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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16. 2016

수업시간에 만난 가우디

핀란드의 프로젝트 수업

' 엄마! 내 직업은 디자이너구요, 틸다랑 마릴린은 내 모델이라 같이 일해요.'


' 나는 아침에 원단공장에 들렀다가 점심때 샌드위치 먹고 옷가게로 가요'


' 주말에 패션쇼를 열어요, 틸다가 메인모델인데 빅토리아시크릿쑈처럼 큰 날개를 달고 쇼를 해요'


'나는 휴일에 엄마집을 방문하기로 언니랑 약속했어요. 언니는 작가인데 틈날 때마다 내 가게를 도와줘요'


'엄마가 섬머하우스를 새로 수리한다고 해서 내가 디자인해 주기로 했어요, 써니아가 건축가라서 같이 일할거에요'


학교만 다녀오면 무슨 소린지 실재로는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몇일째 떠들어 대며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작은 딸.선생님과 진행하는 프로젝트수업의 일환이다.


이번 주제는 ' 직업 ' 인데 각각의 아바타같은 캐릭터를 가상으로 만들어서 원하는 직업을 부여한다. 처음에는 직업에 대해 특정하고 조금 지나니 가족과 사회로까지 그 영역이 차츰차츰 넓혀진다. 친구들은 하나의 커다란 사회구성원이고 디자이너와 모델은 패션업계의 유기적인 관계를 체험한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친구는 다양한 직업의 손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 손님들은 또다른 관계를 맺어가며 커다란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지난 봄 한국에서 잠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교장선생님께서 ' 직업의 세계 프로젝트'를 추진하셨다. 학부모님들의 직업이 이리 다양한데 직접 오셔서 직업에 대한 소개를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으나 각 반의 담임선생님들은 어느 부모님을 모셔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설사 아이들에게 소개하기에 흥미로운 직업의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남앞에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분도 계실테고 혹은 시간을 도저히 낼 수 없는 분도 계실테고... 현장에서 진행하려니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리라...


다행스럽게도 작은 아이의 반에는 수의사, 식품안전연구원 등을 직업으로 가지신 학부모님들이 자원해 주셨지만 큰 아이 반에서는 자원자가 나오지 않는지 벌써 네번째 통신문이 배부된다. 아마 젊은 여선생님께서 강하게 부탁을 못하시니 서로 나서지 않는 것 같다. 별 수 없이 총대를 메고 아이들에게 수업을 진행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재산은 어떻게 지키나요?' 가 주제다. 나는 특허권등을 제외한 지적재산권, 즉 기업비밀을 법적으로 권리화하고 보호하는 공부를 하고 일을 해온 사람이니 흔하지 않은 직업중에 하나이고 수년간 강의를 진행해 온 탓에 사람을 앞에 두고 말하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니 담임선생님도 도울 겸 나선 것이다. 최대한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강의를 구성했지만 강의식 수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핀란드에 와서 아이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수업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 더딘 것 같아도 아이들이 직접 이끌어 나가는' 프로젝트 수업의 장점에 감탄하게 된다. 하루는 작은 아이가 차에 타자마자 ' 가우디'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 건축을 공부하는 언니들이 와서 가우디의 건축물을 소개해 주고 함께 공부했는데 너무나 멋져서 직접 보러 가고 싶다고 한다.


나중에 알아보니 대학원의 건축전공 학생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돕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 이날 이후로 아이들은 직업을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캐릭터들의 집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의 구조와 외관 등에 대해 글로 정하고 조감도처럼 그림으로도 그려 보더니 어느날 부터 박스를 모아 직접 집을 만들었다. 모두의 집이 완성된 날, 강당에 큰 마을을 만들어 학부모들을 초대해 각자의 집과 마을을 소개하고 누구의 집이 가장 잘 만들어졌는지 투표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큰 박스에 색칠을 하고 문과 창을 그려넣었는데 유독 작은 딸의 집만 창문이 뚫려 있고 문이 열린다. 아이는 빛의 건축가 가우디에서 영감을 얻어 창이 많은 집을 만들고 싶었다고 발표한다. 아이는 창문이 뚫려 있으니 집안 내부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각 방의 특징에 맞는 가구와 물품들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꾸몄다. 이곳은 거실인데 오후가 되면 이쪽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여기 안쪽에 쇼파를 두었다고도 설명하고 다이닝룸은 식사를 하면서 뒷뜰을 향해 난 창문으로 아침햇살을 감상할 수 있다는 둥, 제법 그럴듯하게 발표를 마친다.


심사와 투표를 마치고 최고의 건축가상 시상식이 진행된다. 창문 하나하나, 집안 구석구석까지 세심하게 꾸민 작은 딸아이가 1등을 하고 상품으로 아이 팔길이만한 산타할아버지 초콜렛을 받았다.




창문이 많고 세부작업이 많아 고생하는 아이를 줄곧 도와준 아이다도 뛸듯이 기뻐하며 축하해주는데 시선은 쵸콜렛에 머문다. 초콜렛이 부러운가 보다. 다음날 마트에서 비슷한 초콜렛을 하나 사서 아이다에게 주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아이들은 다양한 것을 익히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


이날 이후로 아이는 가우디의 건축물에 푹 빠져 성파밀리아 성당을 꼭 보고 싶다며 꿈꾸는 얼굴로 두어달을 지낸다. 보다 못한 엄마는 핑계김에 바르셀로나 여행을 떠난다.


가우디 투어의 가이드가 되어야 했던 엄마는 기꺼이 가우디 공부에 몰입한다.


꿈꾸어라 딸들아, 엄마가 함께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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