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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Jul 21. 2016

일상으로 돌아가기

핀란드마트 구경합시다

3주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마트에 가서 장보기, 나는 주부니까!


짐을 풀어 한국에서 공수한 먹거리를 냉장고에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나면 끼니 걱정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방학이고 남편은 출장중인 지금의 내게 일상은 오로지 끼니해결인 것만 같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한다. 한결 개운해진 발걸음이 마트로 향한다. 핀란드 산타마을 여행기를 올린 어느 블로거는 S mart, K mart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니 핀란드에서는 왠지 A 부터 Z까지 알파벳을 이용하여 마트이름을 짓는 것이 아닐까 상상했더랬다. 하지만 그의 상상과 달리 알파벳이 마트 이름 첫머리에 붙은 것은 S와 K뿐이다.


마을마다 S market이  더 큰 곳도 있고 K market이 더 큰 곳도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홈 더하기 매장이 더 큰 동네가 있으면 e mart 매장이 더 큰 동네도 있듯이 말이다. 또 한가지, K-city market이 있고 K mart도 있다. S market도 마찬가지.


전자는 우리의 대형마트와 비슷하고 후자는 동네에 좀더 가까이 자리한 규모가 작은 편의점이나 수퍼마켓에 가깝다. 관광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마트는 주로 후자가 많다. 이런 마트들은 시내 중심가나 호텔 주변에 많은 SIWA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우리 집 주변에는 이마저도 없어서 몇 몇 집들과 자연을 뒤로 하고 차를 몰고 장을 보러 나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만 나가면 대형마켓이 여러 군데 있다. 아이들 학교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자주 이용하는 Prizma 역시 이곳 사람들의 일상 한 구석을 담당하고 있다. 이 세개의 마트가 핀란드 마트의 삼대천왕쯤 되려나?


핀란드 마트의 재미있는 점은 채소와 과일을 담는 방법이다. 한국에서는 각 매대에 배치된 점원에게 내가 필요한 만큼을 담아달라고 요청하거나 내가 담은 물품의 무게를 달아 가격표를 부착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본인이 직접 담고 가격표를 출력한다. 아마도 비싼 인건비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품의 이름과 품번이 여기저기 적혀있고 근처에 마련된 저울에서 해당 품번을 누르면 가격표가 출력된다. 오이가 핀란드어로 무엇인지, 양파는 또 무엇인지 몰라 사야 할 식재료가 아닌 품번을 파악할 수 있는 재료만 구입할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주요 식자재와 품목은 대략 알아 볼 수 있어 장보는 데이 큰 어려움은 없지만 우유와 생크림, 연유가 한데 모인 냉장고에서 멍하니 서있어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나 싶다.


여기서 내가 마시던 우유와 유사한 제품을 찾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오이는 kurkku이고 킬로당 2유로 29센트다. 품번은 160번, 오이 한 개에 몇그램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내게는 '오이 네개에 천원'이라고 적힌 한국의 마트가 아직도 훨씬 편리하다.


육류와 어류, 샐러드 등을 주문하고 싶으면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호표를 발행하여 자기 번호를 기다린다.내가 뽑아든 번호표의 번호가 전광판에 뜨면 조용히 다가가 필요한 것들을 주문한다. 물론 이미 포장되어 나온 육류와 어류 등을 구매하는 것은 매대에서도 가능하다. 샐러드 역시 원하는 대로 담아 품번을 누르고 가격표를 부착할 수도 있다.


한국방문동안 음식에 집중했더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그래서 식사대용 샐러드를 구입한다.


가격표를 출력한 뒤 샐러드를 더 담는 사람은 없으려나? 이렇게 각자에게 믿고 맡겨도 되는걸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곤 했지만 지금까지 이와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검사하는 사람도 없고 신경쓰는 사람도 없는데 알아서 정직하게 담고 정직하게 계산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마트 입구의 분리수거 광경, 플라스틱 페트병과 캔, 유리병을 모아 마트입구의 자판기같이 생긴 머쉰에 차례로 넣으면 크기와 종류에 따라 정해진 가격대로 계산된 영수증이 나온다. 이 영수증은 해당 마트에서 물품을 구매한 뒤 현금처럼 바로 사용가능하다. 물품 계산시 카운터에 제시하면 직원은 영수증의 바코드를 스캔한다. 내가 구매한 물품대금에서 영수증에 적힌 금액만큼을 제한 금액만 계산하게 된다.

핀란드 생활 초기, 마트를 들를때마다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주차장이다. 마트 입구에서 가까운 쪽 주차는 장애인과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을 위해 비워둔다. 아이와 함께 장을 보기 쉽도록 베이비 시트가 부착된 쇼핑카트가 충분하게 준비되어 있다.단 한 번도 베이비시트가 부착된 모든 카트가 사용중이어서 마트 입구에 준비되어 있지 않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시트를 이용하지는 않지만 보호가 필요한 어린이들을 위해 초소형 쇼핑카트가 준비되어 있다. 부모가 쇼핑카트를 미는 동안 마트안을 돌아다니다가 다른 카트에 부딪혀 다칠 수도 있고 잠시나마 엄마의 곁에서 멀어질 수 있기에 아이도 엄마옆에서 작은 카트를 밀며 엄마의 큰 쇼핑카트를 따라오도록 배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엄마가 장을 보기 위해 밀고 가는 쇼핑카트와 동일한, 크기만 작은 카트를 밀며 아이들은 부모곁을 지킨다.


작은 시선의 차이지만, 내가 돌아온 핀란드의 일상은 어린이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업그레이드된 일상이다.


신호등의 초록불이 아직 깜빡이고 있음에도 급하게 엑셀을 밟고 건널목을 지나치는 차량들, 지나는 사람이 없다해도 엄연히 초록불인 건널목앞에서 신호대기하는 내 뒤에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대던 운전자들, 어딜가나 바쁘고 복잡했던 지난 3주간의 우리 모습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비단 국토와 인구밀도의 문제만은 아닌, 성숙한 사회제도와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우리의 모습이다. 반가운 얼굴도, 내 입맛을 사로잡는 화려한 음식들도 두고와 아쉬움 가득하지만 차분하고 평화로운 나의 일상도 나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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