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eberg cake를 아시나요?
바삭하고 달달한 와플을 먹으려다 성공하지 못하고 혼자 속이 상했더랬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기다려도 되겠지만 빨리 이 마음을 풀고 싶었다.
목요일, 딸들이 방과후 피겨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체력 훈련을 하는 날..5시 45분까지 자유가 주어지는 날이다.
좋았어! 짧더라도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자.
빨간 담장이 예쁘고 굵은 자갈이 깔린 언덕의 돌길이 예쁜 곳, 핸드메이드 소품가게가 아기자기 모여있는 골목이 앙증맞은 곳... 그 곳의 낙엽을 밟으리...
다음에는 어디가요? 이건 뭐에요?
다음 목적지는? 그쪽길은 돌아가는 길인데? 이 길이 숏패스야...
대화도 필요없고 타협도 배려도 필요없는 혼자만의 발걸음이 그리웠었다. 터덜 터덜, 타박 타박 빙 둘러가는 길이어도 내 시선을 끄는 곳이라면 발걸음을 두고 싶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의미없지만 한참을 바라보고 싶은 곳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눈감아도 되는 시간
헬싱키에서 차로 40분, 버스로 한 시간 10분
우리 집에서는 차로 두 시간거리의 Porvoo, 스톡홀름의 감라스탄처럼 규모가 크지도 않고 탈린의 구시가지처럼 축제분위기가 흥겹지도 않은 곳, 포르보의 구시가지 골목골목에는 노란 낙엽이 뒹굴며 빨간 담벼락을 더욱 성나게 한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사랑스러운 가게들이 즐비하다. 강가에는 뜨게질로 예쁘게 떠서 만든 각종 조각들이 걸려 있다. 자세한 유래는 모르겠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여름 시작 무렵 뜨게질한 물건들이나 알록알록 예쁜 색의 옷과 같은 세탁물을 강가 나무나 난간에 거는 작은 축제를 즐긴다. 우리 동네 아우라강에도 모두 모여 걸었었다.
오늘 포르보에 차를 달려온 이유 중 하나는 르네베르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다. 포르보는 Runeberg cake의 고장이니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포르보에 살던 핀란드의 국민시인 르네베르가 달달한 것이 땡겨서 아내에게 뭐 좀 달달한 거 없는지 물었단다. 마침 마땅한 베이킹 재료가 없던 아내는 가지고 있는 약간의 재료에 럼주와 아몬드 등을 섞고 라즈베리로 맛을 더한 빵을 만들어 냈다. 한국에는 장금이가 있고 핀란드에는 르네베르 여보가 있다.
그 후, Luneberg가 이 빵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매일 아침 이 빵만 먹었다고 하는데 이후 인근의 제빵사가 상품으로 개발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2월5일은 Luneberg가 태어난 날이자 핀란드의 경축일 중 하나인 Luneberg day이다. 이날은 국기까지 게양하고 너도 나도 르네베르 케이크를 먹는다. 그래서 1월 중순부터는 핀란드 마트와 제과점에 르네베르 케이크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유난히 이 빵을 맛있게 만든다는 카페를 찾아 나섰다.
커피와 르네베르 케이크를 주문하니 하얀 포트에 담은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내준다. 맛있다! 마트에서 사먹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이 카페는 르네베르 케이크뿐만 아니라 로코코! 로코코! 한 실내장식으로도 유명하다.
이토록 우아한 곳, 혼자 창가에 자리잡고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중세 유럽 어느 백작의 귀한 따님쯤은 된 것만 같아 혼자 흐뭇해 진다.
루네베르 아내의 부엌이 궁금했던 나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남아 있는 르네베르의 집을 찾아 나선다. 카페에서 대략 10분만 강가를 따라 걸어가면 그의 집에 도착한다. 8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만큼 대단한 것이 있지는 않다. 그가 쓰던 서재, 침실, 거실 등 그가 살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는 하지만 르네베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들어가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부엌이 너무나 궁금했다. 르네베르 케이크가 탄생한 그 부엌을 꼭 보고 싶어서 8유로를 지불했다. 돈까지 내고 들어갔으니 방명록에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나는 방명록에 주로 예쁜 한글도 함께 남기는데 주로 독도를 표기한 지도나 태극기를 함께 남긴다.
문득 캘리그라피의 재주가 있었다면 멋진 글귀를 남겼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뜸하셔서 궁금한 지성 작가님도 생각나고...
좋은 글벗께서 알려주셔서 발견했어요. 방명록에 태극기 괘를 잘못 그렸네요. 처음 그리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이런 실수를... 꼭 가서 고쳐놓겠습니다.
르네베르가 앉아서 책을 읽고 시를 쓰던 책상과 의자도 그대로 남아있고 아내의 부엌도 남아있다. 부엌 한 켠에는 헝겊으로 만든 르네베르 케이크가 올려져 있다. 이런 센스쟁이들
봤다, 봤다! 부엌 봤다!
이게 뭐라고 룰루랄라 신이 났다. 속상했던 마음은 입안의 솜사탕마냥 사르르 어느결엔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혼자여서 더 좋았던 포르보 나들이
Tee- ja kahvihoune Helmi
( tea and coffee house Helmi)
구글맵에 J.L Lunebergs hem 입력하시면 됩니다
강가를 따라가다 보면 각종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지만 여름에만 문을 여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북유럽은 꼭 여름에 여행오세요. 도시여행이라면 다른 계절에 비해 즐길거리 볼거리가 백만배랍니다.
오늘은 오후부터 날이 흐리고 저녁무렵 비가 쏟아져서 사진이 좀 우중충하네요. 저도 여름에 다시 오려고요! 백만배 예쁜 포르보를 기대하면서...
딸들에게 살짝 미안해서 핸드메이드 초콜렛 한 상자 선물로 사왔습니다.
동글 납작한 초콜렛보다 동글동글한 초콜렛이 조금 더 비싸지만 훨씬 맛있었어요. 딸들은 스트로베리 초콜릿이 가장 맛있었다고 하네요. 오른쪽에는 넓은 카페도 함께 운영되고 있고 달달한 디저트류도 판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