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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03. 2016

실패 없는 잡채의 핀란드정복

한국음식 소개 두 번째

나의 포트락 파티 단골 메뉴는 단연 잡채다. 미국에서 살던 집 뒷문을 열면 넓은 잔디와 바베큐 그릴이 있고 그 너머에 호수가 있어서 바베큐 파티하기에 정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인은 물론 브라질, 콜롬비아, 칠레, 에콰도르, 일본, 중국, 러시아, 카지흐스탄, 터키, 인도 등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교류하던 나는 가족 모임뿐만 아니라 이 친구, 저 친구 다 부르는 다국적 모임도 종종 가졌는데 바베큐외 준비할 한국음식으로 잡채만한 것이 없더라... 외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는다는 음식 중, 불고기나 닭강정은 바베큐 고기가 있으니 준비하고 곤란하고 김밥도 왠지 생일파티나 소풍갈 때 내놓곤 했기 때문에 우리 집 뒤로 부르면서 김밥을 내놓기는 어색했다.


잡채를 맛 본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 들고 금방 잡채와 사랑에 빠져들었다. 잡채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친구들과 그의 소개로 찾아오거나 연락해 오는 경우를 수십 번 이상 경험한 뒤 나는 깨달았다. 외국인에게도 잡채는 먹힌다!


핀란드에 와서 친구들과 가끔 브런치나 파티를 하곤 하는데 빠짐없이 잡채를 내놓곤 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모임을 우리 집에서 했는데 크리스마스와 어울리진 않지만 우리 집에서 모이니 한국음식으로  상차림을 준비했다. 물론 포트락이었으므로 각자의 크리스마스 요리를 준비해 올 테니 입맛이 안맞으면 본인이 들고 온 음식을 먹으면 된다. 나 역시 외국인 가정에 식사초대를 받거나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 한국 음식을 준비해서 가져 간다. 만에 하나 모든 음식이 입맛에 안맞으면 먹으려고 말이다.


크리스마스 정통 요리인 이 칠면조를 준비해 온 Alison이 고기를 잘라 나누는 것은 전통적으로 남자의 일이라며 나의 남편을 불러 칼자루를 쥐게 했다.

이런 저런 자리를 통해 한국음식을 한 두번 맛본 친구들은 특히 잡채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가장 강한 열망의 Alison이 잡채배울 사람 모여!!!! 소집한 뒤 나를 본인의 부엌으로 초빙하였다. 이렇게 하여 독일, 핀란드, 영국( 정확히는 웨일스인데 웨일스출신이어서 친해진 사연은 차차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아주머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잡채를 직접 만들어 보는 잡채특강의 날!


화보 촬영을 위해 셋팅된 북유럽스타일 부엌이 아닌 매우 현실적인 핀란드 가정의 부엌이다. 한국에서는 근래 북유럽디자인, 인테리어가 유행이라며 인터넷의 사진들을 보여주면 핀란드 아주머니들은 그건 사진에서만 가능하다며 웃는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살면서 그런 모던하고 세련되며 깔끔한 주방을 유지하지 못하는 나는 적지않은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끼곤 했는데 핀란드 가정의 몇몇 부엌을 살펴 본 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며 마음을 놓게 된다.


핀란드의 부엌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비밀이 있다. 바로 밑바닥이 뚫린 천장... 이 천장 아래는 식재료를 씻거나 설겆이를 할 수 있는 씽크대가 있고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릇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두듯 이 찬장에 올려 두면 씽크대로 물이 빠진다. 우리 집 부엌은 이런 구조가 아니었고 핀란드가정에 초대되어도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그 집 싱크대에서 설겆이를 하고 찬장밑바닥까지 들여다 보지는 않기 때문에 Alison의 부엌에서 처음 목격하였다.


'Susanna야! 이리 와봐 Alison 찬장 엄청 신기해!'라며 Susanna를 불러서 보여줬더니 '니네 찬장은 안이래? 내 찬장도 이래.. 우리 엄마찬장도.... 동생네 찬장도...' Susanna나 Alison은 우리집 부엌을 드나들면서도 찬장 밑바닥은 들여다 보지 않아 내 부엌 찬장이 자기네들 것과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거다. 나 역시 Alison의 집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날 처음 목격한 것과 비슷한 이유.


'니네 집 지은 집주인이 너무 모던했나보다... 넌 설겆이 어떻게 하니......???'


'개수대 위 찬장에 식기건조대가 설치되어 있긴 한데 그 아래 물빠지면 찬장나무 상하지 말라고 금속재질의 무슨 받침이 있어.. 가끔 그거 햇볕에 말려주거나 뭐 식기세척기에서 말린 뒤 올려놓기도 해'


'어머나 안됬다.......'


한국가서 내 부엌공사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 찬장을 설치할 것이다!!!!!!


씽크대쪽에서 찬장을 올려다 보면 찬장 밑바닥이 없고 그대로 건조대가 보인다. S자 고리에는 고무장갑이나 수세미를 걸어 물기를 뺀다. 넘나 유용해 보인다. 부럽다.


Alison의 부엌에는 신기한 것이 또 한 가지 있었는데 씽크대쪽 말고 다이닝룸쪽에 아일랜드 테이블에 그 비밀이 있다. 물론 아일랜드 테이블아래 공간은 수납이 가능하다. 재미있는 것은 테이블 위 공간도 수납이 가능한 찬장을 천장에 고정시켜 매달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찬장은 부엌쪽에서도 열 수 있고 다이닝룸쪽에서도 열 수 있도록 양 면에 문이 달려 있다. 나는 이것도 너무 신기해서 부엌에서 문을 활짝 연 뒤 Susanna에게 다이닝룸쪽 문을 열게 하여 뻥 뚫린 찬장을 통해 얼굴내밀고 악수도 하고 손흔들며 놀았다. 저게 왜 신기할까 잘 이해는 안되었을 테지만 너무나 즐거워하는 내 모습에 같이 손흔들며 놀아 준 Susanna야, 정말 고마워...

커다란 사각 테이블에 아주머니 넷이 둘러 앉아 직접 만든 잡채를 시식한다. 잡채가 처음인 청록색 점퍼의 Julia는 조심스럽게 덜어 맛을 보더니만 결국 본인 앞에 놓인 접시에 담겨 있던 잡채를 혼자 다 비웠다.


잡채는 핀란드에서도 조용히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정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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