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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Apr 10. 2016

북방의 베네치아 스톡홀름

스톡홀름으로 마실가기

핀란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스웨덴은 그냥 이웃처럼 가까운 느낌이다. 비록 밤새도록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바다 건너 땅이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고 대충 치운 뒤 우리 도시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한숨 자면 다음날 이른 아침 스톡홀름항구에 도착한다.


디즈니크루즈나 호화크루즈를 타고 여행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그저 교통수단일 뿐이지만 비행기를 타는 여행과는 느낌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 기분을 누려보시라는 의미로 아이들에게 무한음료팔찌를 구매해 주었으나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 딸들은 사과주스 한 잔 마시고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결혼초 남편과 나는 십주년 기념일에는 지중해 크루즈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다. 사실 약속이라기 보다  그러자고 내가 제안을 하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남편은 그러자고 영혼없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십주년 여행약속이라고 철썩같이 혼자 믿으며 십년을 보냈던 것이다. 물론 나의 결혼십주년여행은 당초 계획과는 판이하게 다른 효도관광을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하필 결혼 십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한국에서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네 분이 미국 우리집에 방문하셨다. 세 집의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살짝 억울한 마음 지울 수 없다.


크루즈에 대한 나의 추억은 실로 다양하다. 호주 시드니에 머물 당시 나의 친구는 시드니하버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친구덕분에 아무때나 배에 오르내리며 커피숍가듯 크로즈를 즐겼다. 머리칼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시원한 강바람도 좋았고 갑판위로 내리쬐는 햇살도 좋았다. 바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모두 내 친구의 친구였으므로 커피나 간단한 간식을 가져다 주곤 했다. 그 시절이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젊어서 좋은 나이, 꿈이 있는 나이


그렇게 크루즈는 내인생의 해이데이와 연결되면서 그저 좋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옆동네 마실가듯 가볍게 떠나는 여행이지만 배를 타고 가며 케빈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한껏 들떠있다. 케빈의 이층침대가 얼마나 불편한지 아직은 모르는구나... 너희들...


여행을 다닐 만큼 다니고도 아직 모자란 엄마와 고작 십여년 살면서 세상 구석구석 많이도 다닌 녀석들이지만 우리에게 여행은 늘 새롭고 설레인다. 배를 타자마자 배안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얼음이 둥둥 떠있는 바다를 가르는 모습이 신기했던지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움직일 줄 모른다.


바다에 얼음이라니... 바다는 얼지 않는 줄 알았는데 우리집앞 바다는 겨우내 꽁꽁얼었었고 우리는 지금 바다위 떠다니는 얼음조각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언제나 그러하지만은 않다는 것

아직은 이른 시각, 어둑어둑한 스톡홀름의 전경이 우리를 맞이한다. 스톡홀름을 마주하며 걷는다. 바닷바람이라 그런지 바람이 차다. 윗동네 아랫동네를 이어준다는 엘레베이터도 지나고 갑문도 지나 구시가지에 들어설때까지 걷는다. 차를 타도 될터이나 그냥 걷는 쪽을 택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따뜻한 커피와 핫쵸코로 몸을 녹이고 덩달아 다리도 쉰다. 이 시간을 위해 걷는 것인지 걷다 보니

이 시간이 더욱 달콤한 것인지 모르겠다.



감라스탄의 광장을 가로질러 피의 우물에 다다른다. 덴마크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결국은 왕과 80여명의 귀족이 학살된 스웨덴대학살의 현장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로서는 스웨덴의 입장에서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웨덴은 핀란드를 통치했다. 역사란 참 미묘하다. 내 인생도 미묘하다. 핀란드 독립기념일에 핀란드국기 휘날리는 마을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나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곳은 '가장 좁은 길'. 폭이 90cm라고 한다. 두팔 벌려 벽을 짚어 본다. 팔꿈치가 구부러지는 것이 어른팔로는 너비가 나오지 않는다. 하긴 양팔의 너비가 사람의 키와 유사하다하니 남편의 경우는 골목너비의 두배가 양팔너비다. 아이들과 남편이 골목에서 장난을 친다. 역사의 현장이 아니어도 지금 이 순간은 우리 가족에게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다. 보라... 모두들 신이 났다. 피의 우물에서는 그리도 심각한 얼굴이더니...



생각외로 왕궁은 별거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배를 타기 위해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더 왕궁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운좋게도 근위병교대식시각이었다. 스톡홀름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이 무엇이더냐 물으니 근위병교대식이라 한다. 한 번 더 들르길 참 잘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건물이라나? 세계의 모든 시청건물을 보지 못했으니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울시청보다는 확실히 아름답다. 일요일이라 내부관람을 할 수 없어 가볍게 둘러보고 다시 걷는다. 걷고 또 걷고... 중앙역을 지나 강가를 중심가로 향한다. 왠지 서울의 삼성역 코엑스몰 입구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봄 이년여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들러보았던 삼성역주변은 너무 심하게 변해 버려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 기억석 삼성역은 수년전의 삼성역이다. 그 역을 닮았다. 인근 건물 3층에 자리잡은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사도 식사지만 찬 바람을 피하면서 사람들 구경을 하고 싶었다. 무슨 내용인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한다. 한떼의 사람들이 몰려와 경찰을 조롱하더니 기어이 쫓아낸다. 흥미롭다. 난 경찰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데... 외국에서 살면서 경찰을 만나고 엮이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기에...

IKEA도 H&M도... 흥미가 없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도 그 주변에 자리한 유럽풍의 건물들도 내게는 이국적이지 않다. 우리 동네의 흔한 풍경, 그보다 조금 더 번화한 느낌... 에이 재미없다. 우리 동네에 없는 걸 보러가기로 한다.


바사박물관

호화전함 바사호는 처녀항해때 침몰한다. 그 배를 333년만에 인양하여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그외 유물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고 하지만 이 배 하나 가져다 놓고 바사박물관을 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사박물관이 스톡홀름 관광명소 1위자릴 차지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열로 마련된 포구와 화려한 조각들, 믿을 수 없을만큼 거대한 전함, 이 배 하나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난다. 배의 구조와 전함의 특징, 포구의 방향과 각도 등 엄마하고만 들렀다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이야기들을 아빠와 나눈다. 그런 세 사람을 벤치에 앉아 바라본다. 그래 딸들아... 먼 훗날 스톡홀름을 떠올리게 되면 아빠와 바사호를 바라보며 나눴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주렴



틈만 나면 카페에 들른다. 스톡홀름에서도 몇 군데의 카페에 들렀는데 노벨박물관 관람과 맞바꾼 카페다. 마치 동굴과도 같은 입구를 구비구비 따라 지하로 들어가면  영주님을 위해 분주하게 식사를 마련하던 부엌과도 같아 보이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 카페가 있다. 노벨박물관에 데리고 가지 못한 엄마는 기분이 안좋다. 아이들은 엄마의 눈치를 보며 아빠에게 조각케잌을 부탁한다. 혹시나 엄마가 폭발하면 좀 피곤해질터이니 알아서 분위기 살피는 중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다. 노벨박물관이 뭐라고..


막내는 역시 막내고 아가다. 슬며시 기대며 말한다.

' 엄마, 노벨박물관도 좋았겠지만 전 여기서 엄마랑 아빠랑 케이크먹는 것도 너무 좋아요, 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그래... 좋으면 되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허나, 담번에는 노벨박물관 들르자.


근사한 저녁과 와인으로 분노를 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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