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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09. 2016

핀란드의 아이들

왜 교육천국이라 하는가?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동계올림픽 중계를 시청하고 피겨선수권대회를 챙겨보게 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김연아 선수'라는 선물덕분이지요. 김연아 선수의 팬이건 아니건 간에 척박한 동계 스포츠의 현실을 딛고 세계에 우뚝 선 그녀의 노력과 재능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넷상 김연아선수의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저 어리고 여린 선수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고통속에서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채찍질했을까요. 그녀의 강한 정신력은 본인안에서 자라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엄마아빠 어깨넘어 김연아 선수의 경기영상을 보던 딸아이들이 피겨스케이트를 배워 보고 싶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의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를 타서라도 집에서 다닐만한 곳은 과천시립체육관이었는데 기초반 대기자가 여럿이라 언제쯤 수강할 수 있을지 요원했습니다. 게다가 과천시민도 아니었고 한국에 남아 있을 시간도 많지 않아 개인레슨을 시작합니다. 딸이 둘이니 두 아이 함께 2인 그룹으로 레슨을 하면 수영이나 다른 레슨처럼 좀 저렴해지지 않을까 문의했지만 4명까지 한 팀으로 받고 각각 개인레슨의 비용을 내는 것이라 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장비며 개인레슨비가 부담스러웠지만 강습을 시작합니다.


비용은 좀 늘지만 단기에 집중해서 배우고자 주 3,4 회로 강행군을 한 결과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승급시험을 볼만큼의 실력은 되었습니다. 다만 미국에서는 마땅한 피겨강습을 찾지 못해 역시나 한국에서부터 배우던 체조를 꾸준히 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은 축구나 농구 등 특별한 장비나 장소가 갖추어 지지 않아도 공만 있으면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을 많이 하더군요. 수영역시 매우 인기있는 종목이어서 여름이면 매주 풀파티를 열어 함께 놀곤 했습니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초등 중학년 이상만 되어도 기존의 예체능을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 한다면 언제까지 시켜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예체능을 꾸준히 하고 있는 학생이 급격히 줄고 중학교에 진학하면 상당수가 국영수공부에 집중합니다. 진학을 위한 스펙도 신경써야 하고 영어도 수학도 어느 하나 대충할 수 없습니다. 학습부담때문에 맘 편히 친구와 수다를 떨며 놀거나 운동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지요.


핀란드에 와서 아이들의 하교 후 일상은 저나 제 아이들에게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초등 고학년, 중학생들도 하교 후 학습을 위한 학원을 다니는 아이를 아직 한 명도 목격하지 못했음은 물론 소위 ' 엄마표 학습' 이라 불리는 학교 숙제외의 공부를 가정에서 하는 아이도 아직 못만났습니다.


정기적으로 학기에 한 번씩 열리는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소개를 하고 학부모 질문 및 건의시간이 되었는데 한 엄마가 선생님에게 이야기합니다.


' 요즘 나눗셈 배우는거 말이야... 숙제하는 데에 우리 애가 너무 오래 걸려... 애가 잘 몰라서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학교에서 더 연습시켜야지 숙제를 내면 어쩌니?'


그러자 여기저기서 동요합니다. ' 맞아, 우리

애도 한참을 붙들고 있더라.... 이건 좀 아니야'


아마 이 상황이 어색하고 낯선 것은 저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3학년 무렵에 배웠던 나눗셈을 5학년이 이제 배우는데 , 그나마도 어려워서 숙제하는데 힘들어 하니 좀더 가르치라고 요구합니다.  많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라면 ' 어머님, 00가 이번 나눗셈 단원평가에서 점수가 좋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연습을 좀 시켜주세요.' 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는 아이가 공부를 많이 해야하고 잘해야 한다는 열망이 한국의 부모들에 비해 아주 약한 것은 물론, 아이가 설사 공부를 더 해야한다면 그건 엄마의 몫이 아닌 학교의 몫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여성들이 일터에서 양육과 아이 뒷바라지에 덜 신경쓰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에서 아이가 어떤 면에서든 부족하면 그건 엄마책임이고, 심지어 일하는 엄마라면 그건 엄마가 일하기 때문에 애를 안챙겨서다.

너무나 다른 분위기...


자, 학원도 가지 않고 엄마표 학습도 하지 않는 핀란드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방과후 시간을 보낼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려서 부터 익혀 온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예컨대 너댓살부터 피겨스케이트를 배운 아이는 스케이팅 클럽에 소속되어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고 시즌 별 아이스쇼를 준비합니다. 열대엿살이 넘어 상당한 레벨이 된 언니들은 클럽의 코치로 동생들을 지도합니다.

다 큰 딸아이들이 어린 친구들과 입단테스트를 받는 중입니다. 앞에 있는 코치의 동작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테스트가 진행됩니다.
스케이팅 공개수업날입니다. 어린 친구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귀여워서 찍었어요. 이보다 더 어린친구들이 연습하는 레벨도 있는데 주니어언니들이 함께 스케이팅해요.

클럽 방식의 시스템이라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더욱이 겨울나라이기 때문인지 인구 몇 안되는 작은 도시에 거대한 아이스링크가 여러 개 있습니다. 강습이 없는 시간대에는 누구나 무료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어요.


한산한 시간대에는 이 넓은 링크에서 혼자 연습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가대표선수들도 공공이 이용하지 않는 새벽시간대에 링크를 대여하여 이동해 가며 연습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민망하기도 합니다.


남자아이들의 경우 아이스하키를 많이 하는데, 휴일에 스케이트장에 나가 보면 세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빠들은 관중석에서 아들이 속한 팀을 응원하느라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도 질러댄답니다.


클럽별 대항전이나 공동 아이스쇼도 개최되면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모두가 축제처럼 즐깁니다. 비단 스케이트만 이런 것은 아닙니다. 큰 아이의 친구는 세살부터 체조를 배웠는데 도시의 큰 체조클럽 중 하나에 소속되어 연습중입니다. 종종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하느라 결석을 하기도 하고 대회직전에는 매일같이 클럽에 나가 두세시간씩 연습합니다. 물론 이 아이는 체조선수를 희망하는 아이는 아니고 그저 취미인 체조가 좋을 뿐..


많은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이나 악기연주를 하며 방과후의 시간을 보내고 좀더 적극적인 엄마를 둔 아이는 친구들과 플레이데잇 또는 슬립오버를 하며 어린시절의 우정을 나눕니다.


Turku skating club, 딸 아이들이 소속된 스케이팅 클럽 이름입니다. 이곳에 이사오자 마자 스케이팅 강습을 알아본 결과 클럽 입단 테스트날짜 직전에 코치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테스트를 위해 링크에 방문한 아이들의 연령대가 모두 취학전연령이었고 심지어 3,4 살로 보이는 이제 겨우 걸었을 법한 아이도 있어서 맞게 잘 찾아온건가... 당혹스러웠어요.한국에서 레슨을 받았던 것이 효과를 발휘하여 아장아장 꼬마아이들과 같은 레벨에 편성되지는 않았지만 큰 딸은 현재 레벨에서 가장 학년이 높습니다. 중간 레벨의 그룹인데 1,2 학년 아이들이 주축입니다. 딸 아이들 또래의 소녀들은 이미 얼음위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팽이처럼 수도 없이 돌기 때문에 같은 레벨에서 또래와 강습받기는 어렵답니다.


지난 시즌에는 겨울시즌을 마감하며 크리스마스 공연을 했습니다. 너댓살 꼬마 아이들부터 고등학생쯤 되보이는 성숙한 숙녀들까지 각 팀을 대표하여 공연을 펼쳤습니다. 아이들 뒤로 관중석이 텅 비어있지만 반대편 관중석을 꽉 채워 모여 앉아 있어요. 정식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링크여서 상당히 넓은 곳이라 관객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한 편에 모여 앉은 것. 부모님들과 친구들이 관중석에 모여 앉아 쇼를 관람하고 응원합니다. 공연을 하는 아이뿐 아니라 즐기는 가족들에게도 하나 하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핀란드의 아이들은 부모대신 학교가 학습을 담당하고 요구되는 학습의 부담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학교에서 바느질과 목공을 배우고 숲에서 지도를 보며 길찾는 법, 안전하게 자전거 타고 다니는 법 등을 배웁니다. 하교 후에는 저 마다의 취미활동을 하고요... 핀란드가 교육천국이라 불리우는 것은공부를 잘 시켜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즐기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의 철학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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