장 강력한 부러움의 시선을 보낸 사람들은 아이친구들 엄마이다. 교육특구 대치동은 아니지만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동네 엄마들의 교육 열정은 어마어마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교육강국 핀란드로 가는 것이니 아이들 교육은 걱정없겠다는 그들의 근거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경쟁없는 천국 핀란드 아이들의 미소에도 불구하고 OECD 국제 학력평가프로그램(이하, PISA)의 최상위를 차지한다는 핀란드에 대한 동경이다.


PISA는 OECD회원국의 15세(정확하게는 15세3개월 부터 16세 2개월까지)아이들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을 평가하는 지표이다. 실제로 이 평가에서 핀란드는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입시지옥이라는, 초등생의 사교육도 상상할 수 없는 살인적 스케줄과 강도라는 비난의 화살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우리 나라의 성취도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 보아 온 핀란드의 아이들은 마냥 놀고, 즐겁고 시험도 경쟁도 없는 천국의 아이들이라며 우리 아이들을 더욱 가엽게 만든다.


실제로 핀란드 아이들은 시험도 보지 않고 경쟁도 없고 행복한가?

일면, 그렇다. 초등 고학년인 딸들과 딸아이의 친구, 그리고 그들의 손위형제인 중학생을 살펴 보면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몇몇 블러거들이 잘못 전달하고 있는 내용이 있는데 숙제도 없고 시험도 없다는 건 거짓이다.


방과후에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하는 아이는 없다. 엄마표학습이라고들 하는 엄마와 따로 학교공부를 위해 무언가를 집에서 공부하지도 않는다. 여건이 되는 아이들은 각종 스포츠와 댄스, 악기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즐길 뿐이다.


교과과정의 난이도가 한국에 비하면 매우 낮은데다가 선행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에 5학년 아이가 나눗셈을 연습하고 3학년 아이는 곱셈기초를 연습한다. 그러면서 미국처럼 곱셈표를 보고 푼다거나 계산기를 챙겨주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과정이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핀란드에는 시험도 있고 숙제도 있다. 시험을 본 뒤 몇 점 이하는 재시험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점수를 넘었지만 점수가 좋지 않은 아이들은 재시험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재시험을 보는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10점 만점에 6점을 맞았건 7점을 맞았건 5점 넘겼으니 상관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영어시험에서 9점을 맞았음을 은근슬쩍 자랑하는 엄마도 있고 아이들은 항상 모든 과목에 10점 만점을 맞는 한국의 아이가 신기하고 부럽다. 공부잘하는 걸 좋아는 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내 친구는 만날 10점이어도 나는 6점이어도 그게 친구와 나를 줄세우지 않는다.


옆집에 누구는 이번에도 전교1등이더라, 남의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여 내 아이 잡지 않아도 되고,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나 과외선생님을 조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전교1등은 하나인데 모두가 그 신기루를 따라 괴로울 필요는 없는 일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던 일화가 있다. 아이가 집에 와서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힘들어 하더란다. 두어 시간동안 숙제를 했는데 그렇게 오래 책상에 앉아있게 하면 안된다고 선생님에게 항의를 했다. 아이가 숙제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학교에서 덜 배웠기 때문이니 좀더 가르치라 요구했다. 그녀의 요구는 매우 당당했고 이를 받아들이는 선생님의 태도 또한 이해한다는, 내가 좀더 가르쳐야겠다는 긍정의 메세지였다. 이곳에서 공부는 엄마가 스스로 혹은 사교육의 힘을 빌어서라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책임지고 완수하게 하는 미션이다. 부족한 아이는 학교에서 더 가르치고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 특수교육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서비스가 제공된다. 장애가 있다해서 교육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부족해서 쳐지는 사람없이, 모두가 최소한의 학업과정을 습득하게끔 기다려 주고 이끄는 교육정신이다. 경쟁없는 평등교육이 이들의 원천이다. 그래서 우열반은 나뉘지 않지만 유급은 있다. 실제로 작은 아이의 반 친구 중 하나는 작년에도 지금과 같은 학년이었고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유급을 했다해서 열등한 아이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경쟁구도안에서라면 들러리만 서다가 상대적 열등생이 되고 말았을 대부분의 아이들은 최소한의 학업을 성취한 주인공이 된다.


그 결과 전반적인 아이들의 학습성취도는 대단히 낮다.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들도 영어시험에 6,7점이면 그만이다. 나고 자란 핀란드땅의 산과 강을 모를리 없는 아이들의 지리점수도 마찬가지다. 한국아이들의 놀라운 수학저력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니 수학과목을 제외하고 이야기해 본다. 이곳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영어, 지리, 역사과목의 학업성취도를 비교해 보아도 이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는 매우 낮다. 난생 처음 핀란드땅에 와서 핀란드말로 된 외계어와도 비슷한 지명을 그림문자 익히듯 공부한 내딸도 만점을 받는 시험을 그리도 틀려댄다.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의 핀란드 PISA 등급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통제가 심하지 않고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도 학업 성취도와 연결된다. 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이들은 마냥 반길까? Alison의 둘째 아들은 7학년, 우리로 치자면 중1학생이다. 그는 어느날 등교를 거부한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만 하는 많은 아이들때문에 학교에 나가 수업받는 시간이 매우 짜증나고 이런 시간들이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것이 이유다. 실제 그는 일주일 이상 등교를 거부했고 그의 엄마인 Alison은 개선을 촉구하는 면담을 교장선생님과 여러차례 가진 바 있다.


핀란드의 교사는 석사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 영유아를 돌보는 시설의 직원조차도 학사이상의 학위를 요구한다. 교육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 교사는 교실안에서 재량권을 갖는다. 덕분에 교사의 열의와 철학에 따라 아이들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과연 핀란드가 교육의 천국이고 강국인가? 낮은 학업 성취도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학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핀란드의 교육에 열광하는 것일까? 아마 PISA의 성취도 결과를 두고 상당한 수준의 교육성취도를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 낮은 학업성취도에도 불구하고 핀란드학생들이 PISA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뒤쳐지는 사람없이 함께 가는 평등교육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PISA의 시험문제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경시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최저학력평가수준의 평이한 문제부터 레벨별로 문제가 출제된다. 기초과정에서 뒤쳐지지 않고 15세까지 학교를 다녔다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경시문제집을 풀고 교과문제집을 학기당 서너권 이상 풀고 초등5,6학년에는 이미 중학수학을 공부하는 노력없이도 풀 수 있는 문제이다.

PISA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시험대상인 15세의 아이들이라면 9학년까지 마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다. 9학년을 마친 아이들은 대학에 가기 위한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할지,  직업교육을 받은 뒤 대학에 가지 않고 직업을 가질 지 결정하는 큰 시험을 치룬 뒤다. 시험을 보는 아이들은 이 시험을 이미 치룬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누구도 뒤쳐지거나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가 기다려주고 이끌어 왔던 아이들이다.


수년 간 엄마친구아들 또는 옆동의 그 아이와 비교되며 학원과 과외에 지쳐 공부를 내려놓은 대다수의 들러리들이 없다. 핀란드가 PISA에서 높은 성취도를 보이는 가장 강력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초등학교부터 수포자가 나온다는, 대부분의 아이가 시험시작 5분안에 죄다 찍고 엎드려 자더라는 중학교 시험감독을 다녀온 옆집 엄마의 근심과 슬프게 교차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등이 아니어도 최고가 아니어도 관계없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것은 그 누구도 놓치지 않도록 학교가 책임진다는 점에서 핀란드는 교육강국이다. 하지만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핀란드 교육에 대한 열풍으로 핀란드교육방식을 본받겠다는 움직임과 핀란드학교에서 사용하는 수학교재를 구해서 공부시키는 엄마들도 생겨났다. 사회적 풍토가 다른 마당에 방법만 따른다고 해서 핀란드교육의 장점을 맛볼 수는 없다.


핀란드에서 경쟁없는 더딘 교육이 가능한 것은 사회보장제도와 직업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덕분이다. 최고로 공부잘해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어마어마한 스펙을 쌓아 잘나가는 직업을 갖지 않으면 모두가 나가떨어지는 사회, 모아니면 도로 인생이 저울질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경쟁없는 교육이 가능한 것이지 이들의 교수방법이 아이들을 공부잘하게끔 이끄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한국에서 핀란드 수학책을 푸는 것은 참 덧없는 일이다. 핀란드 수학책이 좀더 나은

수학책이라고 할 수는 없음에도 책만 가져다 쓰는것이 무슨 의미일까?


나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나는 지금 핀란드에 살고 있지만, 평생 이곳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사회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할 딸이 둘이나 있다. 그래서 내겐 핀란드의 교육이 매력적이지 않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들이 아이들의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시기가 되지 않도록 엄마가 대신 아이들의 학업을 책임진다. 엄마는 아이에게 일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법과 미래완료진행형을 가르친다. 공부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마냥 놀기만 해도 속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핀란드는 교육강국인가?


교육의 본질과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강국의 정의는 달라질 것이다. 핀란드는 교육강국이지만 이 강점은 핀란드에서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의 인간적인 추억에 대한 뒷감당이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면 나는 이 강점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핀란드가 교육강국이라는 말, 내 기준에 아니다, 다만 평등교육이라는 원칙을 철저하게 구현하는 그리고 사회제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선진시스템이라는 데에는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 나라도 이런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열망한다.


한국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잠시 핀란드에서 교육받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매력적이고 부러운 일만은 아니다.


핀란드가 교육강국이라는 말은 내 현실과 상관없는 막연한 동경이다.



핀란드의 교육철학과 사회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쓴 글입니다. 교육의 내용과 교실안 이야기는 다음 편에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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