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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13th

배려일까 불안일까

by Someone

저녁강의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일이 많다기 보다 마음이 분주했다. 공공기관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로 초빙되어 진행하는 강의 첫 날이기도 했고 기관이 자리한 동네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시간은 얼마나 걸리려나, 퇴근시간대 움직이는데 사람은 얼마나 많으려나 별별 것이 다 신경쓰였으니 엉마나 분주했으랴


어?

어?

사무실 문이 열리자마자 동시에 놀란다.


왔어?

강의안갔어?


사실 월요일 오후에는 인근에서 강의가 있다. 오늘은 외부강의일정으로 대강을 부탁하고 사무실에서 강의준비를 좀더 했던 터다. 오후강의끝나고 저쪽 낯선 동네로 강의를 가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서 내가 강의마치면 바로 차로 데려다 주고 바로 퇴근하려고 부러 내 사무실로 들른 것이라 했다.


오늘 대강시켰어, 퇴근시각무렵이라 지하철이 나을거 같아서 지하철 탈라구 했지


너 퇴근시간에 2호선 지하철 타봤어? 신도림이 얼마나복잡한지는 알아? 강의하기도 전에 너 지쳐. 사람이 안하던거 하면 병난다. 데려다 줄께


기분이 좋다. 배려받는 느낌은 늘 따뜻하다.

주섬주섬 강의자료를 챙기며 나설 채비를 하다가 맘에 안드는 구석이 자꾸 거슬린다. 배포자료를 회사봉투에 담았는데 접착시키지 않은 채로 두니 발랑발랑거리는 거 같아서 양면테이프로 깔끔하게 붙이고 싶은 욕망이 불타오른다.


이거 발랑거려서 좀 그렇지? 붙일까?


눈치를 보며 슬쩍 묻는다. 눈치를 보는 이유는 다른 이는 아무도 말하지 못하지만 이 친구만큼은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너, 유난이야. 너, 너무 예민해. 등등 나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내가 예민해? 그런 말 한 사람 아무도 없었는데?

니가 무서워서 말 못한거지,

넌 나 안무서워? 왜 넌 말해?

니가 왜 무섭냐


뭐지? 나 예민한가? 나 유난한가? 여러 번 곰곰 생각래 보니 조금 객관화가 된다.


봉투를 들고 붙일까? 물어보면서 눈치보는 이유다. 역시나 그냥 냅두란다.


괘에에엔차나~~~~ 너빼고 아무도 신경안써


전같으면 그래도 붙이고 싶다고 잠깐 기다리라 했을테지만 주섬주섬 다시 가방에 넣는다.


내가 좀 까탈스럽고 깐깐하고 예민하고.. 그래. 그치?


괘에에에엔차나~~~~ 너 발전하고 있는거야


또 한 번 슬쩍 미소를 짓게 된다. 지적받고 잔소리들어도 기분나쁘지 않는 건 무슨 마법일까.고백하자면 나는정말로 못되먹고 고집불통에 예민한 완벽주의자인데 수긍이 되고 바꿔보려 신경을 쓰게 되는 놀라운 마법이다.


올림픽대로는 차가 정말 많았다.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이 거슬린다. 차에 컵홀더가 비어있길래 물었다.


나 여기에 물병 놓아도 돼?


풋! 웃는다.


야, 넌 그럼 내가 안돼!!!!!! 하겠냐? 그걸 뭘 물어보고 그래. 충전할래? 여기다 해.


아니, 78프로야. 갑자기 충전은 왜?


풋! 혼자 또 웃는다.


충전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나 해서


아니거든?!?!!


넌 왜 그런걸 눈치보고 그래.


눈치보는거 아니고 배려거든????


뭐가 그렇게 불안해……


잠시 침묵이 흐른다. 대꾸할 말이 딱히 없어서이다. 배려, 존중, 이해, 내가 잘하는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것이다. 잘해보려 한건데 결과는 엉뚱하게도엉망인 경우도 많았고 실수도 오해도 많았다.


나는 배려라 생각했는데 상대에게는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자괴감까지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난 뒤 나는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의 배려덕분에 편하게 강의장소까지 잘 왔고 그와중에 나는 눈치를 봤다.


배려, 눈치 그리고 불안의 상관관계가 참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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