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곳을 하나씩 발견해 간다
스위스의 가을은 속수무책으로 아름답다. 청량한 공기 안에서 느껴지는 연하고 은은한 산뜻함이 있다. 부드러운 천이 손등에 스치는듯한 가벼운 온화함이 제네바의 풍경 안에 가득 담겨져 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이었다.
우리를 차 안에 빼곡하게 싣고 사무총장님인 롤란도와 그의 부인 글로리아의 경차가 제네바 시내로 도착했다. 동료 제임스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들어왔다. 뉴욕에서 신주단지 모시듯 바리바리 챙겨온 짐을 일단 방에 들여놓았다. 방을 잠시동안 훑어보았다. 듣던대로 기숙사 방은 참으로 아담했다.
NGO 활동을 하며 다년간 알고지낸 나의 전임자들이 1년간 깨끗하게 사용하고 지나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불어 성경이나 댄 브라운의 소설책같은 그런 물품들을 책장에 꽂아놓고 떠난 것이다. 1년 전임자인 미셸이 두고 간 새파란 담요도 있었다.
이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직장에서 마련해주는 아늑한 숙소를 제공 받는 건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NGO는 이 숙소를 장기 임대하고 있었고 기숙사의 운영 주체가 NGO와 관련한 단체였다. 제네바엔 국제기구와 각종 NGO의 본부들, 은행, 호텔, 시계 브랜드의 온갖 단기, 장기 견습생들이 일을 하러 와서 몇달을 머물다 어딘론가 직장을 잡고 떠난다. 유럽 각지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많아서 유동 인구 규모가 꽤 크다. 저렴한 숙소를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는 한 꽤나 힘든 일인 것이다. 후에 함께 일하게 된 회사 인턴은 3개월동안 총 세 번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 그만큼 주택난이 심하다. 비싼 월세는 말 할 것도 없다.
기숙사 키를 전달받고 보니 아직 한창 오후 시간이다. 제임스는 내게 많이 피곤하지 않다면 근처 동네를 구경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고맙기도 하지.
“Oh, why not!” 난 명랑하게 따라 나섰다.
기숙사는 제네바 음악학교와 꽤 가까웠다. 살구색 건축물 창문밖으로 플룻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엔 커다랗게 Opera라고 적혀있는 그랑 떼아트흐 오페라 하우스와 제네바 대학의 사회과학대학과 법과대학 캠퍼스가 작은 분수대를 가운데에 두고 모두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거대한 공원이 나타났다. 토요일 오후는 공원 안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으로 가득 채워져 사뭇 평화롭고 단조로워보였다. 서로 뭔가를 얘기하고 있고 체스 훈수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어라서 전혀 이해하지 못 했지만 알 게 뭔가. 나른한 풍경이 그저 좋았다.
공원 입구에서 제임스가 대형 표지판에 붙어있던 각종 포스터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스위스 국민 투표 기간이라 시내 곳곳에서 온갖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면밀히 살펴 보니 커다랗게 Oui 찬성한다! 혹은 Non 반대한다! 등이 적혀 있었다, 불어로 적혀 있어서 알아 들을 게 뭔가.
알고보니 이러한 국민투표로 엄청나게 하찮고 사소한 일들이 가결되거나 부결이 되고 또한 어마어마한 논쟁과 후폭풍을 몰고오는 많은 사안들이 동일한 과정으로 다뤄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사람들을 토론하게 만든다.
공원 잔디밭을 통과해 깊숙히 들어가니 거대한 대리석 조각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조형물들은 네 명의 인물이었다. 제임스는 이들이 종교개혁을 이끈 사람들이라고 했다.
“맞아! 깔뱅! 종교 개혁을 이룬 깔뱅이잖아! 깔뱅이라고 적혀 있다, 저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 제임스가 저 위로 언덕을 가리키며 저기엔 쌩 삐에르 성당이 있다고 했다.
맙소사, 제네바는 종교개혁의 도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