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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Apr 05. 2016

Mikka네 가족과 열쇠이야기

열쇠 잘 챙기자!

저녁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 초인종이 울린다. 한적한 동네고 약속된 손님이 아니라면 벨이 울릴 일이 거의 없어 무슨 일인지 놀라 현관으로 달려간다. 살짝 내다보니 옆집 Mikka네 와이프다.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 역시 활짝 웃으며 문을 연다.


' 너 열쇠잃어버렸지? 내가 어제 주웠거든~'

뭐라뭐라 한참을 열쇠 주운 상황을 설명한다.


' 저기... 나 열쇠안잃어버렸는데?'


' 응? 에펠탑 키홀더 달린 열쇠아니야? 너네 어제 오후에 요 앞에서 스케이트 보드 타고 놀 때 떨어뜨린거 아니야?'


' 나 에펠타워열쇠고리 없는데???'


당황한 그녀....

' 내가 너네 열쇠인 줄 알고 너네 우편함에 넣어놨거든.... 네가 꺼내서 관리인 줘야 겠다..관리인 번호 알지?'


우편함은 집열쇠와 동일한 열쇠로 열어야만 하니 우리 열쇠를 들고 나갈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우리 열쇠 찾아주려 신경쓰고 일부러 우리가 귀가할 때를 기다렸다가 방문해서 알려주니 고마운 일이다.


그녀가 길에서 주운 열쇠를 보고 나를 떠올린 것은 어제 오후 딸아이들이 그 길에서 한참을 놀았다는 정황말고도 열쇠에 얽힌 사연이 있어서였을것이다.


출근시각과 등교시각에 맞추느라 가족을 태우고 서둘러 차를 몰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뿔싸! 집열쇠가 없다. 한국의 아파트처럼 도어락을 설치하여 번호를 누르고 드나들면 좋으련만 이 마을의 문에는 전통적인 열쇠가 장착되어 있다. 이 열쇠로 현관, 창고, 우체통 그리고 마을의 공용창고까지 열 수 있다.


그러나 열쇠가 집안에 있는 경우 들어갈 방법이 없다. 혹시나 이층으로 기어올라갈 수 있는지, 유리를 깨고 들어갈 만한 곳은 없는지 한참동안 집주변을 돌아다녀 보아도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남편은 네덜란드 출장중이라 회사로 쳐들어가거나 저녁까지 버틴다 해도 방법이 없다. 하늘이 노랗다. 버스정류장 앞에 '열쇠'라고 적어 두고 구두도 수선하고 출장열쇠제작도 해 주시는 한국의 아저씨들이 너무나 그립다. 여기선 그런거 한 번도 못봤는데 얘들은 열쇠 어디서 만들까....


세수도 제대로 안한 몰골이지만 하는 수 없이 옆집 Mikka네 문을 두드린다


' 저기.... 나 열쇠를 집에 두고 나왔는데 어찌해야 할까?'

' 열쇠두고 나왔다고?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면 마스터키가 있을거야'

' 나 핸드폰도 없는데 .....'

' 잠깐만, 꽐라꿀리 꿀로푸따라라 까로로'


아내와 뭐라고 뭐라고 핀란드말로 대화하더니 웃으며 말한다.

' 내 아내가 관리사무소에 지금 전화했는데 이십분쯤 뒤에 사람이 와서 열어줄거야'

' 아... 정말 고마워 ㅜㅜ'

하하하하 , 멋적어 한참을 실없이 웃는다.


한국의 아파트처럼 단지안에 경비실과 관리사무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의 집들을 건설한 건설사 사무소에서 건물수리, 가로등, 테니스장, 선착장,공용창고 등을 관리하는 것이라 십오분 가량 사무실에서 부터 차를 타고 우리 집 문을 열어 주러 누군가가 오는 것이다.


이십여분 아니라 두시간인들 어떠리,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애들 데리고 호텔을 가야하나 지갑도 없는데 Alison이나 Susanna에게 가서 돈을 빌려야 하나... Alison네는 방이 부족할테고 Susanna네는 공사가 안끝나서 어수선하니 신세를 질 수도 없고 어쩌나....오만가지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기다림쯤은 괜찮다. 너무도 고마워 그날 저녁 김밥을 조금 말고 빵을 새로 구워 Mikka네 집을 다시 찾았다. 그때는 그게 마지막일줄 알았다.


얼마나 지났으려나, 금요일이 공휴일인 바람에 연휴가 시작되었는데 언제가 공휴일인지 알지 못해 예상치 못한 휴일을 맞고 문닫은 마트주차장에서 되돌아 오던 그때.


온 가족이 나섰는데 또 집열쇠가 없다. 마트에서도 허탕치고 정말 우울하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짜증나는 날은 별거아닌데 몰라서 곤란한 경우다. 공휴일이라 관리사무소도 문을 닫았다.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역시나 안받는다.


또다시 Mikka네 문을 두드린다. 정말 부끄럽지만 별 수 없다.


' 저기 말이야.... 나 또 열쇠안가지고 나왔거든... 관리사무소 전화안받는다?'

' 아!!! 어쩌니? 가만 있어봐... 나한테 직원의 핸드폰번호가 있을지도 몰라'


오! 신이시여!

Mikka가 관리사무소 직원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다. 그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마냥 사무실로 달려가 열쇠를 챙겨 우리집에 문열어주러 와야 했다. 공휴일에...


고맙다고 인사하는 나에게 Mikka가 얘기한다. 열쇠를 깜빡할 경우를 대비해 현관 매트아래, 자동차 등 이곳저곳에 열쇠를 숨겨두란다. 다음 번에 또 열쇠없다고 문두드릴까봐 알려준 팁같다.


정말 부끄럽다.


Mikka의 아내는 그런 연유로 길에 떨어진 열쇠를 본 순간 나를 떠올린 것이 아닐까 혼자 부끄러워진다.


문제의 에펠탑 열쇠와 실제의 내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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