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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y 29. 2016

핀란드에 대한 오해와 내가 겪은 현실 #4

복지국가의 이면, 세금

핀란드 이민가긴 어렵냐?

한국에서 기자를 하고 있는 선배가 묻는다.


한선생님, 핀란드에서 살기란 어떤가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얼마 전 아가를 새 식구로 맞이한 부부가 묻는다.


아휴, 거긴 살기 좋쟎아.....나를 잘모르는 사람도 내가 앓는 소리를 하면 열에 아홉은 같은 반응이다.


핀란드, 살기 좋은 나라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내 소득 수준과 소비 패턴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절대 천국은 아니다.


내가 현재 실업자이거나 저소득층이어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핀란드에서 사는 것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 최소한 굶을 걱정 없이 먹고는 사니까...최근 핀란드경제사정이 나빠지고 실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래서 지원금액도 지급기한도 감소했다. 하지만 다달이 집세를 내고 살아왔다면 지원금외에 집세를 보존해준다거나( 물론 지급 상한선은 있다) 직업교육 및 취업연계가 잘 되어 있어 가장이 실직하면서 온 가족이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네 현실과 비교해 볼때 동경해 마땅하다.


내가 중산층이라면? 어느 사회에서나 중산층이 가장 애매한 것 같다. 소득에 따라 세금을 내고 교통범칙금을 내는 구조다 보니 어느 정도 벌어서는 세금내고 난 뒤 쓸 돈이 넉넉치 않다. 게다가 경제규모마저 적어  시장도, 일할 사람도 적다 보니 자연스레 맞벌이를 하게 된다. 그런데 맞벌이를 하게 되면 아이들의 양육이 걸림돌이 되므로 이를 국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핀란드의 사회구조다.


그렇다. 어지간히 벌어서는 세금내고 쓸 돈이 얼마 남지 않는다. 연말정산시 부양가족 공제도 없다. 그냥 버는대로 칼같이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소득세뿐만 아니라 얼마전까지 100퍼센트를 부과하던 자동차세때문에 오천만원짜리 차를 사려면 오천만원의 세금을 내고 결국 일억을 내야 차를 살 수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차를 바꾸지 않고 부품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그날까지 고쳐쓰는 까닭이다.



흔히 핀란드사람들은 검소하다고들 말한다.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검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에 글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김치아저씨 Markus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법인의 대표이며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식지분만도 상당한, 내 기준으로 볼 때 부자인 사람이다. 그는 앞유리가 깨져 금이 간 십오년된 차를 여전히 타고 다닌다. 그마저도 본인이 돈을 주고 구매한 차가 아니다. 회사에서 지급된 차를 이용하다가 약 십오년전에 그 차의 리스기간이 만료되면서 잔존가치의 절반만 내고 계속 쓰라는 제안에 따라 당시 돈 백만원을 주고 넘겨받은 차이다. 자기는 평생 차를 돈주고 사본 적이 없단다. 부자인데 말이다.



부자도 아닌 나는 이십대에 차를 사서 몰고 다녔다. 마찬가지로 부자가 아니었던 남편도 이십대인 대학원생 시절에 첫 차를 운행했다. ( 물론 내가 아는 한 가장 검소한 분 시아버지께서는 평생 차를 사지 않으셨다.) 참 검소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말한다. 회사와 집만 오가면 되는데 그걸 사려고 그만큼의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아... 성품이 검소한건지 세금내는 것이 못내 억울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겉보기에는 참 검소하다.



이들 역시 높은 세금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세금을 적게 낼 방법을 고민하느라 컨설팅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많이 버는만큼 많은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이 결국엔 사회로 돌아간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세금내는 월급쟁이만 봉이고 손해라는 인식은 내가 낸 세금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듯한 국가운영때문이 아닐까 싶다.


핀란드에서는 수입품목에 대한 세금부과역시 높은 세율로 정확하게 부과한다. 핀란드의 자국 브랜드가 한국에서 온 내게 익숙하지 않고 정보를 얻을 만한 곳도 없어 자연스레 내게 익숙한 글로벌 브랜드인 미국브랜드제품들을 구매하려 하지만 지금은 포기했다. 핀란드에 이사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습관적으로 미국의 인터넷 비타민 제품 업체에 60유로 상당의 비타민등을  주문했다. 주문한 물건은 오지 않고 당황스러운 메일을 한통 받았다.


너 미국에서 물건 수입했지? 60유로어치에 해당하는 세금 24 유로를 아래 계좌로 보내라. 그러면 물건 보내줄께. 아래 적힌 기한까지 납부하지 않으면 보관료 및 과징금 얼마가 징수될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24유로를 납부한 뒤에야 귀하신 비타민님을 받을 수 있었다. 비타민이야 안먹으면 그만이라고 해두자. 나는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장복을 해야하는 약이 있어 수년간 복용중이다. 미국에 사는 동안은 최대처방이 가능한 6개월치의 약을 본국의 가족이 영문처방전과 함께 배송해 주었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워낙 악명이 높으니 이편이 수월하다 생각했고 아무 무리없었다. 핀란드는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니 물가가 비싸다 해도 약값정도야 충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병원을 찾아갔다. 공공의료는 대기기간도 길고 의료질이 좋지 않다는 믿기지 않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비싸다고들 하는 사병원을 찾았다. 영문 진단서를 제출하고 해당 내용으로 처방전 받는 정도의 진료비가 얼마나 하랴싶었지만 내가 너무 이 나라를 만만히 보았다.


영문진단서를 제출하고 처방전을 받는데 지불한 비용은 약 십만원, 한달 약값은 80만원가량이다. 한국에 의료보험이 없는 내가 비보험가로 한국에서 구입하면 12만원인 약이다. 어떤 사연으로 6.5배이상 약값이 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년에 약값으로 천만원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는 수없이 한국의 가족에게 연락하여 병원진료를 잡고 약을 배송받기로 한다. 분명 약과 함께 보낸 다른 물품은 도착했는데 박스에서 약만 꺼내갔다. 유럽과 미국외의 해외에서의 모든 약은 반입이 전면금지된단다. 설사 처방전이 있어도 미국과 유럽외에서 발행된 처방전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다. 그들은 내 약을 가져갔고 6개월치 약을 폐기했다. 앉아서 돈을 또 75만원가량 잃었다. 이건 내가 잘 몰라서 잃었다고 치자.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질병이라 보험으로 내 약을 처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핀란드에서 해당 약을 팔고 있으니 여기서만 사먹으란다. 차라리 3개월마다 한국에 방문해 핸드케리가 허용되는 수준의 약을 챙겨오고 싶은 심정이다.


일년에 천만원을 내고 약을 먹어도 부담없는 사람들, 1억짜리 차를 사면서 1억의 세금을 내더라도 그 차를 쓰고 싶으면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의 속마음이야 어떠할지 잘 모르겠으나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그런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세금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알뜰검소한 삶을 살게 된다.


소소한 소비를 통해 삶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면 핀란드는 지옥이다. 근면절약이 몸에 벤 사람이라면 큰 불편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금때문에 소비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난 핀란드가 충분히 싫었다.


그들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살고 있지만 우리 가족이 실업연금을 받고 노후연금을 받을리 없다. 핀란드사람들에게는 먼 훗날의 과실을 기대하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내게는 그런것조차 없다. 그래서 이 나라의 세금이 참 싫다.


어느 나라이건 온전히 그 나라사람이 아니라면 설사 그곳이 아무 조건없는 천국이라 해도 살아가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곳이라면 더욱 그러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그 장소에 살고 있다고 해서 모두 그 복지의 혜택을 나눠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눠줄 수 있는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을 철저하게 나눈다. 세상에서 영주권받기 가장 어려운 곳이 북유럽의 몇몇국가라고 한다. 서로 통하는 이야기이다.


복지국가 핀란드에 가서 살고 싶어요!!!

미안한 말씀이지만 이곳도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런 천국은 아니랍니다. 특히나 당신이 이방인이라면 더욱 그렇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복지국가라는 단어와 사회주의국가라는 말이 유의어처럼 들리기도 하는 혼란을 겪기도 한다.


핀란드는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복지는 당신을( 적어도 나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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