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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Dec 17. 2016

파리,오르세미술관 #1 자연주의를 말하다

장 프랑스와 밀레

연합군 최고사령부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전에 앞서 장병들에게 말하기를 이 작전을 십자군 전쟁에 비유하였다. 독일을 상대로 한 연합군이 유럽에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된 역사적인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한국전쟁당시 인천상륙작전과 맞물려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밀레는 가난때문에 파리와 노르망디를 오가며 그림을 그려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나갔다. 밀레의 초기 작품 중 유난히 초상화가 많은 것은 밀레가 젊은 시절 초상화 작가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무명의 화가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초상화를 그려 파는 것이었고 밀레의 첫 스승역시 초상화가 폴 뒤무셸이었으니 밀레로서는 초상화를 그리게 된 것이 어찌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밀레는 계속되는 생활고로 인하여 누드화를 그려 돈벌이를 하기도 했으나 말년에 명성을 얻게 되기까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오랫동안 가난에 시달렸다는 것으로 보아 밀레의 초상화는 많이 팔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남긴 초기 작들중 상당수가 그의 첫 아내 폴린느 오노 또는 친척을 그린 것이다.


폴린느 오노의 초상
실내복을 입은 폴린느 오노의 초상
루크르트 부인의 초상, 오노의 자매다, 루브르
미망인 루미부인의 초상, 오노의 먼 친척
아망 오노의 초상, 밀레의 처남이다. 즉 오노의 남동생

화가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살롱전 출품을 번번이 거절당하고 아내 폴린 마저 결핵으로 죽게 되자 다시 한 번 파리를 떠난다. 이 무렵 밀레와 오노는 굶어죽기 직전이었다고 하니 그 가난의 깊이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여전히 파리와 고향인근을 오가며 누드화, 신화화등을 그렸지만 화가로서 인정받기는 커녕 생계유지조차  어려웠던 힘든 시절이 계속된다.


아내가 죽은지 4년 후, 밀레의 살롱전이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열리고 이때 출품된 작품 중 하나가 Oedipus Taken down frome the tree다

캐나다미술관에 소장된 이 그림은 사실주의 그림으로 분류된다. 사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하고 하나의 미술사조로 이해하기에는 밀레를 제외한 다른 화가들의 큰 흐름이 보이지는 않아 일부는 자연주의를 미술사에서 제외하고 사실주의의 범주로 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연주의는 밀레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고도 한다.캐나다 미술관에서 어떤 의미로 이 그림을 사실주의로 분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밀레하면 떠오르는 목가적 자연주의 화풍이 보이지는 않는다.


키질하는 농부, 오르쉐

밀레에게 성공다운 성공을 가져다 준 첫 작품, 키질하는 농부는 살롱전 성공을 거둔 이듬해 작품이다. 이 작품이 비평가들은 물론 대중에게도 밀레를 알리게 되었음은 물론 국가의 작품주문을 받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지만 이번에는 생활고가 아닌 다른 이유로 파리를 떠난다. 파리에 콜레라가 유행하고 밀레의 누이가 죽게 되면서 밀레는 다시 한 번 파리를 떠나 바르비종으로 이주한다.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바르비종, 밀레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밀레의 두번째 부인이 식당 종업원이라는 이유로 밀레의 어머니가 밀레의 결혼을 반대하고 아내를 인정하지 않아서 이 일이후로 어머니와 인연을 끊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일설에는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농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돈도 못버는 무명화가, 심지어 첫째 아내는 병약해서 가난병이라고도 불리우는 결핵으로 죽었는데 식당여종업원 며느리는 싫으셨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쓸데없는 아들부심을 부리는 시어머니는 존재하는가 보다 싶어 씁슬하다. 하지만 밀레가 그덕분에 바르비종으로 이주하여 자연주의의 산실, 바르비종파가 탄생하게 되었으니 세상사가 놀랍도록 재미있다.


오르세미술관에는 만종, 봄, 실잣는 여인, 양치는 소녀와 양떼, 이삭줍는 사람들, 키질하는 농부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모두 이 무렵부터 그린 그림들이다. 밀레 특유의 자연, 특히 농촌풍경을 암울한 톤으로 그려낸 자연주의풍 그림이 형성된 시기이고 이전의 초상화, 신화화에서 볼 수 없던 농촌의 일상, 농부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게 된 시기이다. 평범한 현실을 현실 그대로 그린다는 사실주의에  좀더 세분하여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자연주의가 시작된 계기가 되기도 한다. 혹자는 농촌을 주로 그렸다 하여 농촌주의라고도 한다.


이삭줍는 사람들
양치는 소녀와 양떼
실 잣는 여인
만종
봄, 말년에는 농촌의 사람들이 아닌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사계시리즈가 있다. 사계시리즈 중 봄, 오르세에서 볼 수 있다


밀레의 작품 이미지를 찾으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위키디피아를 그대로 복사한 수많은 블로그들을 보았다. 복붙복붙된 듯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게시물을 보다가 문득,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되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부분을 발견했다. 마치도록 궁금해서 외국사이트까지 다 뒤져보았으나 알아낼 수 없었으니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알고 계신 분은 제발 좀 알려주세요



위키디피아와 수많은 블로그의 내용 중


The harvesters 라는 그림을 그리고 국가에 기증하였다.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그림이 뭐길래 국가에 기증했을까? 국가에 기증한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저 그림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안나옵니다. 궁금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때문에 금요일밤을 검색으로 지새웠지만 하나같이 위키디피아의 저 문장을 옮겨만 놓았을 뿐 ( 이런 글들은 앞뒤 내용도 물론 위키디피아 ) 별다른 내용설명이 없었어요. 위키아트와 잔밀레 공식사이트 등을 찾아가서 Harvesters 단어를 넣고 밀레의 모든 작품을 검색해 보았는데 '추수중에 휴식을 취하는 농부들' 만 검색됩니다. 작품년도와 내용 설명상 이 그림은 보다 나중에 그려진 그림이라 다른 그림이라 판단되고요. 같은 제목으로 검색되는 그림은 다른 작가의 작품입니다.

매트로폴리탄에 있는 The harvesters, Pieter Bruegel the Elder

밀레의 추수하는 사람들이라고 검색하면 레루미트의 그림이 나오고요...



밀레의 추수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위키디피아 영어 사이트에는

 painted The harvesters, commission for the state. 라고만 나와요.


내일 당장 도서관에 가볼까 합니다만 핀란드도서관이라 제가 읽을 수 있는 자료가 있을런지. 궁금해서 못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 분들은 저 그림과 기증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어서 복붙으로 끝낸걸까요? 그것도 궁금합니다. 다들 알고 나만 모르나,


아시는 분 플리즈, 제 궁금증을 해결해 주세요. 심각한 얼굴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는 제게 다가와 딸이 말했어요.


엄마, 이럴 때 무서워요...

그만 무섭고 싶습니다........


밀레의 역작, 만종과 이삭줍는 사람들은 다음 편에서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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