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길, 인디언 강제 이주의 역사
미국 팽창의 이면에는 인디언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다. 더 넓은 땅을 개척하려는 개척민과 남부의 농장이 황폐해져 쓸모없어 지자 더욱 기름진 땅을 찾으려는 시람들, 그들은 미시시피강을 건너 서부로 서부로 이동하며 그땅에 터잡고 살아온 인디언들과 충돌하게 된다.
1820년대, 미국인들은 '인디언은 늑대나 다름없다'며 인디언 추방에 앞장 선 앤드루 잭슨을 필두로 인딘언들을 잔인하게 토벌하고 영토를 빼앗아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다. 앤드루 잭슨은 미국의 7대 대통령이 된다. 귀족 출신이 아닌 첫 대통령, 민주당 출신 첫 대통령, 남분 분열 당시 독립13개주와 관계없이 선출된 첫 대통령 등, 여러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배경에는 인디언 토벌의 역사가 있다.
잔인한 토벌이 계속되는 가운데 1830년, 미국 내 특정지역에서만 인디언들이 머물모록 강제이주정책을 골자로 하는 인디언 추방법(The removal Act)가 제정된다.
이주를 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디언들에게는 잔인한학살이 계속되고 결국 인디언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떠나 미시시피강 넘어 황폐한 서쪽땅으로 추방된다. 인디언들은 이 길을 눈물의 길( Trail of Tears)라 부른다.
기후 좋고 비옥한 테네시주 조지아에 살고 있던 ( 미국 최고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 인근) 체로키족은 1,500km의 여정동안 질병과 굶주림으로 14,000명 중 대부분이 죽고 1,200명만이 살아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했다.
살기 위해 떠난 눈물의 길에서조차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던 인디언들은 대륙횡단철도건설로 또다시 강제이주하게 되는 한 많은 삶을 살게 된다.
남북전쟁 이후, 제조업의 증가, 국민총생산의 증가로 미국의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고 산업발전으로 인해 풍족해진 물자를 운송할 수단이 필요해 진다. 경제규모의 팽창과 함께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공사가 시작되고 철도는 인디언 거주지역들을 가로질러 놓이게 된다. 철도공사를 위해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고 엄청난 수의 중국인들이 몰려와 미서부해안에 대단위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차라리 그 지역의 인디언들이 공사를 하고 기차가 지나는 길목길목에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공생이 가능했더라면 인디언의 역사가 조금은 덜 아플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의 주식인 들소를 마구잡이로 살상하여 인디언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고 이도 모자라 또 한 번 강제이주를 강요한다. 인디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봉기하여 최후까지 저항하지만 인디언의 혼을 일깨우는 마지막 신화, 수족의 족장 Sitting Bull(웅크린 황소)가 처형됨으로써 그들의 한많은 삶은 눈물과 피로 얼룩져 마감하게 된다.
현재 미국에는 약 310개의 인디언 보호구역이 남아 있는데 미국 영토의 2.3%에 해당하는 좁은 땅만이 그들에게 허락되었다. 한 부족이 두 개 이상의 구역에 거주하기도 하고 어느 부족은 그들만의 보호구역이 없기도 하다. 이 보호구역안에서 매우 제한된 주권을 행사하기도 하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 카지노를 운영할 수도 있다. 특별한 산업시설도 기반시설도 없이 관광객들이 들러 쓰고 가는 푼돈으로 고난한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체로키 인디언 마을은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에서 차로 십여분 거리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그도 그럴 것이 스모키 마운틴은 가장 많은 방문자수를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니 체로키 인디언 보호구역을 찾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 실제로 가을 단풍철에 스모키 마운틴을 찾았을 때는 체로키 마을까지 가는 길이 너무 막혀 고작 십분도 안걸릴 것을 한 시간 넘게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식사 시간은 가까워져 배는 고프고 막힌 길이 뻥 뚫릴 기미도 보이지 않아 체로키행을 포기하고 스모키 마운틴 아래 게틀린버그로 돌아가 식사를 했다.
다음 해 봄에 다시 찾은 체로키 마을, 여느 마을과 같이 마을 이름과 방향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 정도만이 이곳이 체로키 마을임을 알리고 있었다. 조금더 깊숙히 들어가니 인디언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들이 도로가에 늘어서 있고 인디언 박물관, 미술관 등이 보인다. 마을을 가로질러 시내가 흐르고 주변에는 푸른 잔디가 있기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시냇가로 향했다.
물이 참 맑다. 인디언 말에는 저주와 작별을 뜻하는 안녕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 , 절대로 남을 저주하지 않는다는 인디언들의 맑은 영혼만큼이나 맑은 물이다.
다리너머 작은 천막이 있고 그곳에 인디언 두어명이 테이블을 놓고 앉아 체로키 민속 구역 투어상품을 판매하규 있다. 이를 테면 민속촌같은 곳인데 입구에 가서 표를 구매해도 되고 마을 곳곳에 위치한 작은 천막에서 표를 구매해도 된다. 남편은 인디언 마을에 관심이 없다며 시냇가에서 계속 쉬겠다고 한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갈 재간은 없기에 세 모녀의 입장권만을 구매하고 차로 데려다 줄 것을 남편에게 요청했다. 빨리 내려주고 돌아가 쉬고 싶은 것인지 산 속 깊은 어디메에 세 모녀만을 내려두고 남편은 사라졌다.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위치도 확인하지 않고 내리자마자 사라진 남편덕분에 한참이 지나서야 엉뚱한 곳에서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법 그럴듯한 무대가 설치된 곳이었기에, 그리고 네비게이션을 따라 운전한 남편이 내려준 곳이었기에 다른 관광객과 가이드가 나타나기를 의자에 앉아 기다렸지만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누구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시냇가에서 표를 살 때 혹시나 싶어 판매자의 핸드폰 번호를 받아두었기에 그에게 전화를 했다. 깊은 산속이라 통화가 쉽지 않았지만 자리를 이동해 가며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우리는 엉뚱한 장소에 와있고 걸어서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체로키에 금송아지를 숨겨 두었나, 뭐 그리 급하게 가버렸는지 남편이 원망스럽다.
남편은 투어가 끝나는 시각에 데리러 오기로 했으니 걸어서라도 투어가 진행되는 그들의 마을에 가든, 하릴없이 남편이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든 두 가지 선택지 중에 골라야 했다.남편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니 말이다.
이미 오전에 스모키 마운틴 등반으로 체력을 많이 소진한 딸은 벤치에 앉아 졸고 있었지만 별수없이 아이를 깨워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으니 수시로 전화를 걸어 길을 확인하며 걸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들의 마을, 투어는 이미 한참을 진행되었고 아쉽게도 우리가 놓친 투어는 그날의 마지막 투어였다. 환불을 받기로 하고 투어의 마지막 부분이나마 참가하기로 한다. 마음씨 좋은 인디언 할머니께서 가이드는 없더라도 문닫기전 까지 마을을 둘러보아도 좋다고 하신다. 아쉬움 가득하지만 그들의 삶의 자취를 하나 하나 밟아 본다.
학살과 핍박으로 얼룩진 그들의 삶만큼은 아니지만 체로키 마을은 우리 가족에게 참 아픈 여행의 기억이다. 나중에 듣고 보니 남편은 핸드폰을 차에 두고 내린 뒤 시냇가 주변 풀밭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자는 동안 정체모를 벌레에 팔을 물렸다. 벌레에 물린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도 않았음은 물론 새살이 돋지도 않았다.
처음 몇일간은 애들이며 아내를 내려두고는 잘 도착했는지 투어는 잘 시작했는지 확인도 없이 잠을 자버린, 그래서 안해도 될 고생을 하게 한 남편이 괘씸해 벌받은 것이라며 내심 고소해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진물만 흐르고 상처가 낫지 않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결국 남편은 상처부위를 스스로 뜯어 내고 살짝 패인 팔뚝을 갖게 되었다.
서부여행 중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른 적도 있는데 뜨거운 태양이며 시뻘건 모래를 보면서 체로키 마을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겠구나 싶었다. 지금 체로키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은 강제이주 명령에도 불구하고 동굴 속에 숨어 살아남은 체로키족의 후예들이다. 그들이 살던 땅에서는 금이 발견되었고 그 축복때문에 그들은 쫓겨나게 되었다.
그들도 눈물의 길을 떠났다면 대부분이 죽었거나 나바호의 인디언들처런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고된 삶을 살고 있으리...
학살당하고 이주당한 과거, 지금도 녹록치 않은 인디언들의 삶이 아프게 다가오는 여행이다.투어를 제대로 못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실제로 카드취소를 해주었는지는 그뒤로도 확인해 보지 않았다. 그들을 추방하고 학살한 것이 내가 아님에도 왠지모를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생겨서였던 것 같다.
표제의 사진은 눈물의 길을 잘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라 운교님의 블로그에서 빌어 왔습니다. 아쉽지만 그 이전의 정확한 출처는 알지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