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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Oct 19. 2016

헬싱키, 아카데미아 서점에서 느끼는 그리움

여행객도 현지인도 아닌 사람의 방문기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기 전까지, 이메일을 확인한다는 행위자체는 설레임이었다.


You've got mail

우리 세대 로코퀸 맥라이언이 작은 마을의 서점 주인으로 나왔던 이 영화는 나에게 추억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로망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결혼도 하기 전, 고작 대학생이었던 나는 마을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그녀의 따뜻한 미소에 매료되었다. 아이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은 존재로만 여기던 내가


작은 서점을 열어
아이들이 책 속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꿈을 꾸게 된 결정적 장면이다.


내 아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 주다가 이제는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소중해질 만큼 내 아이들은 많이 자랐다. 내가 살던 마을에 저렇게 아기자기한 서점은 없었지만 딸들과 자주 가던 서점과 북카페는 멀리까지 날아와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그곳에서 보낸 시절들을 추억하게 만드는 소중한 장소가 되어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책만 읽어도 되는 시간


피아노, 바이올린, 태권도, 체조, 미술 등 예체능 위주의 수업을 듣던 어린 시절의 딸들에게 금요일 오후만큼은 아무 수업도 하지 않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허락된 시간이다. 책만 읽어도 되요? 그렇게 금요일 오후는 책만 읽어도 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좀더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에 커다란 베낭에 책을 담아 매주 금요일 동네 입구에 자리잡은 북카페를 찾는다.


층고가 높고 벽을 유리로 세워 시야가 트인 이곳에는 유난히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근래들어 카페에서 공부를 한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은 적이 있지만 딸들이 어렸던, 수년 전에는 조금 낯선 일이었다. 혼자 앉아 작업을 할 수 있는 좁고 기다란 테이블, 그 아래 설치된 콘센트들로 미루어 보아 카페의 주인은 다가올 트렌드를 고려했던 것 같다.


덕분에 우리 모녀는 눈치보지 않고 오후내내 몇 시간이고 편히 앉아 책을 읽으며 머물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마을에서 보낸 가장 따스한 시간 중 한 조각이다.


금요일 오후, 추억을 아로새겨 준 이 카페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우리 놀이터, 읽고 싶은 책을 챙겨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보물찾기를 하듯이 새로 나온 책들을 찾아나섰던 대형서점이 있다. 타워레코드와 뉴욕제과로 기억되는 내 젊은 날의 강남역, 금강제화 사거리는 어느날부터인가 교보사거리가 되었다. 더운 날이면 슬리퍼를 신은 채로, 추우면 입고 입던 고무줄 바지에 패딩만 두른 채로 마을버스에 올라타면 작은 연두색 버스는 털털거리며 그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아무 책이나 꺼내 들고 마음껏 읽어도 괜찮은 별천지, 교보문고 강남점은 우리 모녀의 또다른 놀이터이자 추억의 공간이다.


아카데미아 서점


문득 그때가 그리워 아이들을 이끌고 헬싱키의 아카데미아 서점으로 향한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여주인공이 들렀다며 오늘날 핀란드를 현대 건축의 중심지로 세운 알바 알토의 작품이라며 관광객들이 들러 가는 곳



서점앞을 무수히 지나면서도 일부러 들어간 적 없는 그곳에 이국 땅의 새로운 것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 다른 이들과 달리 익숙하고 좋았던 것이 그리워 그곳을 찾는다. 이곳을 찾는 목적이 다르기에 느껴지는 바도 다를 터이다.


다양한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지만 우리에겐 읽을 거리가 풍부한 놀이터가 아니다. 북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서점이라 하지만 한국의 대형서점에 익숙한 내게 이곳이 웅장하다는 표현과 어울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렇다고 더이상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아닌 어정쩡한 우리 가족마냥 어정쩡한 느낌의 그냥 서점, 수많은 서점 중 그저 하나일 뿐인 서점


카페 알토


아카데미아 서점안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 알토, 이곳에 앉아 책을 읽을 셈으로 베낭을 메고 책을 한 권씩 챙겨왔지만 커피잔과 딸들을 위한 크로와샹, 치즈케잌을 올려두기에도 부족한 협소한 테이블을 보니 매주 금요일 만나곤 했던 좁고 기다란 책상과도 같던 테이블이 간절히 그리웠다.


건너편에는 일본인 관광객 커플이 행복한 표정으로 커피와 크로와샹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또 한 커플은 니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빈 자리가 없는지 두리번 거린다.


왠지 빨리 자리를 내주어야만 할 것 같다. 오후내내 마음 편히 앉아서 책을 읽던 그 시간이 그립다. 이 책 저 책 실컷 골라 읽고 나와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먹었던 길거리 꼬치오뎅이 그립다.


여행객도 아닌, 현지인도 아닌 우리가 찾은 이곳은 추억의 물결만 자꾸 일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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