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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Apr 04. 2016

김치아저씨는 잘 계시냐?

핀란드의 친절한 아저씨

중병은 아니지만 장복하고 있는 약이 있다 보니 해외사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영문처방전과 함께 몇개월치 약을 배송받았는데 한국의 식구들 번거롭게 하는 것도 죄송하고 어차피 한국의 의료보험이 안되는 처지라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라고 하니 핀란드에서는 자체 해결해 보기로 했었다. 병원을 찾아가 처방받아 약값을 물으니 한국의 비보험가격의 6배다. 반년치 약값으로 고작 한달 먹을 수 있는 금액. 일년이면 천만원이 넘게 드는 약값에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가족에게 배송을 부탁한다. 먹던 약이 다 떨어지기 전에 부랴부랴 다니던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약을 보내셨기에 기쁜 마음으로 상자를 뜯어 본다. 아이들 먹으라고 이런 저런 과자며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가 가득하다. 어라???? 그런데 약이 없다?


박스를 이리저리 살피니 누군가 박스아래를 뜯었다가 다시 붙이고 뭐라 쓰인 노란 테이프를 한 줄 길게 붙여놓았다. 이건 또 뭐라는겨? 통관과정에서 박스를 뜯어 약을 빼내고 나머지만 나에게 보낸 것이다. 처방전도 있는데 왜 내약을 가져가냐고!!!!


분노도 잠시, 당장 이 약은 어찌할 것이며 몇알 남지않은 약을 다 먹고나면 어찌할 것인지 하늘이 노랗다. 일단 약값에 들인 돈이 있기에 약의 행방을 추적해 보고 싶지만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약을 빼갔으면 어디로 가져갔으며 어디로 연락하라는 안내라도 남겨둘 법 하건만 흔한 쪽지하나 없다. 단서는 오로지 '내가 니꺼 가져감'이라고 약올리는 누런 테이프 한 줄.


별 수 없다. 의지할 수 있는 핀란드사람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검색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은 물어보는 것말고는 도리가 없다.


제 아무리 핀란드인어도 반입물품이 통관과정에서 압수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남편의 업무 파트너이자 한국의 기업이 그 회사를 인수하기 전까지는 핀란드회사였던 그 회사의 대표 Markus가 한 시간여의 추적 전화를 통해 알아낸 정보는 다음과 같다.


EU에서 처방받은 약이 아니면 반입할 수 없으며, 해당 약이 핀란드에서 판매되고 있다면 핀란드에서 사먹으라는 것이다. 이 약이 정말 처방전에 적힌 그 약이 맞는지 조사를 위해 약을 검사처에 보냈다고 한다. 정당한 내 약이 맞으면 한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며 만일 다른 약품류라면 전량 폐기할 것이라고 했다.


마약밀반입으로 오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약을 먹어야 했을 뿐인데 뭔가 억울하면서도 걱정이다. 친절한 Markus는 제약업에 종사하는 아내를 통해 해당 약이 핀란드에서 구매가능하니 이곳에서 사먹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건 알지만 너무 비싸단 말이야 ㅜㅜ


두 부부가 반 나절을 내 약때문에 씨름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Markus 가족은 얼마전 남편과 딸들에게 젓가락질 특강을 들었던 그 가족이다. Markus는 우리 가족을 위해 직접 베이컨으로 감싼 연어를 요리하고 저녁상을 차린 따뜻한 남자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남편이 커다란 삽 두개와 분홍색 보라색 작은 삽 두개, 도합 네개의 삽을 들고 왔다. 이곳의 겨울을 보내려면 온 가족이 눈을 치워야 한다며 Markus가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삽 하나에도 상당히 비싼 것이 이곳의 물가인데 네개나 사주다니...


여름방학동안 아이들이 캠프를 즐기려면 지금부터 등록해야 한다고 미리 알려주거나 아들의 생일파티를 위해 캔디류를 샀는데 네 딸들에게 가져다 주라고 사탕 한 봉지를 수줍게 건네는 세심한 구석도 있다.


이런 Markus는 내 친구들사이에서 김치아저씨로 통한다. 핀란드로 이사 온 초기 한국식료품점이 없어 김치를 구하지 못해 애쓰는 모습이 안스러웠던지 한국출장길에 김치를 잔뜩 사다준 이후로 붙은 별명이다.


핀란드사람들은 친해지기 어렵고 무뚝뚝하다고들 한다. 이웃과 'Hello' 주고받기 까지 6개월걸렸다며 핀란드인의 무뚝뚝함을 강조하는 블로그의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마을로 이사오기 전 임시거처로 시내의 호텔에서 잠시 머물로 원룸아파트를 렌트해 한달간 머문 적이 있다. 그때는 아... 정말 이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렵겠구나 생각이 들더라. 현관이나 주차장을 오갈 때의 냉랭함이란...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데, 그들은 그저 살아가기에 바빴던 것 같다. 삶이 빠듯하면 마음도 빠듯해 지는 것이 사람의 일 아닌가!


핀란드인들에 대한 이런 오해 또는 편견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계약하기 위해 들렀던 날부터 서서히 사라졌다. 마침 우리가 핀란드로 오던 즈음 헬싱키로 이사를 하게 된 Henry는 집을 내놓았고 좀처럼 집이 나오지 않는 이 동네에 운좋게 이사하게 되었다. 이 집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명당자리다. 자기 집의 전경을 자랑하고자 우리를 2층 테라스로 부른다. 그곳에서 주변을 살피는데 옆집의 노부부가 일광욕을 즐기다 말고 우리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데에도 6개월 걸린다며 집 계약하기도 전에 인사를 건네오는 그들이 낯설면서도 고마웠다. 기쁜 마음에 활짝 웃으며 인사한다.


정착 초기 현지 사정에 어두운 우리 가족을 오랜 친구처럼 챙기고 도와준 사람들은 남편의 회사동료들이다. 앞으로 지낼 날은 많지만 함께한 날은 얼마되지도 않은 그저 남일 뿐이고 낯선 동양의 한 남자일 뿐인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아이들의 입학 첫 주동안 약 열명의 아주머니들로 부터 이메일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았다. 처음이라 모르는 것 많고 힘들테니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며 건네준 쪽지들이다.


얼마전 인기 방송프로그램에서 핀란드사람들의 버스줄서기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핀란드 사람들의 일부다. 그리고 수없이 버스정류장을 지나쳤지만 저렇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핀란드사람들도 그들에 대해 다른 나라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농담하는지 아는가 보다


핀란드인이 무뚝뚝해 보이고 친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의 어느 누가 긴장상태로 경계하고 있는 낯선 상대에게 무조건 다가올 것인가? 핀란드사람들의 무뚝뚝한 얼굴을 논하기 전에 내 얼굴은 그들에게 어찌 보이고 있을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라마다, 마을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비슷한 성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핀란드에도 다가설 수 없이 무섭고 무뚝뚝한 사람도 있을테고 한없이 따뜻하고 활달한 사람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겪은 핀란드사람들은 참 따뜻했다.


다른 나라에서 너희들 무뚝뚝하고 무표정하다고 놀리는 거 알아? 물었더니 추워서 얼굴이 굳은거라고 대답하더니 깔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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