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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Jul 21. 2017

무인도 원정대, 아일랜드 여행

Howth pier끝자락에서 배를 타고 떠나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핀란드의 남서쪽 끄트머리, 발트해를 향해 자리 잡은 곳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Aura강을 따라 조금만 가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이르러 범선이 다닐 정도의 너른 바다가 된다. 핀란드의 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이 수놓아져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은쟁반에 조약돌을 뿌려 놓은 듯한 아름다운 군도가 장관이다.


잔잔한 파도와 반짝이는 물빛에 수놓아진 핀란드 바다는 오월의 햇살과도 같은 따사로운 바다이다. 할머니의 옛이야기처럼 다정하지만 때로는 지루하다. 거친 파도가 절벽에 내달려 와 부서지고 파도가 넘실넘실 일렁이는 다소 터프한 바다가 그리워질 때쯤, 아일랜드로 향했다. 친근하면서도 오밀조밀 예쁜 더블린의 골목을 뒤로 하고 숙소에서 눈을 뜬 첫 아침, 다트에 몸을 싣고 더블린을 빠져나간다. 고작 30여분 달려 왔을 뿐인데 소꿉친구 손잡고 집앞 대문 계단에 걸터 앉아 두런거리던 때를 꼭 닮은 상냥한 더블린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일렁이는 바다가 시크하게 인사를 건낸다.


Howth pier


더블린 근교 바닷가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정박해 놓은 하얀 배들을 지나고 바닷가에 늘어선 레스토랑마저도 지나쳐 길이 끝나 바다에 맞닿을 무렵 작은 배가 한 척 아슬아슬하게 파도따라춤을 추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뱃사람임이 분명한 연륜이 묻어나는 노인과 아저씨의 중간쯤 되는 그의 입에서는 아일랜드특유의 강한 억양이 흘러 나온다.


섬에서는 몇시간이나 머물거니?!?


섬을 다 돌아보려면 얼마나 필요하죠?

다 돌아보긴 힘들거야, 길이 나있지 않은 곳도 많아서 말이야... 길이 난 곳만 따라 가면 두어 시간이면 될거고...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섬에는 길이 나 있지 않은 곳이 더 많은 모양이다. 이들과 어긋나 배에 다시 타지 못한다면 이곳에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최대한 약속을 정확하게 해야만 한다.


현재 시각과 섬에 머물 시간, 그들이 배를 가지고 우리를 태우러 올 시각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배에 올랐다. 일렁이는 배위에서 물살이 튀어 올라 여기저기를 적시는 와중에 집앞의 잔잔하기만 하던 바다와 참 다른 이 바다때문에 가슴이 뛴다.


우리를 태운 배가 Howth pier를 뒤로 한체 얼마나 달렸을까, 돌산과도 같은 섬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정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가?
저 아저씨들이 꼭 우리를 데리러 오겠지?
괜히 돈을 다 지불했나?
절반은 돌아가서 준다 할 걸 그랬나?


섬에 다다를수록 생각이 복잡해 진다. 배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가방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 비상식량은 있는지 괜시리 확인을 한다.


배에서 내려 엉성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자 마자 배는 뭐가 그리 급한지 그사이에 저만치 달아나 보일듯 말듯 멀어지고 있다. 정말 무인도인가 보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없이 새들만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본다. 사람이 무섭지 않은 모양인지 제법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갈 생각이 없다. 문득 연어알,물새알 새들의 고향이라던 독도가 떠오른다.


왠지 바닷가를 따라 가다 보면 길을 잃지 않을 것만 같아 바닷가쪽으로 내려가 보았는데 길이 막혀 더 갈 수가 없다. 돌무더기를 타고 올라 다시 되돌아 오는 수밖에...영차



능선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능선너머 다시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딱히 길이 정해져 있지는 않은 것같지만 누군가가 먼저 지나간 흔적은 남아 있다. 아마 우리처럼 아까의 그 배를 타고 이섬을 탐험하러 왔던 누군가의 흔적이겠지...돌이 조금 더 평평한 곳, 풀이 조금 덜 자라 발을 디딜 수 있는 곳들을 따라 길인듯 아닌듯 걸어 나가며 누군가에게 남겨질 흔적을 보탠다. 바로 저 아래 바다가 닿을 듯한데 길이 바로 나있지 않고 경사가 가팔라 한참을 구비구비 돌아내려가노라니 어느새 다리가 떨리고 등줄기엔 땀이 맺힌다.


여긴 또 어찌 지나가려나, 세로로 겹겹이 쌓아 놓은 듯한 돌계단을 네발짐승마냥 손과 발을 다 써가며 엉금엉금 기다가 제법 평평해진 곳에 이르러서야 허리를 펴고 섰다. 길이 없다는 저너머는 도대체 얼마나 험준할까? 배시간에 늦지는 않았냐고, 배가 오기로 한 것은 맞느냐고 재차 묻는 것을 보니 아이들도 이 섬의 야생적인 냄새를 강하게 맡은 듯 하다.



배는 언제 오려나...혹여 배를 놓치게 될까봐 약속한 시간보다 서둘러 돌아오니 하릴 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배를 기다린다. 사람은 없고 자꾸만 새들이 찾아든다. 그런데 이 섬의 이름은 뭐였더라... 그냥 무인도라고만 하자.


무인도원정대 무사귀환!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걸었던 저 섬에서의 시간들은 우리가 힘겹게 딛고 남긴 흔적처럼 잊혀지지 않고 새록새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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