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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28. 2016

바르셀로나 구석구석 뒤지기

두번째 이야기 까사 바뜨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일어나 메일을 확인하는 남편의 장탄식이 들려온다. 이곳은 휴일이어도 한국은 휴일이 아닌 탓에 메일과 컨퍼런스 콜 등은 때를 가리지 않고 남편이 일하기를 요구한다.그가 바르셀로나에 있건, 휴가중이건 관심을 둔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다.그런 까닭에 휴가차 여행을 떠날 때에도 업무용 노트북과 장비를 챙겨가지고 다니는 남편.


' 나는 못나가겠다. 오전 중에는 이것들을 좀 처리해야할 것 같은데...?'


몬셀라또에 가기로 했던 원래 세웠던 계획을 수정한다. 시내 복판에 있는, 숙소와 멀지 않은 까사 바뜨요에 다녀오고 점심은 먹어야 하니 함께 점심을 먹자 약속하고 길을 나섰다. 패키지여행도 아니고 가이드투어를 신청한 것도 아니니 어차피 내맘대로 우리 상황따라 언제나 바뀔 수 있는 여행... 이런 여행이 좋다.


딸들은 아빠가 안스러운지 호텔을 나서며 아빠를 끌어안고 떨어질 줄 모른다. 아가때는 외가에서 크느라 금요일 저녁에 데리러 갔던 부모고, 함께 사는 동안도 늘 바빠 주중에는 얼굴 한 번 못보고 주말 역시 일하러 나가 함께 한 시간도 없는 아빠인데 딸들의 아빠사랑은 참으로 각별하다. 사춘기다된 딸이 아빠를 끌어안고 뽀뽀를 하며 '우리 아빠 참 잘생겼다, 멋지다'고 한다. '야야, 니들 눈낮아서 큰일이다, 엄마눈에는 별로구만?' 엄마의 조롱과 야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딸만 둘인, 여자 셋과 함께 살아가야 할 남편,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학창시절에는 공부밖에 모르더니 이제는 일밖에 모르는 재미없고 바쁜 아빠가 사춘기를 거치면서 딸들과 소원해 지면 얼마나 혼자 외로울까 염려되었다. 딸들의 생일선물,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길 겨를도 없고 많은 아빠들이 그러하듯 무엇을 좋아하는지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좋아하는 동화책은 무엇인지 모르는 세심하지 못한 아빠다.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


나는 늘 딸들의 선물을 준비할 때 두 가지를 준비한다. 하나는 아빠가 준비한 것, 또 하나는 엄마가 준비한 것.. 평소 가지고 싶어하던 것은 아빠가 주는 선물이 되고, 아이들에게 필요하겠구나 어른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엄마의 선물이 된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이름도장선물이나 콩순이 목욕셋트, 미미화장대는 아빠가 사주신 것이라고 알고 있다.


어린이날이라고 아빠가 한가하진 않고 금요일 저녁이라고 해서 아빠가 일찍 퇴근하시는 일은 없었다.

어린이날 아침 자고 일어난 아이들은 이미 일하러 집을 나선 아빠의 빈 자리대신 아빠가 남기고 간 선물과 카드를 만난다. 현관에서 신을 신고 있는 남편에게 카드와 펜을 내밀어 2,3분의 시간을 할애하게 한 결과는 매우 놀랍다.


' 아빠가 어린이날인데도 일하셔야 해서 너무 속상해 하면서 나가셨어... 대신 엄마랑 재미있는 곳 가서 놀다가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하셨으니 우리 산나게 놀자!' 물론 아빠가 이야기한 적 없는 지어낸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만으로도 아이들은 일만 하는, 나한테 해주는 것 없는 야속한 아빠가 아니라 우리를 이렇게 생각하시면서도 일해야 하시는 안스러운 아빠가 된다.


수년간 보이지 않는 엄마의 작업으로 아빠는 여전히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고맙고, 멋진 사람이다. 이런 아빠를 두고 나서야 하는 딸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당연지사


' 몇시까지 일할 것 같아요? 그때 맞춰 돌아올테니 울지말고 있어요~~~' 짐짓 안스럽긴 하지만 별 내색없이 딸들을 재촉한다. '빨리 가야 보고 아빠만나지~'


까사바뜨요 입구에서 받아 든 헤드폰을 착용하고 가이드용 패드를 들여다 보며 조심스레 계단을 오른다. 동선에 따라 해당 장소의 원래 모습이 영상으로 나오고 설명이 흘러나온다. 이 오디오가이드 정말 좋구나... 아이들은 구석구석을 살피며 설명에 집중한다.

집안 구석구석 정교한 솜씨로 꾸며져 있다. 특히 수많은 창사이로 비쳐드는 태양빛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1월초 한겨울에도 이리 아름다운데 볕이 좋은 여름에는 얼마나 화사할까

테라스로 나오자 너무나 눈부신 햇살에 눈을 뜰 수가 없다. 담벼락만 보아도 자연을 닮은 곡선의 천재, 가우디를 느낄 수 있다.

기둥은 뼈를 닮고 테라스의 난간은 해골을 닮았다. 맨 꼭대기층 테라스에 올라보고 싶다는 딸, 용이 꿈뜰거리는 지붕에 꼭 올라보고 싶다는 딸덕분에 다소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찾은 곳이다. 밖에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안에서 보는 집안의 구석구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드디어 옥상으로 올라간다. 용 한 마리가 꿈뜰거린다는 까사바뜨요의 지붕

용의 척추가 꿈뜰거리고 날카로운 발톱은 금방이라도 하늘을 가를 것 같다.


직원 한 명이 꼭대기 테라스에 들어가라며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에 아이는 조금 무섭긴 하지만 잔뜩 신이 났다. 사진을 찍어준다. 아하! 관광지 합성사진코너구나.... 사진이 제법 잘나왔다. 그리도 오르고 싶었던 곳이라니 사진도 잘나왔겠다, 아빠에게도 보여드릴 겸 구매한다.

아빠도 같이 보셨으면 좋았을걸....사진을 보면서 아이들은 이내 아빠를 떠올린다. ' 이 사진 아빠선물로 드려' 했더니 아빠도 없는 사진이라 싫단다. 녀석들..


여행을 하면 여행하는 기간을 통틀어 하나의 기념품을 사준다. 무엇을 언제 살지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데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다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결정과 판단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직접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작은 아이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이거' 결정한다. 반면 큰 아이는 나중에 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정을 미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다사자를 구경한 작은 아이는 부두가에 즐비한 기념품샵에서 바다사자인형을 골라집었다. 큰 아이는 역시나 다음 기회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샀으니까 프랑코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까무잡잡한 색깔과 동그란 머리가 왠지 투박한 이름에 더 어울려 우리 가족은 작은 아이의 작명과 관계없이 달수씨라고 부른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집으로 향하는 길에 들른 산타모니카 어디메였을 것이다. 악세사리가게에 forever sister 목걸이가 유난히 예뻤나보다. 기념품을 이미 획득한 작은 아이는 목걸이를 바라만 본다. 그 모습을 본 언니는 ' 저 이 목걸이로 할래요' 하더니 목걸이를 기념품으로 구매한다. 계산이 끝나자마자 ' 이거 지금 차봐도 되요?' 허락을 받더니 반짝이는 하트를 갈라 'forever 할래? sister할래?' 동생에게 내민다. 작은 녀석 입이 귀에 걸린다. 언니는 언니다.


' 앞으로 언니에게 언니님이라고 불러라.....' 엄마가 툭 한 마디 던지며 큰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두 녀석이 수근수근거리더니 와서 묻는다. ' 엄마, 우리가 기념품대신  여기서 아빠선물을 사도 되요?'


'아니? 엄마가 아빠 선물로 사줄거야... 대신 너희가 골라줘.... ' 아이들의 마음씀씀이가 이뻐서 한 마디 덧붙인다. ' 스무디 먹을까?' '네에에에!!!!!' 스무디가 뭐라고 한껏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보께리아시장으로 향한다. 해산물을 사다가 남편에게 푸짐한 점심을 차려줘야겠다.

까사바뜨요의 기념품 샵, 아이들은 아빠를 위해 에스프레소잔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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