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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ree Baik 애리백 Dec 08. 2019

제2화 내면의 힘을 돌려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구체적이고 단단한 인간, 줄리엔

‘멍청한 인간, 난 당신과 경쟁하고 있지 않다고.’


전업주부의 자리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자신이 품고 있는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줄리엔은 스스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때로는 남편이 줄리엔을 향해 쏟아놓는 비아냥과 무시 발언을 들어야 했지만 부부란 그렇게 말다툼하면서 지내는 거 아닌가. 자신도 듣고만 있지 않았다. 맞서 대응했다. 사소한 말싸움은 늘 어느 부부에게나 있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좀 자주 벌어지긴 했지만.

어느 날 티브이 BBC 뉴스를 보고 난 후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또 한 번 핀잔을 들었다. 그는 줄리엔의 설명과 논평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는 말을 중간에 가로막았다.
“시사뉴스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냐, BBC에 나온 기사야. 내가 봤어.”
몇 주 뒤 남편 친구들 부부와 함께 동석한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그 기사 이야기가 등장했다. 남편은  자신이 그 주제에 대해 마치 통달한 사람인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더니 친구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했다. 뉴스 기사에 대해 술술 읊었다. 지난번 줄리엔이 말한 내용을 정확히 복사해서 마치 자신의 의견인 듯 떠벌였다. 그 자리에서 지지 않고 줄리엔이 소리쳤다.
“그거 얼마 전에 내가 한 얘기잖아. 왜 자기 의견인 것처럼 말해?”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남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매번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무시와 말다툼, 남편은 그런 줄리엔이 변했다고 생각했고 매번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었다. 당신은 호르몬에 문제가 있다고. 갱년기가 시작되었다고. 남편의 모든 발언을 수용하고 따르던 아내가 더 이상 아니라고 판단하고 모든 비난을 그녀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당신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있다고.

“문득문득 나는 매우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기도 했어. 한편 아이들 앞에서는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 내 마음이 두 개로 갈아져 있었지만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는지 무력한 상황이었어.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장점을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최악의 나쁜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드문 일이거든. 그런데 남편은 그 누구를 만나도 다 못마땅해. 지적하고 비판하고 부정적인 모습을 가장 먼저 포착해. 그런 인간이 제일 좋은 양복을 차려입고 일요일마다 성당에 나갔어. 그리곤 자랑스럽게 말했어. 자신은 회개를 마쳤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일더라. 성경의 가장 기본조차 모르고 있으면서 남들을 판단하고 다녀. 성경의 어느 구절을 짚어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을 해. 그건 명백한 오독이야.”

십 년을 넘게 그의 그늘에 있으면서 무너져 내리던 자존감을, 내 자아를 발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겠나 어떻게 납득할만한 일만 생기겠나 인생이 원래 그래, 하며 관성에 젖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보통의 사람들은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가까이에서 직면하길 어려워하거나 애초에 피해버리는 성향이 있다. 살아가던 방식을 벗어나는 일은 큰 저항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이웃을 만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줄리엔에게 물었다. “어떻게 자각하게 되었나요? 비슷한 패턴으로 살다가 문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지각이 들만한 사건이 있었나요?”

“지렛대가 되어 준 존재는 내 주변의 동료들이었어.”

주말에 이런 일이 있었어, 저런 일이 있었어, 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의 얘기를 듣던 보스가 말했다. “그는 너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 돼. 줄리엔, 너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야. 너의 남편이 너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바람직하지 않아.”
급기야 줄리엔은 사무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잡던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위태로운 줄리엔을 잠자코 보고만 있던 보스는 이제 눈빛만으로도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22살에 아예 본국을 떠나 여러 나라를 통과해온 용감한 청년은 남성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쇼비니스트 남편이 만들어 놓은 지붕 아래에서 여행은커녕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우울감을 흡수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주변의 여성들이 그걸 가장 먼저 눈치챘다.

“나의 가족들은 멀리 뉴질랜드에 있었고 심리적 지지를 받는 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지. 그런데 그 자리에 내 동료들이 버티고 있었어. 내가 저녁마다 너무 많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친정 식구들에게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해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도, 그 자리에서 동료들이 지켜봐 주고 있었던 거야. 이들이 해주는 염려와 조언들을 기반으로 나는 내가 그동안 심리 조종을 당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걸 서서히 깨우치게 되었어.
그 와중에도 한 가지 반드시 지켰던 원칙은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는 규칙이었어, 아이들은 쉽게 상처 받을 수 있고 부부 문제에 아이들 잘못은 없었으니까.”

하루는 보스의 사무실에 찾아가 몇 시간이고 울다 나왔다. “이리 와, 다른 데서 울지 말고 여기서 울어.” 하며 안아주었다. 보스는 10년 전 이혼을 경험한 인생 선배였고 줄리엔이 현재 어두컴컴한 길을 매우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줄리엔이 너무 뚱뚱해져서 매력이 없다는 발언을 들은 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줄리엔의 동료들은 회사 안에서 다이어트 팀을 꾸렸다.
“그래? 우리 같이 다이어트해서 건강해지자. 할 수 있어!” 다 같이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20kg 감량에 성공한다. 응원하고 지지하며 연대해갔다.  그가 스스로의 절대가치를 알아가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나는 이 뿌듯한 전개에 그만 마음이 뭉클해져서 눈물이 차오르는 걸 겨우 참아야 했다. 여성들의 자매애와 연대의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코를 푼 후 별안간 말투를 바꿔서 줄리엔에게 찬사를 건넸다.

“브라보! 줄리엔, 당신은 철인이군요. 엄청나네요. 자그마치 20kg 감량이라니 그건 아무나 못하는 일인데요.” 과장된 표현을 하는 나를 향해 줄리엔은 활짝 웃었다. “응, 그런데 한참 있다가 그대로 다시 쪘어.”
우리 둘은 눈을 마주치며 마치 엄청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는 듯 크게 웃었다. 줄리엔과 내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미술관의 천장까지도 마치 함께 공명하는 듯했다.  

10년 전 줄리엔과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컨설턴트 계약을 받고 국제기구에 첫 출근을 한 나는 그날의 생생한 기억들을 잊지 못한다. 앞서 줄리엔은 내게 계약서 사본을 이메일로 보내준 사람이었고 인사과와 관련한 모든 행정 지원을 맡아주었다. 처음 그를 만나던 날 당시 받은 이메일과 명함에 적힌 그의 성(last name)이 달랐다. 곧이어 담담하게 설명해 준 내용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 이혼 막바지 단계라서 내 이름의 성을 법적으로 바꾸고 있어요, 이메일은 물론이고 은행계좌부터 신분증까지 전부. 아주 번거로운 일이에요.”

남편의 가족 이름을 따르던 줄리엔이 다시 본인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었던 것이다.
  
처음 줄리엔은 단기간 별거를 결정하며 그 기간 동안 부부상담과 몇 가지 회복 프로그램을 동반 참여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2주간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날, 장기간 비행으로 피곤한 줄리엔은 귀가하자마자 샤워도 하지 못하고 집 근처로 나가 남편을 만나야만 했다. 줄리엔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운 동안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던 차였다. 돌아와 보니 딸아이는 깊은 충격에 빠져 있었고 그 원인이 아빠가 건넨 말이었다는 것을 곧이어 알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가 지금 별거를 하는 이유는 너희 엄마가 지금 폐경이라서 감정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이야. 엄마는 지금 아파.”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을까봐 지금껏 최대한 조심했건만. 딸은 이미 패닉에 빠져있었다.
      
남편은 줄리엔을 집 밖으로 불러냈다. 방금 공항에 내려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집으로 돌아와 그야말로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상태인 줄리엔을 향해 통보했다.

“나는 이제 집에 들어올 거야, 별거는 끝났어. 내가 집에 돌아오는 게 싫다면 그럼 두말 않고 곧장 이혼해. 상담도 지겨워. 부부 심리상담가는 네 편만 들지.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숫제 못 믿을 사람이야.”


별거 기간 동안 줄리엔은 몇 번이고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이번엔 타이밍이 매우 안 좋았다. 체력적으로 지쳐있는 줄리엔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남편의 이기적인 모습에 신물이 났다. “당신이 기회를 발로 찼으니 이제 끝이네. 이제 진짜 이혼이야.”

이후 줄리엔에게 하루의 절반은 눈물이 차지하고 있었고 또 절반은 변호사를 상대하는 일로 채워졌다.


나는 이런 줄리엔의 회상이 뜻밖의 담담한 말투로 흘러나오는 걸 지켜보며 의아할 지경이었다. ‘상처 받지 않았을까, 힘들지 않았을까, 어떻게 이렇게 차분할 수 있나, 어떻게 가능할까?’ 내면의 힘을 회복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곧이어 그가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되찾은 마음의 힘이 어느 순간 고달픈 과정을 넘어가지 못해 쩔쩔매고 있던 미래의 나에게 적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그날 누군가 내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Yeah, come in.” 네, 들어오세요. 대답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줄리엔이었다. 내게 눈빛만을 보낸 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커다란 서류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다시 눈인사를 하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무슨 서류인가.’


봉투를 열어보니 관리자의 권력남용과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회사의 무관용 원칙이 적힌 공문이었다. 날짜를 보니 2000년대 서류였다. 줄리엔은 회사 DB를 찾고 또 찾아 서류를 발견했고 소란스럽지 않게 봉투를 전달하고는 가버렸다. 참고만 있지 말라고, 견디고만 있지 말라고, 분명히 내가 겪는 이 상황에는 다툼의 근거가 있다고 말해주려고. 나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한동안 서있었다.


우리 사무실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십 거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곧이어 이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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