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국립마리오네뜨 인형극장
인형극에 주로 쓰이는 Puppet과 달리 여러 개의 줄을 달아 움직임과 표정을 표현할 수 있는 목각인형, 마리오네뜨. 프라하를 여행하다보면 어딜가든 이 마리오네뜨를 파는 상점들과 기념품가게를 볼 수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Old town에는 마리오네뜨 인형극을 홍보하는 전단지가 넘쳐나고 골목골목마다 간판을 내걸고 저녁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대학로 소극장골목을 찾아다니던 날들이 떠오른다. 마로니에 광장앞에서 전단과 무료 또는 할인티켓을 판매하던 청춘들도...
공연관람을 좋아했던 나는 아이가 생기고나서부터 종목을 바꾸어 어린이공연을 찾아다녔다. 대학로 좁은 골목길들에 주차하기도 마땅치않고 한강 다리를 건너 오기엔 지하철편이 더 편해서 4호선 대학로에 내려 아이와 골목을 누비며 극장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 골목을 미쳐 다 스스로 걷지도 못해 안기도 하고 업기도 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두돌이 겨우 되었을때인가 싶기도 하다.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같은 대형 공연장에는 시즌에 따라 준비된 어린이 공연이 올라왔지만 레파토리가 다양하지는 않았다.2,3년 열심히 보고 나면 매년 같은 것이 올라와 더 볼 것이 없어질 정도로 빈약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윤당과도 같은 어린이공연을 올리는 제법 큰 공연장들도 처지는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조금 멀어도 공연의 규모나 질이 조금 떨어져도 소극장 공연 나름의 친밀한을 찾아 어린 딸들과 대학로나들이를 하곤 했다.
어릴적부터의 기억때문인지 지금도 딸들은 엄마와 공연장찾는 것을 무척 즐긴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나 라스베가스의 태양의서커스같은 대형공연도 좋지만 프라하의 낯선 골목에서 마리오네뜨 공연을 보는 것도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모른다.
체코는 마리오네뜨의 본고장이다. 18세기부터 꾸준히 발전한 마리오네뜨 공연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민족적 색깔을 유지하려는 목적과 결합하여 더욱 번창한다. 19세기 체코의 다른 공연들은 독일어로 공연을 하였지만 마리오네뜨 공연은 체코어로 체코의 민담이나 체코문학을 바탕으로 무대에 올랐다는 것만 보아도 독일문화에 경도되지 않고 체코어를, 체코의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체코의 역사를 이야기할때,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면모가 많다고들 한다. 체코어를 지키기 위한 과거 체코인들의 모습이 불과 백여년전 우리 할아버지, 그들의 아버지 모습과 겹쳐보이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20세기 초에는 2000여개의 마리오네뜨 극장이 있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91년 모짜르트의 돈 지오반니가 마리오네뜨 인형극으로 초연된다. 그 뒤 전 세계적으로 3500회 이상 공연되고 수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한국에도 방문하여 공연했다고 한다. 공연장 앞에는 우리나라 박대토령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진도 걸려 있다. 체코 순방오셨다가 마리오네뜨 보셨구먼...
프라하의 국립마리오네뜨 극장에서 돈지오반니를 보기로 했다. 프라하에서 멋진 저녁식사를 한 그날, 아이들과 남편이 식당에 들어서고 나는 식당 옆 골목에 자리한 국립마리오네뜨 극장을 찾는다.
인형극 표 사가지고 들어갈테니 먼저 들어가요...
표를 사는 것도, 어느 공연을 볼것인지도,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을지도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한다. 저 골목 옆에 국립마리오네뜨 극장가서 오늘 저녁 공연표를 사오라고 설명하고 부탁하느니 다 알고 있는 내가 다녀오는 것이 빠르고 간편하다. 이런 까닭에 늘 걷고 뛰고 행동하는 것은 내몫이다.
어른 하나, 아이 둘 오늘 저녁공연표 주세요.
인형극은 별로라고 남편은 우리가 공연을 보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일을 좀 하겠다고 한다. 제아무리 마리오네뜨의 본고장 체코에 왔다지만 본인이 흥미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가족이 같이 왔으니 무조건 함께여야 한다고 우겨서 같이 갈 마음도 없다. 좋은 사람, 상황 되는 사람이 즐기는 것이지 억지로 자리만 곁에 있다고 해서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Beautiful young lady가 직접 왔으니 1500크로나만 내란다. 데스크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어른 590, 아이 490이라 적힌 가격표를 흔들면서 활짝 웃는다. 티켓판매사이트에서 예매하려니 예매수수료를 내야했고 어차피 식사하러 근처까지 왔으니 직접 오는 것이 큰 수고는 아닌데 말이다.
70크로나를 깎아주셨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뜻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인심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나한테 beautiful young lady라고 했단 말이얏!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올드타운 주변을 걸으며 우리가 공연을 보는 동안 아빠가 기다릴 카페를 찾아본다. 노트북을 사용할 것이니까 전원이 있어야 하고 커피가 맛있어야 하고... 아빠의 필요에 따라 인근 카페들을 살핀다.
우린 그만 가자, 곧 시작하겠다...
공연시간 십분 전, 아이들을 재촉한다.
아빠도 같이가면 좋은데.... 아빠 혼자 괜찮겠어요?
아빠 혼자 심심하면 어쩌지?
아빠를 혼자 두고 공연을 보러 간다는 것이 미안한지 고작 두 시간남짓의 이별인데 아빠를 끌어안고는 생이별하듯 작별인사를 한다.
늦겠다, 어서 가자!
얘들아, 내가 니들 아빠를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니들 아빠가 안간다고 우릴 버린거야... 그리고 아마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기도 한 법이야나도 제발 혼자 좀 있고 싶다!!!
작별인사만 한참을 하고 있는 부녀지간을 보면서 마음이 바쁜 엄마는 마음속으로 궁시렁거린다.
공연중 사진 촬영은 금지라서 수고해 주신 공연자분들 인사하는 장면만 찍어보았습니다.(왼쪽 사진에 딸아이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박대통령 방문사진이네요. 푸른 옷을 입은 분이 박대통령입니다)
인형극은 재미있었답니다. 아이들이 이미 책으로, 오페라로 돈지오반니를 접해 보았기 때문에 내용도 알고 있었고 여행전 마리오네뜨 공연을 볼테니 마리오네뜨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아보라고 일러두었었지요.
익살스러운 인형들의 움직임에 하하하 웃기도 하고 정교한 손놀림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대문사진은 국립마리오네뜨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