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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Nov 19. 2016

스프링 필드, 링컨의 고장! 여행으로 만나는 미국역사

1863년 11월 19일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중 하나로 기록되는 게티즈버그전투의 전사자들 일부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헌정식을 하게 됩니다.


지금으로 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는

자유에 기반을 두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명제를 받을고자 이땅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중략


신의 가호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누리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중 하나인 에이브라함 링컨은 약 150년 전 오늘 펜실베니아 게티즈버그 헌정식에서 세기에 기록될 명연설을 남기게 된다. 그 자리에는 박물관이 세워져 있고 약 오만명의 사상자와 포로가 발생한 전장지 일대는 게티즈버그 전쟁터로 남아 보존되고 있다.


이렇듯 게티즈버그는 링컨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도시다. 그렇지만 링컨의 도시라 주장하는 곳이 있으니 일리노이주 전체가 그러하다. 오죽하면 자동차 번호판 한가운데에 링컨의 얼굴을 그려넣고 Land of Lincon이라 새겨두었다. 일리노이주에 거주했던 나와 남편도 링컨의 얼굴을 달고 미국 전역을 질주했다.


이 번호판은 핀란드 어느 마을 창고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고차 거래가 활발한 미국에서는 사인간 중고차 거래도 빈번한데 재미있는 것은 거래가 끝나면서 동시에 번호판을 직접 떼는 것, 차량이 인도되면서 번호판의 번호는 의미가 없어지고 차주인은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기 때문에 DMV에  반납하라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미국을 떠나는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많이들 챙긴다. 나 역시도 미국을 떠나면서 차 두대를 팔고 번호판 두 개를 챙겼다. 물론 급하게 해외이사를 한 번 더 하게 되면서 내 살림살이가 태평양을 건너 다시 대서양을 건너는 통에 번호판의 행방은 현재 알 수 없다.


얼마 전 일리노이 주의 새 번호판 디자인이 공개되었는데 새 디자인에서는 기존 가운데 흐릿하게 새겨져 있던 링컨의 얼굴에 비해 보다 크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년부터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새 디자인의 번호판을 달게 된다.

일리노이주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링컨을 고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혹시 링컨의 고향? 링컨은 일리노이주와 인접한 켄터키주에서 태어났다.

사진의 빨간 곳이 켄터키주이고 인접한 주 중에서 푸른 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일리노이주다. 일리노이 주 북쪽에 맞닿은 커다란 호수가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되지 않던 미시건호다.그 유명한 시카고의 네이비피어가 미시건 호에 맞닿아 있다.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성장한 링컨은 토지등기상의 문제로 집안의 모든 재산을 뺏기는 바람에 인디애나주로 이주한다. 인디애나주는 켄터키주 위로, 일리노이주 옆으로 인접한 주이다.사진상 빨간 부분과 푸른 부분의 사이되겠다. 인디애나주에서 정착하고 살던 중 누이는 산욕으로 숨지고 마침 우유병이 퍼지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이주를 하게 되는데 이때 링컨의 가족은 일리노이주로 옮기게 된다. 링컨은 뱃사공부터 우체국장, 가게점원, 토지측량사 등 온갖 일을 하며 가난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링컨은 독학으로지만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변호사시험에 합격, 스프링필드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다.스프링 필드에서 링컨의 아내 메리를 만나고 우여곡절끝에 결혼을 하게 된 링컨 부부는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스프링 필드 인근으로 이사를 한다.


미국 3대 도시 중 하나인 시카고, 바람의 도시 시카고의 위세가 워낙 대단하여 시카고를 일리노이주의 주도라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일리노이주의 주도는 스프링필드다. 스프링 필드! 이곳에서 링컨은 변호사 생활을 했고 가정을 일구어 살아갔다.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다음 해에 일리노이주 주의원에 당선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주의원 당선 12년 만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그로부터 다시 12년후에 상원의원에 도전하지만 당시의 상원의원인 더글라스와의 경쟁에서 패해 낙선한다. 비록 상원의원 도전은 실패했지만 더글라스와의 경쟁과정에서 노예제도를 비판함으로써 노예제 반대론자의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예해방의 아버지 링컨은 이때부터 생겨난 이미지라 하겠다.


일리노이주가 링컨의 땅이고 스프링 필드가 링컨의 고장이라 일컬어 지는 이유는 이같은 링컨의 생애와 정치입문과정과 관계가 깊다.

스프링 필드에는 아직도 링컨의 마을을 보존하여 링컨이 살던 집, 사무실, 친구 누구네 집, 아내의 언니 누구네 집 등 가이드 투어도 유로로 제공하고 있다. 스프링 필드는 링컨마을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려 한 듯 하나 사실 대단한 볼거리는 없다. 그냥 마을이다. 인근 도시의 사람들이 행정처리를 위하여 주도에 들렀다가 찾는다거나 한 두시간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당일 나들이를 위해 링컨 마을, 링컨 박물관, 링컨의 무덤 등을 함께 돌아보는 정도이다.


하지만, 11월 19일 게티즈버그 연설이 있었던 오늘, 미루어 두었던 링컨에 관한 글을 쓰고자 스프링필드 나들이 이야기를 꺼내 본다. 멀리 있는 분들께 링컨을 위해 스프링필드까지 찾아오시라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니까 남쪽에서 시카고 가시는 길에 잠시 들르시려면 이런 곳이 있습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링컨 박물관 입구

링컨 박물관의 구성은 꽤 알찼다. 입구에 링컨 가족의 인형이 제법 실감나게 만들어져 세워져 있는데 사람 실제 크기이다. 링컨은 190이 넘는 장신이었다 하니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것이 맞다. 사진을 오랫만에 보니 링컨의 아내도 상당한 장신이었던 모양이다. 링컨의 생애와 정치활동, 남북전쟁 그리고 암살되기까지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게티즈버그 박물관이 남북전쟁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스프링필드 링컨 박물관은 링컨이 주된 관심사인듯 하다. 딸들은 일찍 세상을 떠난 링컨의 아들이야기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박물관과 링컨 마을이 있는 시내에서 차로 십여분 이동하면 링컨 무덤이 있다. 무덤앞 링컨의 조각상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소리가 있어 너도 나도 코를 만졌나 보다. 키가 작아 손이 닿지 않는 동생을 위해 큰 아이가 그래도 언니라고 힘을 써가며 안아올리고 있다. 무덤 내부도 관람할 수 있는데 링컨뿐 아니라 그의 아내와 세 아들의 무덤이 함께 있다. 박물관에서 읽었던 링컨 아들의 이른 죽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링컨의 네 아들 중 셋이 어린 나이에 죽었다고 하니 아버지로서의 링컨은 참 아픈 사람인 것 같다.


링컨의 묘지가 있는 이곳은 워싱턴의 알링턴 다음으로 방문자 수가 많은 곳이라 하니 링컨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잔디밭을 따라 걷다 보면 한국전쟁 기념비도 볼 수 있다. 중공군에 밀려 장전호에서 함흥으로 철수하는 미군의 모습을 새겨놓았다고 한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머나먼 곳에서 마주 대할 때면 늘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고 먹먹해 진다.

게티즈버그 여행이야기는 요 아래

https://brunch.co.kr/@lifeinfinland/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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