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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04. 2016

먹고 살기힘든 이야기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진다


잘 불린 콩나물콩과 숙주콩에 물을 주며 혼잣말을 한다.

그땐 반찬거리 없다고 불평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미국은 천국이었어....

차를 타고 조금만 달려가면 시카고 외곽에 위풍당당한 에이치마트가 있었으니 어지간한 식재료는 대부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품질과 신선도의 문제가 있거나 다소 비싸기는 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버티는 지금의 내게는 그곳이 천국이었다. 굳이 에이치마트까지 가지 않아도내가 살던 마을에는 서너개의 한국식료품점이 있어서 두부, 김치, 고사리, 시금치, 부추, 콩나물, 무..... 등의 반찬거리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콩나물반찬을 먹겠다고 콩마물콩을 불려 물을 주고 있다. 나물은 말린 나물을 종류별로 한국에서 공수해 하루 종일 불려야만 조금은 질긴... 나물반찬으로 탄생한다. 말린 가지, 말린 호박, 말린 무청, 말린 무, 말린 버섯, 말린 고사리... 내 보물들이다.


새로 만든 반찬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 식구들에게 입맛에 맞는 식재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식사준비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고단한 일이다.


안먹거나 말거나 있는 반찬 주면 되지, 어떻게 매끼 새 반찬을 만드니~

야! 연달아 같은 국먹으면 어때서 국을 두세가지씩 끓여 놓냐~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넌,너무 밥에 집착해~' 라고 한다. 부엌일의 고달픔으로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이런 말까지 했다. ' 당신, 강박이야.... 우리 그리 잘먹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지..'


뭐라고?!?' 기껏 잘 먹여놨더니 하는 소리 보소....

내가 음식준비에 강박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된데에는 오래 전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가던 날의 눈물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두 아이맘으로 직장에 다니던 나는 선생님의 알림수첩에서 읽었지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그만 소풍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새벽에서야 아이의 소풍을 떠올린 나는 냉장고를 열고 아무리 고민을 해도 도시락을 싸줄 수 없었다.


아침일찍 김밥00이라는 김밥가게에 들러 ' 애기가 먹을 거니까 작게 말아주세요'라며 김밥 한 줄을 주문했다. '그래도 같은 값인데 작게 말아주면 밥이 덜 들어가지' 김밥을 말던 아주머니는 새로 말아주기가 번거로워 그러셨는지, 같은 돈 받으며 재료를 적게 쓰는게 민망하셨는지 머뭇거렸다. ' 괜찮아요... 어린 아이가 먹을거라 작아야 해요...'


김밥가게에서 천원주고 산 김밥이 크기까지 커서 입안에 가득 넣고 우물거릴 아이 모습은 상상하기 싫었나 보다. 집에 와서 예쁜 도시락통에 다시 담고 삶은 달걀을 까서 넣으면서 왜그랬는지 왈칵 눈물이 났다. 그깟 김밥이 대수가 아니건만, 그냥 아이에게 신경도 못쓰고 직장일을 한답시고 정신을 놓고 사는... 그러면서도 하루하루가 전쟁같고 살얼음같았던 내 처지가 억울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양육을 도와주는 분이 계셨음에도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렇게 수년을 더 버티고 큰 아이가 입학을 하게 될 무렵, 남편은 가족의 미국행을 이야기하였고 나는 고민끝에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처럼 지쳐있을 때 결단을 하게 될 어떤 구실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퇴사를 하면서 나는 다짐을 했다. 먹는 것 만큼은 내 손으로 잘 해먹여서 건강하게 키우겠다고... 그 다짐은 수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유원지나 바깥 음식보다는 집밥을 먹이기 위해 도시락을 싸고, 인스턴트 식품, 패스트 푸드 섭취를 최대한 제한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식사 역시 비타민 섭취를 위한 반찬과 단백질을 위한 고기나 생선반찬, 칼슘섭취를 위한 건어물 반찬을 골고루 올리려 매끼 반찬을 준비한다. 이렇게 반찬을 준비하다 보니 딱 한 접시 정도의 양만을 조리하는데도 식사를 하고 나면 남는 반찬들이 생긴다..


식재료가 너무나 귀한 이곳에서는 남는 반찬도 식재료가 되어야 한다. 먹고 남은 고사리나 멸치볶음은 다음날 잘게 다져 주먹밥을 만들고 나물류는 모아서 이삼일 후에 가짓수가 제법 되면 비빔밥을 하고 먹고,남은 불고기는 다져서 불고기삼각김밥의 재료로 쓰고, 남은 오징어채는 양배추볶음을 김밥에 넣기도 하는 등 최대한 남은 반찬을 활용해 다른 음식으로 내놓는다.


어제 저녁에도 멸치볶음이 조금 남았다. 전날 만든 명엽채조림도 조금 남았는데... 어쩌나.... 그런데도 오늘 저녁에는 땅콩을 조렸다..명엽채를 잘게 잘라 땅콩조림과 멸치볶음과 한데 섞었다. 버릴 수 없다....한국에서 진공포장하여 공수해 온 것들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버리지 못한다. 다시 내놓으면 먹지 않는 식구들을 원망하며 한데 섞는다. 생각외로괜찮다

그래그래 요령껏 하자....



어제 밤에는 자기 전에 말린 가지를 불렸다. 말린 가지로 가지볶음을 하면서 저녁에 먹을 찌게를 끓이는데 어제 먹고 남은 된장국이 신경쓰인다. 버리기엔 많고 다시 내놓기엔 양도 애매해서 말린 새우를

잔뜩 넣고 끓인 된장국을 가지볶음에 부어 은근한 불에 조렸다. 새우향이 살짝 나는 된장양념이 제법 가지와도 어울린다.



저녁에는 버섯을 많이 넣은 김치찌게를 끓여 먹었기 때문에 내일 아침 먹을 맑은 국을 끓이러 이만 부엌에 나가봐야 할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었으니 내일 아침에는 북어국을 준비할까....맑은 된장국을 끓일까...자기 전에 콩나물에 물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주부에게는 끼니걱정이 가장 큰 걱정이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데 혼자서 마음앓이하다가 밥잘해먹이겠다고 결심까지 한 내게도 끼니걱정은 정말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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