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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Apr 03. 2017

#6 고흐미술관 My best of 밀밭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1889년 5월, 고흐는 셍레미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며 치료받기를 자처한다. 그를 괴롭혔던 정신병이 극에 달했음과 고흐 자신도 정신병을 극복하기를 갈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소망과 달리 안타깝게도 일년 만에 정신병원을 나서게 되고 끝내는 자살로 불꽃같은 생을 마감한다.


고흐는 병원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정신병원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그리곤 했는데 그의 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이 제한적이다 보니 같은 풍경을 연달아 그린 연작시리즈도 여럿 남기게 되었다.

1889년 7월, 삼나무가 있는 밀밭 뉴욕메트로폴리탄소장
1889년 9월, 삼나무가 있는 밀밭 런던내셔날갤러리 소장

나만의 고흐의 밀밭3대장으로  삼나무가 있는 밀밭을 꼽을까 수확하는 사람이 있는 밀밭을 꼽을까 마지막까지 망설이다가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그림위주로 꼽기로 했다. 삼나무가 있는 밀밭이야기는 뉴욕에서 7월의 밀밭은 보았으니 이번 여름 런던방문시에 내셔널갤러리에 들러 9월의 밀밭을 감상하고 비교후기를 남겨보는 것으로...


수확하는 사람이 있는 밀밭

수확하는 사람이 있는 밀밭 1889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그때 나는 수확을 끝내려고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인물에게서 죽음의 이미지를 보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베고 있는 밀이 인간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얼마 전 그렸던 씨뿌리는 사람과는 정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이 죽음은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한낮의 태양아래서 일어났기 때문에 슬프지는 않아


고흐는 그의 남매들 중 테오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중 빌레미나와는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고흐는 수확하는 사람이 있는 밀밭을 그린 뒤 빌레미나에게 보내면서 함께 보낸 편지에 위와 같이 적고 있다. 이 문구를 두고 훗날 고흐의 밀밭은 고흐의 일생이며 밀이삭이 떨어지는 것은 죽음을 예견한 것으로 훗날 고흐가 자살할 것이라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이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다.


고흐는 농부가 밀밭에서 수확하는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중간에 발작이 일어나 한동안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반기에 들어서서 그림을 마무리하였는데 이 그림이 고흐의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그렸다고 한다. 여동생게 보내지고 지금은 암스테르담의 고흐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그림은 두번째 버전이다.



흐린 날의 밀밭

흐린 날의 밀밭,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셍레미 정신병원을 나선 고흐는 파리로 향하지만 단 3일(혹은 닷새라고도 한다)간만 테오와 머물고파리를 떠나 오베르로 떠났다.


당시 테오의 집에는 테오의 아내와 어린 조카 빈센트도 함께였으므로 함께 지내기에 불편하기도 하였고 고흐가 기억하는 과거의 파리와도 달라져서 그림을 그리며 머물기 적당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파리를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베르에 도착한 고흐는 테오의 소개로 만난 정신과의사 가셰와 머물며 다시 그림그리기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그려진 밀밭의 명작이 다름아닌 흐린 날의 밀밭 혹은 천둥구름아래 밀밭이다.


건강을 위하여 뜰에서 제작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기도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바다와 같은 넓은 언덕을 향하여 펼쳐진 밭을 그리는 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대작 3점 중 하나로 이 역시 천둥이치는 폭풍속의 밀밭입니다. 저는 완전히 이 밀밭을 그리는 데에 모든 것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중



고흐의 편지를 읽지 않고 흐린 날의 밀밭을 본다면 이 그림에서 죽음을 읽어내는 것이 쉬울까? 나의 경우에는 고흐의 심경과 관계없이 그림을 먼저 접했는데 그림을 파악하는 제대로 된 눈이 없는 것인지 마냥 평화롭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었다. 고흐미술관에서 구입한 흐린 날의 밀밭이 둘러진 머그잔을 십년 넘게 간직하고 있는데 매일 보며 정이 들어서인지 고흐의 슬픔과 사연을 다 알고나서도 여전히 평화롭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천둥구름아래 밀밭보다 흐린 날의 밀밭이라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


까마귀가 있는 밀밭,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

천둥구름 낀 하늘보다 더 어둡고 강렬한 하늘에는 구름이 소용돌이치고 까마귀떼가 날고 있다.예로 부터 까마귀는 죽음과 불길함을 암시하는 새로 여겨져 왔다. 고흐가 그동안 그려왔던 밀밭에 비해 격정적으로 흔들리는 듯한 모습의 밀이삭들과 밀밭을 가로지르는 세 갈래길이 좌우로 끊긴체 캔버스에 담겨 있다. 군데 군데 끊어버려 온전한 길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굳이 세 갈래 길이 시작되는 지점을 화폭에 담은 고흐의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그림이 고흐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살의 암시, 죽음의 전조를 읽어내려 애쓴다. 세 갈래로 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그림이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고흐의 갈등을 떠올렸다. 가난과 건강악화로 괴로왔던 고흐의 좌절감, 화가로서 좀더 성공하고 싶다는 예술적 욕구, 사랑을 이루지도 못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던 고흐의 외로움이 한데 엉켜 지금까지의 고흐를 이끌어 왔다면 이 갈래길에서 부터 고흐는 결단을 내려 한 길을 향해 가고자 했던 것이 아닐런지...


그림 속의 까마귀떼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인지 밀밭을 향해 날아내려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까마귀떼는 분명 한 방향으로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면 세 갈래 길 중 왼쪽 길위에는 까마귀가 날지 않고 있다.어쩌면 왼쪽 길은 삶의 길일런지도 모른다. 이때까지도 고흐는 자살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험난한 삶의 투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왼쪽 길을 택하지 않고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의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 그려진 머그컵을 실수로 깨트렸다. 남편이 사모으던 고흐컬렉션 중 하나인데 나의 부주의로 산산조각이 나버린지 수년이다. 하필 고흐의 마지막 유작을 깨뜨리다니...


고흐는 다시 살아돌아올 수 없지만 수많은 명작으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다행히도 남편의 머그는 다시 살 수 있으니 이번에는 조심스레 다뤄 우리 가족의 곁에 오래오래 다시 두어야 겠다.



나는 극도의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나는 네가 이 그림들을 곧 보길 바래. 내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이 그림들이 네게 말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해...(중략)...다우비니의 정원은 그 세번째 그림이야


다우비니의 정원

고흐편지전문가인 Jan Hulsker박사는 고흐가 밝힌 다우비니정원을 포함하는 대작 3점을 두고 조금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구름낀 하늘아래의 밀밭이 아니라 밀밭, 오베르의 구름낀 하늘아래 밀밭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고흐가 말한 최후의 대작 3점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가 없어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고흐의 밀밭 3대장은 꼽아볼만 하다.


오베르의 밀밭
오베르의 구름 낀 하늘아래 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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