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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Apr 02. 2016

맛있다, 정말 맛있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인

퇴근한 남편이 달콤한 간장냄새 솔솔 나는 반찬통을 꺼낸다.


'어머님께서 만드셨다고 문학생이 주더라고...'

'아, 이번에 졸업식때문에 오셨구나? 저 통 안돌려줘도 되는데...일부러 안쓰는 통에 넣어줬구만 안버리고 두었나 보네...?'


지난 설에 같이 떡국 끓여 먹은 한국인 학생에게 잡채와 된장국 조금을 챙겨보냈다. 그때 그 그릇에 오징어채 반찬을 싸서 챙겨다 준 것이다. 마늘편, 고추말린 것 부터 가지가지 견과류를 넣어 만든 오징어채가 비주얼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 정말 맛있다! 젊은 사람들의 요리솜씨로는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흉내낼 수 없는 엄마반찬의 맛이다.


타지에서 혼자 지내느라 끼니는 잘 챙겨먹는지 걱정스러운 어머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비록 한 번이지만 그런 아들 불러 명절음식 같이 먹은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하고 싶은 어머님의 마음또한 함께 녹아 있다. 그런 어머님의 진심이 느껴져서인지 맛있어도 너무 맛있다.


타지에서 지내다 보면 작은 일에도 감동받고 작은 일에도 반갑다. 게다가 오지랖 참 넓은 나같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러다 내맘 같지 않은 야박하고 모진 사람 만나 상처받기도 하고, 어리석고 품성이 거친 사람 만나 뒤통수 맞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내가 오지랖떤 결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좋고 성격좋아 항상 허허허 웃던 박책임님, 한국에 있을 때는 만나본 적 없지만 같은 프로그램으로 한 해 뒤에 유학온 회사 후배시다. 아이가 많이 어려 아내와 아이는 두고 혼자 떠난 미국 유학길이다. 같은 타운에 터잡고 지내면서 재미없고 뻣뻣한 내 남편에게 형님형님하며 잘 따르고 챙겨주시더라.


남자 혼자 나와 먹는 타지의 밥상이 오죽할꼬

우리 먹으려 끓였던 국을 한 그릇 나눠 담고 밑반찬이며 나물 한 접시씩 따로 담는다. 지나다니는 길에 현관에 걸어두면 특유의 웃음으로 인사를 한다. 인사를 받아서가 아니라 한끼라도 맛있게 식사하실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형수님이라 부르던 호칭은 어느새 누님이 된다. 어느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던가? 밤늦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와인 한 병 들고 박책임님이 서있다. 이런 날 더욱 가족이 생각났으리라, 외로웠으리라.


'추워요, 언능 들어오세요~그런데 와인 한 병 누구 코에 붙인다고 한 병을~?' 부랴부랴 술상을 준비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을 찾아오기까지 잠깐 고민도 했을 것 같아 우리도 마침 술생각 나던 차에 잘 오셨다고, 이 사람이랑 둘이 마시면 재미없는데 잘되었다고 빈 소리도 한다. 늦은 시각, 가족 생각이 나고 혼자 쓸쓸할 때, 우리 집을 찾아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가 귀국준비로 바쁠 때 많은 도움주시고 떠나는 마지막 길까지 함께해 주신 고마운 분이다. 핀란드에 놀러오시면 자주 해먹던 골뱅이에 치즈떡뽁이 한 상 차려 밤새워 술 한 잔 해야지


역시나 미국에서의 일이다. 하루는 남편이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살짝 들떠있다. ' 이번 신입생 중에 우리 타운에 사는 한국 학생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태워줬거든... 우리 뒷집이더라?' 뒷문을 열고 잔디밭을 지나면 그 집의 뒷문이 나온다. 역시나 설 즈음에 미국에 갓 이사 온 가족, 타국에서의 첫 한 달, 석 달은 참으로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만두나 빚어 먹자고 설에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서울 살 때도 우리 아파트 건너 편의 다른 단지에 살다가 이사왔단다. 참 묘한 인연이다. 쌍동이와 막내를 키우던 나보다 두 살 아래인 그 엄마와 우리 동네 떡볶이집과 중국집, 공원 옆 팥빙수가 맛있던 카페이야기를 나눈다. 미국땅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면, 마트갔다가 뭘 좀 사오면 그날은 아이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서로의 뒷문을 똑똑 두드리며 배달하는 날이다. 그렇게 앞집 뒷집으로 뒷문을 두드리며 서로를 챙겼다.


사람의 인연이 참 묘하면서도 덧없다.

떠나면 어찌할 도리없고 만나지 못하면 그저 마음에서 그리울 뿐이다.


오늘은 아이들 학교에서 International day행사가 있어 한국을 소개하는 워크샵을 진행하기 위해 학교에 들렀다. 워크샵을 준비하는데 복도에서 한 무리의 자원봉사학생들 중 동양학생 하나가 흘끔흘끔 본다. 중국학생인가? 내가 중국인줄 아나보지?


이 도시에서 살면서 동양인이라면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을 만나기 쉽고, 중국인이냐며 인사해 오는 사람이 더 많다. 실제 한국인 거주민을 우연히 만난 적은 없을 정도로 한국인이 드문 곳이다. 몇 회의 워크샵이 진행되었는지 모르겠다.바삐 다음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말로 누군가가 인사를 한다.


'어머? 한국분이세요?'


핀란드 투르크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학생이란다. 자원봉사차 아이들 다니는 국제학교에 나왔는데 생각지도 않은 한국소개 부스가 있더란다.


' 별거 아닌데 진짜 반갑죠? 여기서 한국 소개관 보니까?'

' 네!!!!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너무 반가워서.... 계속 쳐다봤어요!'


다음 주 학교 근처에서 불러 밥이라도 한끼 사줘야 겠다. 내 나이 절반 쯤 되었을까...? 한국음식점 하나 없는 이곳에서 밥은 제대로 먹고 지내나? 또 오지랖이 발동이다.


타지에서 지내다 보면 정서적으로, 인간관계측면에서 좀더 예민해지고 좀더 민감해 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문학생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저 오징어 반찬이 이토록 맛있는 이유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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