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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03. 2016

핀란드에서 김치 담그기- 김치연대기

한국음식 소개 첫 번째

큰 아이 임신 막달에 내 몸무게는 당시의 남편 몸무게와 앞자릿수가 같아질 지경에 이르렀다. 임신 중독도 아니고 임신초에는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해 출근길에 실신하여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간 적도 여러 번일 정도로 잘 먹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는데도 어쩌다 보니 '6'으로 변한 몸무게는 '7'에 까지 이르렀다. 그때만 해도 아기를 낳기만 하면 원래 몸무게로 저절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이를 낳고 아이와 양수의 무게만큼만 빠져나간 곰돌이 푸우 같은 내 몸을 두어 달 바라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당시는 지금처럼 눈치보면서라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때가 아니었으므로 석달의 산휴동안 많은 것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체중감량은 할 수 없는 기간.. 적어도 두세달은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충고와 정보를 무시할 수 없어 둥그런 나머지 바닥에 앉으면 뱃살들이 바닥에 함께 퍼질것만 같은 상태로 산휴기간을 지냈다. 하지만 석달 산휴가 끝나고 출근을 해야할 시점이 다가오자 당장 출근할 때 입을 옷이 걱정스러웠다. 옷장을 보고 한숨 쉬고 억지로 구겨넣어 보았다가 절반도 안들어가는 옷을 던져 놓길 여러 날... 결국 집에는 입고 나갈 수 있는 옷이 없음을 깨닫고 남편과 함께 의류 아울렛에 들렀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살이야 산후조리마치고 빼면 되니 울 일 아니라고 위로하는 남편의 말도 와닿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을 정말로 뺄지... 아침, 점심 반공기의 식사... 점심이후엔 물만 마셨던 것 같다. 그리고 매일 점심시간 남편은 나를 불러내 회사 뒤에 자리한 산에 올랐다. 같은 연구소에 근무했기에 가능했던 남편의 조력이었다.


난생 처음 운동이란 것을 시작했던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이 죽을 듯이 힘들고 싫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 몸이 영영 내 몸이 될거란 생각과 점심시간 5분전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덕분에 빗줄기가 제법 뿌리는 날에도 산엘 올랐다. 저녁에는 회사에서 식사를 하고 근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운동을 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연구소 지하의 헬쓰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그렇게 3주가 지나니 내 몸무게 앞자리는 다시 '5'를 가리켰고 중간중간 정체기가 오기도 하고 살이 빠지는 속도도 더뎌디긴 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계속 빠져 처녀적 몸무게 근처까지 뺐던 것 같다. 물론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가지 못한 채 둘째를 임신했고 산후 감량은 다시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그 때의 몸무게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00님, 올림픽 나가세요?!?!?'

'오늘 30도도 넘어요~ 어딜 가세요~ 이런 날 밖에서 운동하다 죽어요!'

' 아이구, 이제 고마 빼시고 우리 와이프나 어찌 좀 해주세요... 덩치가 산더미야'

더이상 뚱뚱하지 않은 적정체중을 가진 내가 덥거나 비가 오거나 빼먹지 않고 점심마다 산에 오르는 것을 보고 동료들은 한 마디씩 했다.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컨디션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 시절. 더이상 체중감량이 아닌 몸상태를 위해 운동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체중감량이 아니라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나는 두 아이의 육아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모토로 할만큼 널럴하지 못한 직장을 다니면서도 점심시간을 활용한 운동을 꾸준히 했다. 미국에 이사가서 시차적응과 기본 짐을 정리하자마자 스포츠센터를 방문해 가족회원권을 끊었는데 아마 그 시점이 미국도착 후 일주일도 안된 때였던 것 같다.


핀란드에 와서는 두세달동안 마땅한 운동 장소를 찾지 못해 애가 탔다. 아이들 등하교를 위해 운전을 해줘야 하니 동선안에 있었으면 좋겠고 역시나 같은 이유로 항상 차를 몰고 나서야 하는 까닭에 주차가 용이하고 무료여야 하며 오전 시간 대에 수강할 수 있는 그룹레슨이 있는 곳이어야 했다. 핀란드에는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저녁시간 레슨이 많은 편이다. 전업 주부로 적당히 즐기며 편하게 살기엔 한국이 최고로 좋은 것 같다. 물론 직장이나 학업 등 다른 것을 병행하려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지지만...


간판은 모두 핀란드어이고 수소문끝에 찾아낸 센터의 웹사이트 역시 핀란드어뿐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애를 태우던 중 적당한 센터를 기적처럼 발견하고 일년 회원권을 등록했다. 그곳에서 운동하던 중 놀라운 홍보영상물을 보게 되는데 이름하여'김치연대기'


한국의 도시들과 전통문화, 음식을 소개하는 홍보영상이었는데 제목은 '김치연대기'


나와 교류하는 친구들은 주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만나 마음이 맞아 서로 챙기는 사이로 발전한 경우라 국제학교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이곳 국제학교에는 외국에서 살다가 온 핀란드아이들, 외국에서 핀란드로 온 외국 아이들이 우선 입학을 하고, 그외 정원의 여유가 있으면 핀란드아이가 입학을 한다. 핀란드에서도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아이 영어교육에 힘쓰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게다가 시의 재정으로 지원을 하여 국제학교임에도 무상교육이다.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라 하여 우리 가족도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무리해 가면서 입학시기를 맞추어 이주했다.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핀란드 아주머니들은 본인들이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에 이주해 간 초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하곤 했고, 너를 이해한다며 뭐든지 물어보라고 친절을 베풀어 주어서 친해기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뭐든지 물어봤다. 그녀들에게...


그런 그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김치를 비롯한 한국음식. 특히 중국에 거주하다 돌아온 아주머니들이 많은데 중국은 한류의 영향이 미치는 곳이어서인지 중국에서 한국음식과 문화를 접해봤다며 관심을 표했다. 그 중 김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Paivi.


Turku에서는 김치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는 셈이라 김치가 그리워도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작은 규모의 아시안마켓에 아주 가끔 작은 사이즈의 종0집 김치가 들어오긴 하지만 냉장고 한 켠 작은 사이즈의 김치포장을 찾아내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근해도 열에 아홉은 냉장고에 김치가 실제로 없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독일의 마켓에서 온라인 주문을 할 수는 있으나 이십유로 상당의 배송비도 문제거니와 그 사이트는 한글로 쓰여져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고 알려주며 도와준 그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나는 한국음식에 대한 흥미를 해결해 주기로 결심!

'얘들아, 우리 집에 와서 김치만들래?'


배추는 한국배추에 비해 매우 작기는 하지만 통배추를 파는 곳을 알아냈고 무는 지금까지도 못찾았다. 아마 종류가 많이 달라 이곳에서 한국무와 같은 무는 구입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독일마트에서 배송받은 귀한 무를 채썰었다. 한국에서 챙겨온 나의 천일염과 액젓을 사용하여 김치를 담궜다. 양념을 버무리고 배추에 문지르면서 이거 정말 재밌다고 열심히들 버무리는데, 시어머니 김장하실 때 이 아주머니들 보내면 일손이 확 줄겠구나 생각될 정도였다.



열심히 담근 김치를 통에 나눠서 싸주니 이건 언제 먹을 수 있느냐 묻는다. 최소한 이삼일은 기다리라 했더니 빨리 먹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 잘 익으면 원래 이런 맛이야~~이런 냄새날 때까지 기다렸다 먹으면 진짜 맛있어' 덧붙이면서 냉장고에 있던 김치를 꺼내 주었다.


죽죽 찢어 손으로 아주 맛깔나게 먹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다.


잠시만 기다려봐~~~


김치전과 두부김치를 준비해서 맛보게 하니 김치만 넣었는데 이렇게 맛있다고 하하호호 신나서 먹는다. 김장문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다는 것, 겨울이 오기 전 가족과 이웃이 모여 김장을 담그고 겨우내 비타민을 함유한 반찬으로 활용한다는 점, 옛날에는 큰 항아리에 담아 땅에 파묻었는데 요즘은 김치만을 위한 김치냉장고가 따로 있어 김치냉장고를 사용한다는 것 등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실에 앉아 선생님의 재미난 이야기에 집중하는 어린 아이들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을 보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친구들은 김치의 재료에 따라 김치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고 김치냉장고의 존재에 대해 매우 신기해 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오이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등을 보여 주니 맛봐도 되냐며 손가락 두 개를 집어 올린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정말 한국아줌마 같쟎아!!!!


김치 한 통씩 들고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하고 후다닥 함께 치우느라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고춧가루의 흔적들을 열심히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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