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스 Sep 21. 2016

맥주, 수도원 그리고 체코

스트라호프 수도원과 양조장

나흘을 맥없이 쉬었다.


정확하게는 하루동안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있다가 구토를 위해 화장실만 다녀오며 보냈고 둘째날은 기어서 무언가를 해보려다 다시 눕고 구토하러 화장실갔다가 다시 눕고... 사흘째부터는 좀 메스껍고 어지러웠지만 조금씩은 움직일만했으나 여전히 기운이 없는 상태


얼핏 잠에서 깼다. 잠시 후 돌아누우려 몸을 움직이자 침대와 방이 나를 고정핀으로 삼아 뱅그르르 돌았다. 머릿속에 끈적한 액체가 둔탁하게 흐르듯 움직이더니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술병이었다. 깨질듯한 두통, 갈라질듯한 혓바닥, 뒤집어질듯 울렁이는 속.. 내가 상상하는 혹은 경험했던 술병은 이러했는데 말이다.


프라하에 도착한 이후로 점심, 저녁 매끼 하우스 맥주와 하우스 와인을 마셔댔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테라스에서 또 마셨다. 비록 한 잔씩, 가끔은 두 잔을 마신 적도 있지만 과음한 적은 없건만 지나치게 꾸준히 마신 모양이다. 체내의 알콜이 더이상 분해되지 못하고 신경계통의 전달을 막고 있을 것이라는 진단... 세반고리관의 평형감각에도 마비가 와서 움직임과 동시에 현기증이 나고 구토가 유발되는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렇게 나흘을 앓고 다시금 프라하에서의 음주를 돌이켜 본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술병에 시달렸어도 포기할 수 없는 맥주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혼이 덜 난 모양이다. 아니면 그곳의 맥주가 너무 감동적이었거나...


아름다운 도서관과 갤러리로 유명한 스트라호프(Strahov) 수도원, 그리고 맥주. 이곳을 찾기 위해 수도원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수도원 양조장에 관한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빨간 코의 거나하게 취한 수도승, 그런 수도승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종교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중세에 수도승은 나름의 엘리트계층이었고 맥주제조방법을 개발 전승해 왔다. 당시는 수도 정화시설이 온전치 않았던 까닭에 물을 바로 먹을 수 없어 여러 대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맥주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사순절 동안 단식을 하는 수도승들에게 주요 영양공급원이 되주었고 수도를 위해 여행하는 객들에게 대접할 음료가 되주었던 맥주는 이렇게 수도원 양조장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파리의 에펠탑을 본따 만들었다는 Petrin tower를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Petrin 공원의 뒷문을 통해 숲길을 걷다 보면 스트리호프 수도원의 뒷문을 만나게 된다. 물론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정문쪽에 내려도 되고 로레타성이나 프라하성을 관람하고 걸어와도 된다.


이런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왼쪽으로 따라 들어가면 숲길로 이어져요
걷다 보면 내려다 보이는 프라하시내, 전망이 좋은 곳이어서 걷는 시간이 참 좋았답니다.

스트라호프 수도원 뒷문쪽에 투어를 할 수 있는 양조장이 있고 양조장과 정문 사이에 두 개의 식당이 있는데 한 곳은 한적하고 다른 한 곳은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북적거린다. 흥겨운 식당안이 다 들여다 보이는 가게의 구조 탓일까? 나란히 붙은 가게인데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맥주맛이 좋은 곳으로 가자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잠시 검색을 하고 바글바글한 가게로 향한다.


맥주가 급했는지 남편은 자리에서 주문을 기다리지도 않고 가게안으로 들어가 우선 맥주 두 잔을 사들고 온다. 에일이네?



Ale은 상면 발효라 하여 효모가 실내온도와 가까운 18~21도에서 발효되는 것으로 살짝 새큼한 맛이 난다. 내가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남편은 다른 에일 맥주를 한 잔씩 또 가져온다. 나란히 두 잔을 체이블위에 올려두고 식사도 잊고 맥주만 홀짝 홀짝 마셔본다. 남편은 이곳의 맥주가 입맛에 맞는지 스타우트를 한 잔 더 시킨다. 스타우트는 까맣게 탄

맥아를 사용하며 좀더 강한 맥주이다.마찬가지로 상면발효를 이용하기 때문에 스타우트 에일 또는 스타우트 비어라고도 한다.

Petrin타워에서 소풍나온 체코의 어린이들과 비눗방울도 구경해 가며 슬슬 산책삼아 걸어왔지만 30도를 웃도는 더위였기에 이 날의 맛있는 맥주는 달고도 달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날보다 조금 많이 마셨고 많이 맛있게 마셨다. 마트에서 몇 병씩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이것 저것 마셔 보았지만 수도원 양조장의 그 맥주맛을 따를 수가 없더라...


프라하의 맥주는 내게 끔찍한 술병을 안겨주었지만 반면에 프라하의 하이포인트이기도 하다. 또 가면 또 먹을거라는~





맥주 이야기만 했지만 딸들말에 의하면 음식도 맛있었대요..^^

수도원 내부도 너무 멋져요

가게 입구입니다. 왼편 입구로 들어가면 야외 테이블이 있고 왼편에 가게 내부가 자리잡고 있어요. 발효중인지 커다란 탱크가 후끈 후끈 열기를 내뿜고 있는데 아이들은 두부 쉰 냄새가 난다고 도망쳐 버리더군요.


수도원 정문, 올때는 숙소까지 트램탔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프라하의 봄? 아니,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