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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Oct 16. 2016

#3 남북전쟁, 여행으로 만나는 미국역사 1

게티즈버그

18세기부터 시작된 노예폐지운동은 1780년 필라델피아 주의회에서 노예해방법이 통과되면서 불붙기 시작 급기야는 1787년 지금의 오하이오주와 그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북서부 조례를 통해 노예제 폐지가 선언된다. 하지만 목화재배가 주를 이루는 대농장을 기반으로 하는 남부지역에서는 여전히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는 셈이었다.


1860년 링컨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는 서둘러 미합중국의 탈퇴를 선언했다. 그 다음해 남부지역 6개주가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




탈퇴를 선언한 7개 주가 그해 2월 임시헌법을 채택하고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에 임시수도를 정하게 된다. 남부연합정부는 남북경계에 위치한 대부분의 군사력으로 장악하는 한편 대표단을 보내 연방자산을 지불하고 평화협정을 맺을 것을 시도하지만 링컨정부는 합법적인 정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협상을 모두 거절한다.


1861년 4월 제퍼슨이 이끄는 남부 연합군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샘터요새를  공격하면서 4년여간 남북군 합쳐 약 620,000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남북전쟁이 시작된다. 링컨은 각 주에서 자원군을 모집하도록 요청했는데 이때 4개의 남부주가 추가로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남과 북의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게 된다.


남부연합군은 동부전역에서 수없이 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서부전선에서는 여러 차례 패하고 미시시피강 주변의 중부 전선까지 북부군의 통제에 들어선다. 미국의 국립공원중 가장 많은 방문객을 자랑하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일대의 차타누가 전투가 동부전선을 제외한 지역에서 남부군이 확실힌 승리를 거둔 유일한 전투다.


남부연합군 사령관인 로버트 리 장군은 동부 지역의 승리를 발판삼아 북부로 진격하지만 게티스버그전투에서 많은 사상자를 낸 뒤 후퇴하게 된다. 이로써 북군이 미시시피 주의 빅스버그를 점령하고 남부 연합이 지리적으로 두 개로 나뉜다. 북부사령관 그랜트는 리와 지구전을 펼치는 와중에 북군은 애틀란타를 함락시키고 바다를 향해 진군하면서 병력과 물자면에서 전쟁의 판도가 확실하게 기운다.


1865년 북버지니아군대를 이끄는 리 장군이 맥린 하우스에서 항복하고 5일 후 링컨은 저격당하고 다음날 사망하게 되지만 남부 전역의 남부군이 일제히 리의 항복 소식을 듣고 항복을 하면서 남북전쟁은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 문구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연설로 손꼽히는 게티즈버그 연설은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난 4개월 뒤에 전장에 세워진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이루어진 연설이다.





뉴욕에서 서쪽으로 4시간, 필라델피아에서 2시간 반 조금 못되는 곳에 게티즈버그가 있다. 미 동부를 여행하면서 게티즈버그에 들른 이유는 오로지 게티즈버그 연설때문이었다.


미국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온갖 정치적 이슈가 있다고 하나 노예해방을 공고히 한 발판이라 할 수 있는 남북전쟁... 그 남북전쟁을 북군의 승리로 자리매김한 게티즈버그 전투와 링컨의 연설은 딸들을 그 현장에 데려가고 싶다는 열망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게티즈버그에 아무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던 남편은 목적지를 앞에 두고 이유없이 몇 시간을 돌아가야 하는 심정으로 게티즈버그 박물관앞까지 함께 왔다. 하루를 날린다는 마음이었을 게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부족한 잠이나 자겠다는 남편을 뒤로 한 체 아이들을 이끌고 박물관으로 향한다.


주차장을 나서 조금 걷다 보니 푸른 숲과 공원에 둘러싸인 박물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편에는 익숙한 국립공원 팻말이 보이고 왼편으로 링컨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링컨을 둘러싸고 딸들과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본다.


게티즈버그 연설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아직 어린 딸들이지만 위인전에서 읽은 링컨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 게티즈버그 연설의 유명한 문구를 알고 있다. 어린 아이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 그곳에 오다니... 괜시리 가슴이 벅차다. 주차장에서 자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잠이 더 귀한 자동차여행의 피로함이 이해도 되지만 한 편으로는 역사적 장소에 대해 지나치게 무덤덤한 그의 성향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박물관은 북군과 남군의 군복과 물품에서 부터 전투의 흔적들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리노이 주는 북군에 속해 있었고 우리 주의 흔적도 일부러 찾아본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의 중심에 있는 링컨이다 보니 여기저기 링컨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인종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참으로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명제를 두고 싸워야 했던 역사의 현장에 선 딸들은 사뭇 진지하다. 여행 일정에서 하루를 할애하여 조금 돌아온 곳이지만, 이곳에 오기 위해 운전해 온 만큼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하는 경로지만 이곳에 딸들과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참으로 귀한 하루다.

게티즈버그 전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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