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이야 호텔이야?
넓고 넓은 미국땅을 누비며 살았던 우리 가족에게 차로 두시간이 채 안걸리는 헬싱키는 주로 당일로 달려가 볼 일 보고 저녁안에 집으로 돌아오는 나들이 장소이지 여타 여행객마냥 호텔에 투숙하고 관광지를 찾아다닐 그런 장소는 아니다.
그러다 문득, 헬싱키에서 1박이 하고 싶어졌다. 저녁을 먹고 나면 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곤 했던 헬싱키에서 밤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왜 갑자기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온갖 여름축제로 시끌벅적한 헬싱키의 밤을 느껴보고 싶었는가 보다. 아무리 느리고 조용한 나라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수도인지라 우리 도시보다는 복잡하고 왁자왁자한데다 행사도 더 다채롭게 마련이다.
만날 묵는 호텔도 아니고, 뭔가 특색있는 호텔에 머물러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에도 종종 소개되고 있지만 핀란드에는 이제는 운행하지 않는 커다란 배를 개조해 호텔로 운영하는 곳들이 많다. 이런 호텔은 이미 여러 번 묵어 본데다 배인척 하는 호텔말고 배의 캐빈에서 잠을 자는 일도 많이 해봤기에 더이상 매력이 없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잠자리 편한 것이 최고다. 야간열차, 야간버스 많이도 타고 다녔는데 그건 이미 이십년 전의 일... 이십대까지만 가능한 것 아닐까 싶다. 30대 초반에 탔던 오리엔탈 특급열차의 침대칸은 불편하고 배고팠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20대에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들떠서 신났었는데...
뭐 다른거 없나?
어!!!?? 감옥에다 지은 호텔이라고???
감옥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호텔로 운영하고 있다. 여러 사이트에서 후기를 확인하니 조식도 괜찮고 테마호텔이랍시고 돈만 비싸진 것이 아닌 그럭저럭 돈값을 하는 호텔인듯하다. 유럽인들의 후기가 많은 것을 보니 제법 유명한 곳인가 보다.
헬싱키 시내에서 멀지도 않다. 광장마켓을 지나 우스펜스키 성당가는 길목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니 광장에서 축제의 밤을 즐기기엔 무리가 없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내비게이션이 멈추자 높은 담벼락이 한참을 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게끔 빙 둘러져 있다.
아 교도소 담벼락이구나!
정문으로 보이는 곳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니 멋없는 각진 건물과 높은 담벼락 사이에 산책로와 잔디가 펼쳐져 있다. 마치 작은 공원과도 같다. 담벼락 안에 다른 세상이 있네?
주차를 하기 위해 건물뒤 주차장으로 가본다. 금발언니들이 담벼락 아래 잔디에서 요가중이다. 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다른 세상이 존재해 왔겠지...
건물입구로 들어서니 안쪽에 작은 리셉션이 있다. 뭐 직원이 앉아 인사를 하니 리셉션이구나 하는 것이지 호텔 리셉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입구 주변에는 감옥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심지어 리셉션 테이블옆에는 죄수들이 사용하던 양말이나 모자 등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저걸 사는 사람도 있을까 싶으면서도 핀란드의 죄수들은 이런 옷을 입고 있었구나... 구경은 할 수 있으니 겸사겸사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닐까? 그러다 누군가 사면 좋고!
미국의 네바다를 가로질러 차를 달리다 보면 흥미로운 안내판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 안내판에는 " 주변에 감옥이 있습니다. 사람을 태우지 마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죄수들이 담벼락 넘어 탈옥을 해도 쉽게 도망치지 못하도록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에 감옥을 지어 놓았으리라. 네바다를 가로지를때마다 감옥을 지어놓을만하다고 끝을 모르겠을시뻘건 사막에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그래서 미국영화의 죄수들은 뻘건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있었나?
쇼생크탈출도 프리즌브레이크도 주황색 죄수복아저씨들이 등장했었지... 핀란드 죄수복은 줄무늬네? 아 빠삐용에서도 줄무늬였는데... 핀란드 죄수복을 구경하다 보니 죄수복을 입고도 참 잘생겼었던 배우들이 떠오른다. 푸른 수의를 입고도 교도소를 런어웨이로 만들었다는 강동원도 떠오르고 석호필애칭까지 얻으며 큰 사랑을 받았던 스코필드도 생각난다. 그렇구나... 패완얼은 진리구나...
호텔복도라기 보다 교도소의 복도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이 계단과 복도를 따라 방을 찾아간다. 왠지 투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감되는 기분이다.
저 복도 양 옆에 대오를 갖추어 점호를 했을까? 교도관들은 저 가운데 통로를 오가며 죄수들을 감시했을까? 영화로만 보았던 교도소의 모습과 생활을 이곳에 대입시켜 본다.
감옥이라 그런가? 창문이 너무 작고 벽은 너무나 두껍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뭔가 답답한 느낌이다. 기분 탓일까? 조명도 어두운 것 같고 탈출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싫은 기분이 아니라 무척 흥미로운 기분이다.
흔하게 볼 수 없는 것들이고 흔하게 느껴볼 수 없는 분위기이니 이색체험삼아 투숙해볼만 한 것 같다. 장기투숙은 추천하지 않으련다
Hotel Katajanokka
Merikasarminkatu 1, 00160 Helsinki, 핀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