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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23. 2018

무르익는

삼월은 설레기도 하고 정신없기도 한 시기였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던 시기

직장맘의 흔한 고민끝에 전업맘이 되어서 맞이한 아이도 엄마도 처음인 학교생활은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정신없었던 기억만 남기고 다시 맞이한 삼월은 긴긴 시카고의 칼바람겨울끝, spring break를 기회삼아 떠나는 가족여행에 설레고 바빴다. 그리고 다시 맞이한 삼월은 여전히 하얀 눈속의 차가운 공기로 숨을 내쉬는 목마름이었다.


다시금 찾아온 설레기도 들뜨기도 정신없기도 한 나의 삼월이 무르익었다. 학교 총회니 반모임이니 면담이니 설명회니 오랫동안 한 켠에 밀어두었던 것들을 새로이 꺼내 정렬하느라 바쁜 시기


한국의 엄마들은 총회에 뭘 입고 가나

기사에 보면 총회시즌을 맞아 명품대여서비스가 활발하다던데...


운동화에 방풍재킷을 입고 털모자를 쓴 채로 담임과 면담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지난 몇 번의 학교모임과 대비되는 명품가방의 향연이라는 학부모총회가 신경쓰였다.


나만 초라한 모습이면 민망하진 않을까

그렇다고 과하게 꾸미고 나가면 그것 역시 민망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속내를 꺼내 보이니 남편은 역시나 평소처럼 가면 되는 것을 고민한다고 가벼이 여긴다.


야, 넌 그 패딩이나 벗고 가. 멀쩡하게 생긴 애가 왜 패딩만 입어, 좋은 코트나 재킷도 많으면서, 뭐 좀 찍어바르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디 하는 오랜 지인도 있다.


코트를 입으면 패딩보다 춥고 운동화나 방한화를 신기 곤란해 겨울이면 으례 패딩만 입고 운동화만 신는 나를 두고 하는 소리다. 핀란드에서는 다들 신경 잔뜩 써서 그렇게 입고 살았는데 한국에 오니 신경안쓰고 다니는 사람의 차림이 되어 버렸다.


오랫만에 구두를 꺼내고 얇은 이너에 코트를 입었다. 아직은 바람이 찬 탓에 춥기도 하고 발도 시리다이제는 자주 들진 않지만 그래도 한때는 큰 맘먹고 장만했던 핸드백도 어깨에 둘렀다. 지갑하나 핸드폰 하나 넣고 나니 더이상 뭘 넣기도 담기도 어려운 이것이 가방인가 싶지만 현관을 나서자마자 욱신거리는 발끝에 신경이 쓰여 가방따윈 잠시 잊었다.


엘레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랫만에 예뻐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 마자 구두를 벗어던지고 화장을 지우리라 거울을 보며 미리부터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나의 한국적응은 아직 덜무르익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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