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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Nov 16. 2016

Kerkkoo, 일상이 아닌 설렘

헬싱키 근교 Kerkkoo

경치좋은 오두막집 하나 빌려서 쉬다 오면 좋겠다는 말을 하얀 계절로 바뀔즈음부터만도 열댓번은 한 것 같다.


우리집도 경치가 좋은걸? 오두막은 추울걸? 우리집도 좋쟎아?


일상에서 벗어나 동화같은 풍경속에 푹 빠지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심드렁할 뿐이다.


우리집이 아무리 경치좋은 곳에 있어도 우리집은 일상의 공간이지 여행이 될 수 없다. 우리집이 아무리 좋아도 여행지의 새로운 현관을 열고 발을 내딛는 설렘을 줄 수는 없다. 게다가 동화처럼 예쁜 집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일상보다 더한 노동을 투입해야 한다. 살림살이를 치우고 정돈하고...


일상과 여행사이에 존재하는 견고한 울타리를 남편은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남편이 갑작스레 출장을 떠났다. 그와 동시에 모녀는 일상을 버리고 숲속의 예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딸들은 방학이 아닌 이상 매일 가는 학교를 빠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나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하얗고도 하얀 눈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하얀 집이 한 채 서있다. 차를 세운 쥐 짐가방을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두근두근 쿵쿵


Kerkkoo

Helsinki에서 차로 한 시간, Porvoo에서는이십분, 우리 집에서는 두 시간 이십분 거리에 있는 숲이 우거진 마을이다. 가로등도 인적도 없는 숲길을 따라 십오분 동안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 숲을 가로질러 네비가 안내하는 대로 가다보면 집이 나올 것인지, 꼬불꼬불 눈길이 군데군데 얼어있지는 않은지 긴장이 된다. 뒷자리에 탄 딸들도 조금은 겁이 나는지 잘 가고 있느냐고 재차 묻는다.


눈길에 미끄러지거나 구덩이에 빠지거나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길이란 어느 곳으로든 통하게 마련이니 핸들을 꼭 쥐고 조심조심 운전을 한다. 남편이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 가는 길이라면 이런 긴장감은 없었을 텐데...출장을 떠난 남편을 잠시 떠올린다.


엄마가 긴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딸들은 더욱 겁이 날테지...애써 태연한 척 아이들을 다독인다.


이길따라 7분만 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사고가 나지 않게 속도를 줄여 조심해서 가고 있으니 겁먹지 않아도 된단다. 우린 잘 가고 있는거야


인생의 길에서 문득 지금의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고 두려울 때 누군가가, '괜찮아,잘하고 있는거야.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일거야'라고 말해 준다면 인생을 살아가기 더욱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수많은 선택과 난관앞에서 고민했던 내 모습이 파노라마가 되어 스친다.


대략 십오분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지나온 길이 참 길게만 느껴지고 하얀 집 현관을 마주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깨끗하게 정돈된 집안을 둘러보니 긴장감뒤에 숨었던 설렘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우리집보다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집보다 깔끔하다. 내가 치우지 않아도 깨끗한 집, 나의 일상에서 조금만 곁에 서도 설렘이 찾아온다.


짠! 비록 과일주스지만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 건배하기엔 모자라지 않아!


다음날 아침, 간단한 아침을 먹고 끝을 알 수 없는 눈밭으로 달려나간다.


멀리가지 않아도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고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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