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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Sep 23. 2016

까마귀 제거 작전

조금 불쾌할 수 있습니다...

차를 몰고 헬싱키공항 장기주차장에서 빠져나온다. 공항버스건 기차건 시간맞춰 서두르고 짐들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여행마다 공항 주차장에 장기주차를 한다. 우리 네 가족의 왕복 공항버스요금과 짐을 들고 움직이는 수고,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등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장기주차료를 내더라도 집앞에서 짐을 싣고 공항까지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큰 차이도 없고 운전이라면 로보트 태권브이마냥 척척 알아서 본인이 하니까 궂이 내가 반대할 까닭도 없다.


이런 까닭에 프라하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헬싱키를 떠나 집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린다.

안개가 심하네...?

어? 저기 시체있나? 까마귀떼가 모여있어.....?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할 찰나, 뻑!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마귀들이 흩어진다.


아! 새 정말 싫어!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댁에 놀러갔다가 닭장을 빠져나온 장닭의 공격을 받고 몇날 몇일을 시름시름 앓았던 남편은 유난히 새를 두려워 하고 싫어한다. 당시 남편은 밥도 못먹고 꿈에 새가 나와 괴롭히는 통에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한참을 앓았다고 한다. 새에 대한 공포가 다시 떠오르는지 남편은 몸서리를 치며 운전을 계속 한다. 집으로 가는 길


으아아악!!!!!

주차를 하고 차의 앞 범퍼를 살피던 남편이 사색이 되어 짧은 비명을 지른다. 십년 넘게 살면서 처음 들은 남편의 외침이다.


고속도로 주행 중 뻑! 하고 크게 났던 소리는 까마귀가 범퍼에 부딪히며 난 소리였고 범퍼 사이에 까마귀의 사체가 꽉 끼어버린 것이다. 아내나 딸들에게 미룰 수 없는 일이기에 용기를 낸 남편은 어금니 꽉 깨물고 기다란 막대기를 구해다가 멀리서 까마귀를 제거해 보려 하지만 얼마나 세게 부딪히고 끼어버렸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가 없으니 까마귀 사체를 앞범퍼에 달고 이틀을 운행했다. 남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고 차에 까마귀의 썪은 냄새가 날까 전전긍긍한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고 잠도 깊이 못자는 것 같다


찜찜하고 소름이 끼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보니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


까마귀와 부딪히면서 앞범퍼에 금이 갔으니 카센터에 가서 범퍼를 통째로 교체할까? 카센터 예약을 해야겠구만...


마을을 습격한 히치콕의 까마귀떼가 생각나고 역시나 히치콕 영화에서 공중전화부스에 날아와 부딪히던 새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아...! 저걸 어쩌지!?!?!?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여전히 까마귀가 박혀 있는 차를 몰고 손세차장을 찾았다.


세차 좀 해주세요....



가격과 시간 등에 대한 안내를 받았으니 까마귀 처리에 대한 부탁을 할 때다.


새가... 범퍼에 부딪혔어요.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해결해 주실 수 있나요?


핀란드의 성인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만 이는 대학진학에 필요한 영어과정을 고등학교에서 마친 성인의 이야기다. 기술직으로 진로를 정한 고등학생들은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영어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bird, scary, please 세 단어로 손세차 아저씨를 이해시킨다.


싫다고 하면 어쩌지? 아저씨도 저 새가 너무 징그러워서 차 도로 가져가라 하면 어쩌지?


까마귀 사체도 무섭고 아저씨의 반응도 두려워 근심어린 얼굴로 아저씨를 바라본다. 차를 살피던 아저씨는 오!!!! 뻑!!!! (f로 시작하는 그 욕 맞다) 이라고 크게 소리치더니 나를 가여운 눈으로 바라본다.


저 여자 정말 무서웠겠구나 동정하는 눈치다. 다행이다.... 화내지 않아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우리가 새 빼줄께! 라고 믿음직스럽게 말씀하신다. 우람한 어깨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얼굴이 결의에 차있다.


외관 손세차는 29유로라고 했지만 얼마쯤 더 드려야 겠다고 생각하며 이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 전했다. 100유로 드리란다. 더 달라고 해도 무조건 다 드리란다. 35유로나 40유로정도 드릴까 했는데 진짜 기쁜가 보다. 사실 나도 십년 체증이 내려앉은 듯 속이 뻥 뚫렸다.


차를 찾으러 간 나를 보자마자 아저씨가 외친다.

bird! away!!!!


세차야 어찌되었거나 말거나 감사의 인사를 하며 50유로를 건냈더니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찾는다.


아니에요... 잔돈 주지 마세요...

제가 감사의 뜻으로....


No와 Thanks를 들으신 아저씨는 갑자기 손을 척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버드!!! 팁!?!? 땡큐!!!!!



얼떨결에 세차장에서 액션영화 주인공처럼 생긴 근육질 아저씨와 악수를 했다. 쿠폰은 한 웅큼 주시더니 자주 오란다. 니 차에 곤충도 많다고 자주 와서 빼란다. 자동차여행를 하다 보면 곤충들도 많이 부딪히는데 범퍼안으로도 많이 들어갔었나 보다.


왠지 아저씨랑 친해질 것 같다. 악수도 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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