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첸이사(Chichen Itza)와 이킬 (Ik Kil)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자동차여행이 지겨워질 때쯤, 가보고 싶은 곳이 더이상 없고 다음엔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하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오고야 말았다.
' 트렁크에 밥솥 싣고 밥해먹으며 여행하다 보니 여행을 하건 집에 있건 밥걱정에서 벗어나질 못해, 이번 여행은 아무것도 필요없고 밥에서 해방되고 싶어' 오로지 밥에서 해방되고자 선택한 여행지 칸쿤이다.
특별한 곳이어서라기 보다 미국에서 가깝고 물가도 싸고 올 인클루시르 리조트가 다양해서 미국인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다. 상대적으로 멀리 있는 한국에서는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얻으면서 여행사마다 지상최대의 휴양이니 낙원이니 선전을 해대는 통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만 같은 곳.
그런 칸쿤에 밥안해도 되고 물가가 싸니까, 한국에서 동남아 리조트여행가는 기분으로 떠난다. 아메리카에서 한국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칸쿤을 바라보는 사실적인 시각이다. 이런 여행이 마땅치 않지만 밥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아내의 외침을 존중하여 우리 가족은 밥솥없이 칸쿤행 비행기에 오른다. 사나흘간 먹고 마시고 수영하는 일상이 반복되자 남편은 운전본능이 솟구치나 보다. 리조트에서만 머물텐데 왜 굳이 차를 렌트하나 했더니 꿍꿍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남들처럼 패키지를 이용하여 호텔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치첸이사에 들러볼 생각이었는데 남편은 직접 운전해서 가야겠다고 한다. 그러세요... 당신 고집을 누가 말리나
멕시코의 악명높은 운전문화와 관광객을 상대로 뇌물받느라 바쁜 부패경찰도 걱정이 안되는지 우리 세 모녀를 싣고 차는 칸쿤을 벗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칸쿤을 벗어나고 호젓한 길에 들어서자마자 경찰 하나가 공연히 우리 차를 세운다. 위반내용에 대한 안내도 없고 다짜고짜 면허증과 여권을 달라고 하더니 차량등록증부터 렌트영수증까지 내놓으란다. 무엇인가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 아무거나 내놓으라 하더니 하염없이 차를 세워 둔 체 쳐다만 본다. 남편은 하는 수없이 5달러를 건넨다. 씨익 웃더니 5달러로는 안된다며 10달러는 줘야 한다고 딜을 한다. 더이상 5달러짜리가 없는 남편은 10달러에 합의를 보자 하더니 일단 5달러를 다시 달라고 한다. 5달러를 챙겨든 남편은 10달러를 건넨다. 10달러를 먼저 건낼 경우 5달러를 돌려주지 않을까봐 그랬단다. 10달러를 받아 든 경찰인지 양아치인지 모를 그는 밝게 웃으며 즐거운 여행되시라고 악수까지 건넨다. 젠장
아직은 어리고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는 두 딸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을 듯 하다. 멕시코는 몹쓸 나라라며 저 경찰을 신고하자고 방방 뛴다. 딸들아, 신고해도 소용없단다. 먼지를 날리며 포장도로인지 비포장도로인지 가늠이 안될 만큼 후미진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허술한 담장이 보이고 Ik kil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붙어 있다.
석회동굴의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그 안에 자리잡고 있던 물웅덩이가 세상을 향해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마야인들은 이 웅덩이를 신성히 여겨 이곳에서 제를 올렸는데 이때 살아있는 소녀들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산 체로 던져진 소녀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이곳에서 지금은 관광객들이 수영을 한다. 딸들에게도 수영을 권했으나 소녀들이 제물로 바쳐져 죽은 이곳에서는 절대로 수영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하는 관광객들을 지켜 보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제물이 된 소녀들의 눈물과 그들을 보내야했던 어미의 마음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 엄마, 왠지 으스스해요. 우리 그만 가요 '
멋지긴 하지만 유쾌하지는 않은 ik kil을 떠나 Chichen Iza로 향한다.
치첸이사(Chichen Itza)는 지금으로 부터 약 120여년 전 미국의 에드워드 톰슨이 마야인의 전설을 따라 탐험하던 중 숲에서 발견한 유적지이다. 인신공양을 했던 것으로 추청되는 우물과 축구경기장, 피라미드 등이 있다. 그 중 쿠클칸 피라미드는 4면이 각각 91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꼭대기탑까지 365개의 단을 이루고 있다. 마야인들은 1년 365일의 변화를 이미 알고 있었고 춘추분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하여 계단 옆 용인지 뱀인지 모를 장식을 해두었다. 일년에 두 번, 춘추분에 이 장식은 햇빛을 받아 매우 특별한 광경을 보여준다고 한다. 마야인들의 천문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피라미드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관광객 하나가 피라미드를 향해 걸으며 박수를 친다. 앗! 그와 피라미드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그의 박수소리는 공명이 된다. 우리도 따라해 본다. 메아리가 울리듯 맑게 울리는 박수 소리는 더이상 박수소리가 아니다. 우리 가족 추억의 소리다.
저기, 우물 바닥에서 여자들의 장신구와 어린이, 여자의 뼈가 많이 나왔대. 그걸로 보아 저기에도 제물로 사람이 바쳐진 것 같아
아! 왜 옛날 사람들은 산 사람을 땅에 묻고 물에 던지고 그래요?
우리 박수소리 울리던거... 구슬피 울던 그들의 소리 같진 않디??
엄마아아아아!!!!!!!
미안~
어두워지기 전에 호텔로 돌아가려 서둘러 차에 오른다. 제아무리 남편도 멕시코에서의 어두운 밤길 운전은 걱정스러운가 보다.
어서 돌아가 또 한 잔 해야지.... 아무 걱정없이 먹고 마시는 칸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