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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31. 2016

김연아도 아니면서 ice show하는 딸들

핀란드의 생활체육

Turku Skating Club!

딸들이 스케이트를 배우고 연습하는 클럽이다. 석달에 한 번씩 새로 배운 피겨기술을 추가하여 안무를 짜고 클럽 내, 수준별로 나눈 팀단위의 공연을 준비한다. 지난 겨울 시즌에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공연했는데 이번에는 봄과 관련된 사랑스러운 감정을 주제로 공연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트 레슨을 받던 아이들이지만 공연을 한다거나 안무를 짜서 프로그램을 할 만큼의 대단한 실력을 가진 아이들은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였다면 절대로 무대에 서 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아이스쇼는 김연아선수의 아이스쇼뿐이다.


핑크색 옷을 입고 피어나는 꽃송이를 연기했다. 가운데 혼자만 솟아나온 머리가 큰 아이다. 큰 아이가 이렇게 작은 아이들과 같은 팀인 이유는 서너살 어린 저 아이들과 실력이 같아서이다. 입단 테스트를 받고 실력에 따라 팀을 배정받은 것

서너살 아이들이 서툴지만 공연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도 같은 클럽의 구성원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입단테스트를 받고 걸음마배우면서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딸아이 나이만큼 스케이트를 탔다면 이미 뛰고 날고 돌고, 온갖 재주를 빙판에서 부릴 줄 안다.


이런 현실때문에 딸아이는 본인 또래보다 어린 아이들과 운동을 한다. 삼년 전에 핀란드로 이주한 스페인 출신 아이가 한 명 있다. 그 즈음 스케이트를 시작한 파울라는 지금 딸아이들과 같은 팀에서 운동한다. 파울라는 한 학년 위지만 세 살이나 나이가 더 많다. 파울라의 동생 클라라는 딸 아이보다 한 살 많지만 한 학년 아래다.


국제학교 입학시험 당시 영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배정받은 학년이라고 설명한다. 아무 꺼리낌도 없고 그 당시 영어를 전혀 못했다는 것도 일곱살 어린 동생들과 한 팀에서 운동하는 것도 그냥 자연스럽다. 한 학년이라도 어린 아이가 뛰어난 면모를 보여 윗 학년과 합반 수업을 하게 되면 엄마들의 등쌀에 학원이 시끄러워지던 한국에서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나라처럼 나이로 줄을 세우는 분위기가 덜한 탓도 있지만 이들에게 운동,최소한 스케이트가 수행평가를 위한 경쟁과목도 아니고 누군가를 꺾고 일인자가 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듯 하다.


스케이트를 함께 시작한 동생과 동생친구, 심지어 그보다 어린 아이들과 같은 팀이어도 상관없이 그저 스케이트 타고 배우는 것이 즐거우면 그걸로 그만이다.

큰 아이또래 아이들의 공연모습이다. 확실히 구사하는 기술의 난이도부터 다르다. 연기도 한결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나이가 같다고 같이 운동할 실력은 확실히 아닌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세살이나 네살부터 십년넘게 탔다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겨울나라니까 많이들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라고? 그럼 리듬체조는 어떤가? 딸아이들은 한국에서 리듬체조를 배웠고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기계체조를 했다. 핀란드에 와서 운동할 만한 리듬체조클래스를 찾아보다가 결국은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언어문제로 각 클럽의 정보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딸아이 또래의 아이들의 실력은 딸들과 월등하게 차이가 나서 수년 전 한국에서 잠시 배웠던 기초적인 실력으로는 도저히 함께 운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처럼 학업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이곳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다. 해당 운동을 전공으로 삼거나 자신의 진로와 관련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운동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수행평가를 위한 예체능이 아니라면 어려서 부터 해오던 예체능을 초고부터 그만두기 시작하여 중학생이 되면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 나이의 이곳 아이들을 보자. 아이들 반친구들의 경우를 보면 최소 절반정도의 아이들은 스케이트, 체조, 아일리쉬 댄스, 재즈댄스, 아크로바틱, 발레 등을 하고 있다. 주3일이상 혹은 매일 운동하기도 하고 지역 대회나 공연 등 행사가 많아 그 준비를 할 때는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기도 한다.


영어학원 안가고, 수학학원 안가고, 논술도, 과학도 학교에서 배웠으니 그만이다. 운동하고 악기연습하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친구와 둘러 앉아 논다.


아이들이 운동하는 클럽의 코치들은 15~17세의 이 클럽출신 언니들이다. 선임코치나 클럽의 단장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운동한 이 동네 왕언니


대표선수 출신이라는 레슨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스케줄 맞추고 대기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먼저 배운 언니들이 동생들에게 가르친다. 레슨비는 부담이 없고 지자체는 클럽운영비나 빙상장 관리를 지원한다. 사람도 얼마 없는 이 조용한 마을에 국제규격의 빙상장이 여러개다. 행사때마다 부모들은 자원봉사로 빵을 구워다 팔고 사용하던 스케이트 물품을 모아 벼룩시작을 연다. 이렇게 모인 돈은 클럽 운영비에 활용된다. 덕분에 큰 돈 안들이고 좋은 시설의 빙상장에서 운동할 수 있다. 레슨이 없는 날은 언제든 와서 무료로 빙상장을 이용할 수 있다. 클럽방식 운동의 장점이다.


사회체육의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다 보니 동네언니가 스케이트 가르쳐 주고 동네 형이 아이스하키를 가르친다. 어린 나이부터 그냥 일상으로 종목과 관계없이 운동을 받아들인다.


공연을 보다 말고 남편이 말한다.

'아니 뭐 이번팀은 체형이 이리 아줌마스러워...애들이 몇살이길래...?' 팜플렛을 살펴 보니 아줌마 맞다. 이 클럽에서 운동했던 엄마가 이 클럽에서 운동하는 딸의 아이스쇼를 위해 찬조출연 형식으로 공연에 나선 것이다. 아! 이런! 뭔가 몹시 부럽다. 이 엄마들이 대단한 선수였던 것도 아니고 직업이 스케이트와 관련된 분들도 아니다. 그냥 어려서 부터 지금까지 스케이트를 타왔을 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러웠음을 고백하니 ' 너도 뭐 훌라후프라도 돌리지 그랬니~' 하며 옛이야기를 꺼낸다.


큰 아이의 운동회날 학부모 참여 경기랍시고 훌라후프돌리기 대회를 벌였다. 훌라후프라는 게 못돌리는 사람과 돌리는 사람으로 나뉘지 , 일단 돌릴 줄 알면 십분이고 한 시간이고 그냥 돌린다. 진행자는 훌라후프 두개돌리기, 옆으로 이동하며 돌리기, 앞뒤로 이동하며 돌리기, 빙글빙글 돌며 돌리기 등 온갖 주문을 하며 탈락자를 만들어 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살던 범이엄마와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 승부를 내지 못하자 진행자는 훌라후프 갯수를 추가한다. 아! 이렇게 많은 후프는 안돌려 봤는데! 어머나! 범이엄마는 돌린다. 졌다.


친구는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그게 언제적이냐며 지난 날을 회상한다. 그때 우리의 딸들은 ' 엄마 이겨라, 이모 이겨라!' 얼굴이 벌개지도록 응원했었다. 돌이켜 보니 이등이나 하고도 일등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었다. 올림픽도 아니고 고작 꼬맹이 운동회인데 일등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나는 미안해 했다.


운동회를 하노라면 학부모를 위한 시간은 계주, 줄다리기 뿐이었는데 그나마 훌라후프는 참신했다. 그런데 엄마들의 스케이트 공연이라니.... 엄마가 공중으로 뛰어 오르고 뱅뱅 돈다. 그냥 엄만데...


생활 깊숙이 자연스럽게 파고든 스포츠가 부럽기만 하다.


스타선수 하나로 국민의 관심이 생겨나고 그제서야 누구누구 키즈가 생거난다. 그리고 상당수는 운동에 들이는 에너지에 비해 써먹을 곳이 없어서...' 선수할 것도 아닌데, 학년도 올라가고 해서' 운동을 그만둔다. 간혹 그 운동에 소질이 보이는 듯 하다며 코치의 추천을 받으면 그 운동에 올인한다. 그렇게 즐겁던 운동이 더이상 행복하지만은 않다. 즐기는 운동이 아니라 우뚝 서야 하는 운동이다. 누군가보다 잘해야 내가 사는 그런 것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내가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지역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곳

그곳에 내가 와있다.


핀란드역시 구조적 모순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만을 고려하여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 사는 것이 더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체육 기반만큼은 너무나 부럽다.


친구의 손을 꼭 잡고 휘날레를 돌고 서로의 스케이트 날을 체크해 준다. 같은 팀의 동생들이 줄에서 흐트러지지 않게 손을 잡고 챙긴다. 이렇게 아이들은 한뼘씩 자란다.


팀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매 시즌 솔로공연을 펼친다. 잘하는 아이에게만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무대인사를 위해 빙판위에 선 아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즐거워 하고 있다. 멀리 관중석에서도 아이의 몸짓을 통해 오늘의 이 시간이 얼나나 즐거웠는지 알 수 있다.

그래 그걸로 되었다. 즐거우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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