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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Dec 19. 2016

파리, 오르세미술관 #4 고흐, 노랑노랑

오르세의 고흐 3대작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고흐!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들, 정신병으로 인해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일화, 고갱과의 관계 등 그를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들은 물론 고흐의 작품 몇개정도는 이름을 알고 있으며 심지어 그 그림을 보고 어떤 작품인지 아는 경우가 많다.  


특정 작가의 유명한 그림, 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은 대게 한두작품으로 집중되는 경우가 많은데 고흐의 경우에는 사랑받는 작품도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고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작의 왕이었기때문에 가능한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창에 '고흐의 작품들'이라고 검색어를 넣고 검색해 보았다.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자화상, 붓꽃 등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검색된다. 작품을 주욱 훑어보면 전체적인 색감이 노랑노랑하다.    산업혁명 이후, 색채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19세기에 들어서는 유화물감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산업혁명과 색채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산업혁명의 결과 대량생산, 대량공급이 가능해지면서 제품에 대한 표준이 필요해 졌고 색채에 있어서도 표준이 필요해졌다. 각각 다른 생산 라인에 노란색 양말 천 켤레라고 주문을 넣은다고 가정했을 때 같은 노랑의 결과물이 나올 확률은 주문을 받은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해질 수 있다. 결국 색채학이라는 학문이 정립되고 유화가 발달하면서 안료의 색상에 대한 국제적 표준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고흐는 크롬엘로우(Chrome yellow)라는  색채를 사용하게 되는데 크롬옐로우 크롬산염을 주성분으로 하여 만든 안료이다. 간혹 블로거들의 글을 보다 보면 크림옐로우라고 잘못 쓴 글들이 많은데 이 안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옮겨 적다가 잘못 기재한 것 같다. 언뜻 보면 크림옐로우라는 부드러운 느낌의 노란색이 있을 것만 같은 착각


크롬옐로우는 Chromium이라는 금속원소에서 따온 말로 본래는 색이라는 뜻의 khroma라는 그리스어에서 출발한다. 크롬옐로우는 제조과정에 따라 붉은 색의 느낌이 나타나는 정도가 다른데 일반적인 노랑보다 붉은 색이 가미된 노랑의 느낌이다.


고흐의 그림으로 돌아가자. 고흐는 붉은 느낌이 묻어나오는 노랑, 크롬옐로우를 즐겨 사용했고 그의 그림이 이전 시대의 그림들에 비해 독특한 노란 느낌을 주는 것은 색채학과 안료배합기술의 성장덕이다. 더욱이 지금은 이런 느낌의 그림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노랑의 변색때문이다. 안료배합기술이 발달하였다고는 하나 완성된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색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그림이지만 원작은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오르세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고흐의 대표작으로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들 수 있다.


본래 고흐는 이 그림에 제목을 붙이기를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만 붙였다. 다만,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또다른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이 있어서 두 그림을 구분하기 쉽게 그림이 그려진 배경, 아를을 제목에 붙여 부르는 것이다. 혹자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도 한다.


별이 빛나는 밤, 뉴욕 현대미술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오르세
고흐의 작품목록을 보여주는 오르세미술관앱을 보면                        두 그림의 제목은 본래 같다.

아를(Arles)은 마르세유, 아비뇽과 함께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와 경계를 맞닿고 있는 프로방스지역의 대표 도시다. 론강 동쪽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를 따라 론강이 흐른다. 그 론강의 다리위로 빛나는 별과 풍경을 그린 것이다. 1988년, 고흐는 파리에서의 고된 삶을 뒤로 하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아를로 떠났다. 남유럽을 제외한 유럽의 겨울은 어둡고 춥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남쪽 지방의 따뜻하고 햇살이 눈부신 마을로 이동을 한 기록이 많은데 길고 어두운 핀란드의 겨울을 겪어 보니 막연히 생각되던 그들의 이동이 얼마나 절실했을지 가슴에 와닿는다.


예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세계와 현실사이에서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는 것도 아닌 나조차 겨울이 되면 남쪽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찾고 찾고 또 찾는다. 실현하고 싶은 예술의 세계와 절망과 가난만이 남은 현실속에서 고뇌하던 고흐가 그해 2월, 음습한 파리를 떠나 아를에 당도했을 때, 그곳의 햇살과 풍경은 얼마나 아름답게 여겨졌을까...


애정을 가지고 보면 더 자세히 보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했던가? 고흐는 별과 강물, 다리를 그리면서도 다리 주변의 가스등의 위치, 갯수, 모양을 완벽하게 똑같이 재현했으며 밤하늘의 별들 역시 북두성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그려나가며 그림을 그릴 당시의 밤하늘을 정확하게 그려냈다고 한다.


아를의 침실


침대와 의자, 액자 틀 등이 크롬 옐로우 색상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다고 하지만 작은 탁자의 오랜지 색상과 비교해 보면 좀더 노랗다.


고흐는 아를로 이주한 약 반년 뒤에 이 작은 집을 얻었고 예술가들의 집이 되길 바랬다고 한다.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간소하나마 가구를 갖추고 고흐의 침실을 완성하는데 고흐는 이 침실을 총 세 번 그렸다. 첫번째로 그린 그림은 고흐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홍수의 피해로 그림이 손상된다. 그래서 고흐는 이듬해 가을에 다시 한 번 그의 침실을 그렸고 이 그림은 시카고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시카고인근에 살면서 시카고미술관에 들러볼 기회가 많았는데 그곳을 떠난 지금은 왜 좀더 자주 가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크다. 틈이 날때마다 여행을 하고 미술관과 박물관 나들이를 했음에도 떠나온 지금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큰 곳을 보면 유럽에 살고 있는 오늘 하루하루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게 된다. 이곳을 떠난 뒤에는 지나가 버린 이곳에서의 하루가 얼마나 또 그립고 아쉬울까...


두번째 그림을 그린 시기에 고흐는 어머니를 위해 한 번 더 그의 침실을 그렸는데 이 세 번째 그림이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앞의 두 그림에 비해 작은 크기로 그려졌다.


전시기획자들은 아를의 침실 연작시리즈를 기획하기도 한다. 올해 초 시카고 미술관에서는 북미 처음으로 아를의 침실 연작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고흐의 침실을 실제로 재현하여 미술관안에 마련해 두었다. 심지어 미술관 북쪽에 위치한 아파트를 빌려 고흐의 침실을 재현한 뒤 에어앤비에 올려 숙박예약을 받기도 했으니 ( 이 방의 침대는 숙박을 위해 이층침대로 제작되었다) 실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이런 이벤트가 있었다면 반드시 가보았을 텐데 말이다. 저 크롬옐로우 색상 침대에 누워 볼 수 있었을 텐데... 초록 창틀을 열고 오랜지색 작은 탁자에는 해바라기 꽃을 사다 놓았을 지도 모른다.


아를의 침실 연작

고흐의 침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침대 옆 오른쪽 벽면에 액자가 여러 개 보인다. 그 중 첫번째 액자를 보시라, 오르세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흐의 자화상이다.



자화상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검색해 보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자화상이 검색된다. 역시 다작왕! 넘쳐나는 예술의 의지와 열정, 정신적 피폐와 현실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림 한 점이라도 팔아서 돈을 벌고자 했던 그였기에 생활고로 인한 왕성한 활동이었는지도 모르고...

오르세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고흐의 자화상은 고흐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그 해에 그려졌으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입술에 빨간 실선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경직된 얼굴과 꽉 다문 입술, 입술이 갈라져 피가 새어나온 것으로 추측되는 붉은 실선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그 무렵, 그가 싸워야 했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Don Maclean의 Vincent 감상하시겠습니다


https://youtu.be/DD1ih3Q9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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