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브란트, 니콜라스튈프교수의 해부학강의
르네상스를 통해 문화의 부흥기를 맞이한 인류는 16,7세기를 거치며 과학혁명의 시대를 맞이한다.
영국의 버터필드는 그의 저서 <근대 과학의 기원>에서 서구 세계를 근대로 이끈 것은 종교개혁이나 르네상스가 아니라 바로 과학혁명이라 역설하고 있다. 과학혁명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시작으로 뉴턴의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로 종결된다. 천문학에서 시작된 과학의 원리들을 설명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과학혁명은 불꽃을 피우게 된다.
과학혁명의 불꽃은 의학에서도 장렬하게 타오르는데 그 절정은 해부학의 발전이다. 해부학의 성전으로 일컬어지던 갈레노스의 이론을 뒤집은 베살리우스는 사형수들의 시체를 직접 해부하고 기록하며 실제 인간의 장기와 조직을 낱낱이 파헤쳐 연구한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이자 아버지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완성하고 베살리우스가 근대해부학의 장을 새로이 열며 위대한 고대인들의업적을 뒤집고 비로소 과학 혁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이후 해부학은 꾸준히 발전하여 램브란트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해부학 강의나 실습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시민들까지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 만큼 큰 관심을 끌게 된다.해부학강의가 축제나 이벤트처럼 즐길거리의 하나로 자리잡은 분위기속에서 당시의 유명 외과의사이자 시장을 역임했던 행정가 니콜라스툴프는 해부학강의쑈를 계획하고 이를 그림으로 남기고자 화가를 소개받기에 이르렀으니 그 화가가 바로 램브란트이며 그 기록이 니콜라스튈프 교수의해부(학 강의)이다. 튈프교수의 강의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해부학극장에서 열린 해부학쇼는 사람들의 관심속에서 치뤄지고 이 그림은 램브란트의 출세작이 된다.
단체초상화의 형식을 빌어 해부를 집도하는 튈프교수와 이를 지켜보는 일곱 남성을 그림에 담았다. 명암의 기법을 잘살리는 램브란트의 작품답게 밝게 표현되는 시체의 정교함이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어 두드러진다. 시체의 발밑에 펼쳐진 두툼한 책은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책이다.
외과의사인 튈프교수와 화가 램브란트의 조합은 기이해 보이지만 필연적이면서도 전통이 깊은 조합이다. 피렌체에서는 화가나 조각가가 의사와 같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들이 함께 해부학을 연구, 기록하는 일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파도바대학의 의과쇼수 마르칸토니오 델라토레, 미켈란젤로와 파도바대학의 의과교수 레알도 콜롬보 조합이 있다. 이들의 드로잉중에 인체의 정밀한 드로잉이 수백편씩 남아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 또는 습작의 의미가 아니라 해부학 공동연구의 기록인 것이다. 파도바 대학은 당시의 유명 의과대학으로 베살리우스역시 파도바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램브란트가 살았던 시대의 과학, 특히 해부학의 부흥, 그리고 외과의사와 화가의 조합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 어쩌다 화가가 해부학장면을 그렸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난 이순간부터 우리는 의문 하나를 클리어한 셈이다.
램브란트의 출세작 해부학강의는 헤이그(네덜란드에서는 덴하그 Den Haag라 부르는)의 마우리츠 하위스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만국박람회에서 일제의강제점령 부당함을 알리고자 파견되었던 헤이그밀사, 뜻을이루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자결한 이준열사의 기념관이 있는 헤이그, 바로 그곳이다.
헤이그에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이준열사기념관과 마우리츠 하위스,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대작이 이곳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작품은 무엇일까? 램브란트의 해부학강의를 뛰어넘어 마우리츠하위스의 대표선수역할을 하고 있는 그 그림은 다음 이야기에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