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omen Rautatiemuseo
하루키의 비교적 최근작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다 보면 일본인이 쓴 일본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이야기지만 자꾸만 핀란드가 떠오른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이름에 색채를 뜻하는 글자가 없다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혼자 소외감을 삼키곤 했던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났던 곳이 핀란드이고 그를 핀란드, 정확히는 헬싱키를 거쳐 헤멘린나까지 가게 한 그의 친구들중 하나가 핀란드인을 남편으로 맞아 핀란드에서 살아가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하루키의 많은 작품에서는 핀란드의 숲냄새가 종종 베어나온다. 일본인들은 핀란드를 사랑한다. 왜소하고 유약하지만 강한 야욕을 가진 그들이 강인한 자연과 계절에 맞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을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다자키 쓰쿠르는 철도역사에서 일한다. 헤멘린나는 핀란드에서 맨 처음으로 건설된 철도가 지나가는 헬싱키 인근의 한 시간거리 도시다.
헤멘린나가 헬싱키 인근의 아름다운 도시지만 사실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의 마을은 헤멘린나말고도 수없이 많은데 왜 헤멘린나였을까? 헬싱키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핀란드의 첫 철도,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확인할 수 없는 하루키의 의도를 혼자서 추측해 본다. 나는 하루키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하루키 신드롬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다. 노르웨이 숲을 떠올리면서 비틀즈의 원래 노랫말처럼 노르웨이산 목재로 만든 가구를 함께 떠올리기 보다 하루키의 오역에 결과로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왠지 노르웨이 숲은 상실을 연상하게 한다.
하루키가 만약, 휘빈케( Hyvinkää )의 핀란드 국립 철도 박물관을 알았더라면 다자키 스쿠루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헤멘린나가 아닌 휘빈케로 갔을까? 소설의 내용상 그녀는 여름휴가동안 summer house에 머물기위해 떠났으니 휘빈케보다 헤멘린나가 어울리기도 하겠단 생각도 든다.
Kerkkoo에서 휘빈케는 차로 한 시간, 그 위로 한 시간을 더 가면 헤멘린나다. 나의 상상속에서 하루키가, 혹은 다자키 스쿠루가 그리했을지도 모르는 고민을 잠시 했다. 하멘린나까지 갈까, 그냥 휘빈케까지만 갈까...잠시 후 고민을 거두고 휘빈케까지만 가기로 한다. 하멘린나는 좀더 여유있게 가서 머물자는 생각으로 뒤로 미룬다.
휘빈케에 가는 유일한 이유는 핀란드 철도박물관, 이 박물관 하나를 위해 우리 집에서 두 시간을 달려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궁금한 곳, Kerkkoo에 온 김에 들러보기로 했다.
슬슬 걸으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지 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또 달린다. 오래전 철도역사로 사용되던 곳을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기찻길따라 은근하게 베어 있는 기름냄새와 엔진냄새도 여전하다.
시대별로 운행되었던 다양한 등급의 열차들이 보존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관람루트를 설치해 두었다.
유리창 너머지만 꽤나 고급스러운 객실도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장교와 어느 귀족 아가씨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불태웠을만한 그런 곳이다. 물론 일반 객실도 구경할 수 있었지만 좀더 낡았을 뿐 지금의 내가 이용하는 객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감흥은 없다.
큰 건물 두 개를 다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면 다시 눈밭이다. 날씨가 좋은 때에는 각종 이벤트와 체험행사가 열리곤 한다지만 평일에는 12시부터 3시까지 고작 세 시간동안만 운영하는 이 계절에 체험이벤트를 원하는 것은 왠지 무리인 것 같다.
조금 멀리 떨어진 작은 건물에는 그동안 핀란드 철도근무자의 근무복부터 역의 이름을 알리는 팻말, 송수신 방법 등 '기차'자체가 아닌 운행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서 구경하면 될 줄 알고 겉옷을 차에 두고 내린 탓에 바깥 공기가 더욱 매섭게 느껴진다. 우리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또 달린다.
잠자리채인가? 이게 뭐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안내문에 적힌 핀란드어를 구글번역기로 돌려 본다.
오오!!! 신기하다!!!! 라디오송수신 장비가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기차를 운행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종이에 적어 저 잠자리채처럼 생긴 물체에 끼운 뒤 기차가 다가올 즈음 역무원이 들고 플랫폼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기차안에 있던 역무원은 팔을 뻗어 끼워둔 메모지를 챙긴 뒤 하나 하나 읽어나가며 운행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박물관 지도가 담긴 안내문을 끼워 보았다. 짱짱하게 고정해 주는 것이 어지간해서는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신기신기!!! 오늘 본 것 중에 제일 신기하다.
우리 모녀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는 방명록 작성!
오늘도 대한민국과 독도알리기에 열심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아 한참을 앉아 여러 장을 만들어 붙여두고 왔다. 제발, 우리가 적은 것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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