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스 Jul 29. 2016

부족해 보아야 행복을 알게 되더라

해외살이의 곤궁함

한국에 방문한 사이 우리 집 냉장고에 조금 남아 있던 김치는 묵은지 수준으로 변해 버렸다. 독일에서 핀란드까지 기본 배송기간 4일과 해외배송이라 수요일까지만 배송을 해주는 독일의 한인마트의 정책상 주말을 이용해 필요한 식자재를 주문한다. 통상 주말에 물건이 입고되기에 운이 좋으면 싱싱하진 않아도 나흘의 배송기간을 견뎌주는 무나 시금치 등은 구할 수도 있다.


김치와 두부를 잔뜩 담고 야채코너를 둘러보니 꽈리고추와 부추가 올라와 있다.


웬일이야!!!!! 작년 9월에 한 번 주문해 보고 근 1년만에 보는 꽈리고추다. 조금 시들해진 상태로 받아볼지언정 꽈리고추와 멸치를 넣고 볶은 매콤짭짤한 맛을 상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는다. 부추전을 못먹은지 일년이 넘은 것 같다. 한 단을 사다 놓으면 전도 해먹고 부추김치도 담궈 먹어보지만 먹성이 좋지 않은 식구들 덕에 절반은 물러져서 버려지던 그 부추가 왜이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부추도 담자.


문어, 낙지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돌처럼 깡깡 얼려 파는 냉동낙지라도 주문해야 겠다. 아무리 아이스박스에 담아 배송을 해주어도 받아볼 즈음에는 많이 녹아있어 바로 데쳐 반찬을 해야 그나마 맛볼 수 있는 낙지볶음.. 냉동이어도 좋으니 많이 사서 냉장고에 넣어둘 수만 있다면 좀더 자주 해줄 수 있을텐데 한 달에 한 번, 독일마트에 주문할 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반찬이다.



미국에 살 때 역시 식자재가 부족하다며 장을 볼 때마다, 식사 준비를 할 때마다 푸념을 하곤 했다. 지금 이곳 핀란드에서 지내다 보니 미국은 천국이었구나 아쉽고 그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지낼 때도 늘 같은 고민을 했었다.


장을 봐도 살 게 없어... 뭘 잔뜩 사와도 반찬은 늘 없어...


지금 마음같아서는 한국의 마트 식자재 코너가 보물창고처럼 여겨지는데 말이다. 아이들 자는 동안 새벽에 홀로 나서 사냥하듯 장을 보던 나의 놀이터 ' 양재 하나로 마트' 는 여전히 잘있는지, 목요일마다 아파트 한 켠에 열리던 목요장터의 과일은 여전히 달고 맛있는지... 그리운 내 한국 생활의 단편들


부족해 보아야 만족을 알고 행복을 아는 조금은 어리석은 궁한 살림을 오늘도 이어나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