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한국 사회생활의 트라우마

by Aeree Baik 애리백

NGO 본부 출근을 앞두고 난 내게 맡겨질 업무에 관련해 몇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무척 잘하고 싶었다. 실은 이 순간을 매우 고대해왔다. NGO 합격 소식 후 그간 몇 달을 구상해왔던 사안이라 이걸 실행에 옮길 생각에 약간은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제네바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박차를 가하자!


앞으로 펼쳐질 11개월 동안 내게 주어질 일은 이미 확정이 되어 있었다, 컨퍼런스 기획. 앞으로 맡을 프로젝트에 대해 다년간 NGO 활동을 하며 홍콩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참가자로서 진행자이자 기획자로서 꽤 잘 알고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한 사전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내가 선발이 될 수 있었던 충분한 근거가 되어 준 지난날의 경험과 사건들이 참 다행이었다. 내 업무에 관해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주어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한국에서는 직장 생활을 할 때 바다에서 미역을 건져내며 헤엄치듯 마구잡이로 해내야 했다. 가끔은 내가 상어밥이 되기도 했지.

내년 여름 덴마크에서 개최할 컨퍼런스의 기획 책임자가 된다. 200명 규모의 참가자들의 일주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한다. 각 대륙의 대표 구성원을 모아 팀을 꾸린다. 남미,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대표를 물색하고 선발해 준비와 기획을 리더로서 이끌어 간다. NGO의 멤버십을 관리한다. 제네바 본부에서 진행하는 운영 회의를 돕는다. 뉴스 레터를 정기적으로 발간한다, 등등이었다. 홍보와 이벤트 기획이나 기사 편집과 발행 등에 관해서는 충분히 자신 있었다.

사무총장 롤란도와 첫 출근날 업무 회의를 했다. 차근차근 짚어주는 그를 향해 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아, 물론이죠!”


어떻게든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유능했는지, 얼마나 준비된 인재인지, 이 자리에 나를 선발한 것에 한치의 후회가 없도록 얼른!


마음이 조급했고 슬슬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보다 더 빨리 끝내서 이들이 단시간에 나를 인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포부가 있었다. 금세 보여줘야지. 서둘러 성과를 만들어 내야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벌써 이렇게 잘 해낸다고, 게다가 나는 낯선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적응도 빠르다는 것을 자꾸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주가 첫 출근이지만 나는 벌써 바쁘고 이만큼이나 해냈다고! 아직 제네바 시내 지리도 잘 모르지만 이 한 몸 우리 NGO를 위한 큰 보배가 되겠다고.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옆방 동료 폴린과 캐롤은 자신들의 일을 마치고 조용히 제시간에 퇴근을 했다. 내가 사무실과 새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뭐 필요한 건 없는지, 불어 수업은 잘 시작했는지, 그리고는 본인의 업무에 관련한 사안들만 얼핏 확인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왜 다들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지? 이쯤 되면 프로필을 캐묻고, 개인사를 질문할 때가 됐는데. 왜지? 현재까지 어떤 직장에서 누구랑 일했고 얼마나 전문성을 갈고닦았는지, 거기 연봉은 얼마였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유도 심문 따위는 한 자락도 없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마찬가지였다. 의아함이 증폭되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현재 나 자신은 그 누구를 위해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있나. 어찌하여 거국적인 성과를 성급히 이루겠다며 열의를 쏟고 있는 것인가. 대체 무슨 이유로 대단한 성공을 이룩하겠다고 이런 무리수를 두고 있나. 대체 왜 나는!

예전 직장에서의 일이다. 손바닥만 한 회사에서도 정치가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서로를 관찰하고 평가하고 당사자에게 대놓고 표시하기 일쑤였다. 때로는 평지 같은, 때로는 절벽 같은 스무고개를 시시각각 긴장을 하며 넘어야 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평가하고 단정 짓는 것이 참 빨랐다.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나만 몰랐을 뿐이었다. 눈치가 느리면 타격점이 둔하다. 하지만 늦게 알아챈다고 당혹감이 덜 하지는 않았다. 네가 우리 서클에 들어올 수 있는지 없는지 감식하고 있다는 듯 사람을 여러 조건에 견주어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뭐든 꼬투리를 잡고 싶어 했다. 그 와중엔 그룹이 나뉘고 누군가는 시샘을 했다. 높낮음의 주기가 짧았다. “넌 이런쿵-저러쿵한 애야.”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듯. 나는 최대한 유연해야 했다.

한 번은 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 개편을 해 새로운 PD와 일을 하게 되었다. 결정이 났다는 소식을 오늘 방금 전해 듣고 인사라도 할 겸 그의 자리로 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같이 일하게 됐습니다. 아무개입니다.”하며 책상으로 다가가는 나를 향해 그가 고개를 돌려 대번에 쏘아붙였다. “그래서요?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 그리고는 여전히 본인의 책상 앞에 서 있는 나를 그대로 두고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며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인사를 하고 황망히 자리를 떴다.
다른 루트를 통해 알아보니 내가 마음에 안 든단다. ‘안녕하세요.’를 했을 뿐이잖아. 대체 왜? 일을 같이 시작해 보지도 않고 내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 또 다른 루트는 그게 그 사람의 ‘길들이기’ 방식이라고 했다. 결국 대답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마음에 안 든다는 반응이었다. 그 나이에 뭘 알겠느냐고.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얕을 거라고. 어쩌면 맞는 말이다. 25세의 내가 문학에 대한 조예가 얕다면 맞는 얘기일 수도 있지. 하지만 당신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다. 억울하고 막막했다. 그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첫 달에 나는 평생 처음으로 생리를 두 번 연속했다.

공적 생활과 사생활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이 괴로웠다. 허락도 없이 우리 집 거실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와 신발 자국을 남기고 가는 장면을 어지럽게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큰 틀 안에서 변하지 않는다. 약간 다른 캐릭터를 지닌 사람들은 곧바로 아웃사이더로 분류되고 꼬리표는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나의 주변을 둘러싼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길 기대했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친분을 쌓고 그걸 피의 우정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취해서 울고 불고 과거의 상처와 어려움을 공유하며 ‘우리는 이제 친한 사이’ 임을 확인한다. 서클을 형성하는 방식이 그러했다. 그런 감정의 레슬링이 내겐 기질적으로 적당하지 않았다. 오장육부를 모조리 꺼내놔야 끝날 수 있는 진실게임 같았다. 왜 다들 그렇게 진실게임을 좋아하냐 말이다. 모두들 자세가 풀어진 그 테이블에서 술도 겨우 한 잔만 마시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결국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내가 그들에겐 생경했겠지. 조금은 풀어지고 조금은 취해 흥미로운 실수를 해야 재밌을 텐데. 나를 ‘우리랑 다른 ‘까라’’라고, 이 조직에 오래 있을 애가 아니라고 했다.


나름 애를 썼다. 취한 척도 해보고 몸에서 흡수하지 못하는 술을 꽤나 마셔도 보고. 여러 가지로 방식을 택해 보았다. 선입견을 풀어보고 싶어서. 빗장이 있다면 열어보고 싶어서.


그런데 있지, 애초부터 나는 당신들과 비밀을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 그들은 이 폐쇄된 공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남의 비밀을 듣게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컸을 뿐, 상대의 비밀은 결코 존중해 주지 않았다. 곧바로 그 스토리는 또 다른 자리에서 거론되거나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지켜주지 못할 거면 묻지 말았어야지.

이 모든 것들이 서러웠다. 하지만 어쩌랴. 선배들 말대로 나는 당신들과 같은 컬러가 아닐 수 있다. 내가 호박이든, 수박이든. 혹은 미운 오리든 우아한 백조든. 사람의 컬러는 그렇게 카테고리를 나누고 엑셀 파일로 단번에 정리될 수 없는, 규정하기 쉬운 분류 체계가 아닐 거라는 믿음을, 나라도 잊지는 말자고 스스로를 향해 읊조릴 수밖에. 다들 각자의 컬러가 있는 것이고 그게 뭐 어쩌란 말인가. 오리로 판명난 백조에게 ‘너는 미운 오리다, 착각하지 마라. 너는 백조가 아니라 오리다.’라고 반복해봤자 큰 소용도 기여도 없으니 서로 각자 할 일을 하자고.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사사건건 판단하고 개입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인생을 보살피는 것보다 너를 고치는데 기여해보겠다는 각오가 대단한 듯, 나의 취향마다 어떠한 선택마다 사사건건 적의와 반감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내 취향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니까. 내 마음이 진술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의심이 한 톨도 들지 않았다. 왜냐, 그건 내 마음이니까. 그건 확실하니까. 그 누구보다도 내 마음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근거는 정확했으나 그렇다고 괴로움이 줄지는 않았다.

제네바 NGO 본부에 출근 후 매일 자리에 앉아 조용히 사각거리며 연필로 이런저런 메모를 해댔다. 너무 주옥같은 아이디어라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적다 보니 어느새 공책 한 권을 다 썼다. 뿌듯하기도 하고 나의 몰입감에 감탄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현실을 정확히 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조직이 요구하지 않은 ‘대단한 업적’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 서로의 장점을 봐주고 정해진 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차근차근 해나가도 잃을 것이 없다. 누구도 내게 지금 당장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지 않은가!


사명감과 의협심에 불타오르던 출근 첫날부터 느긋하게 이어졌던 동료들과의 대화를 생각해 보았다. 내겐 왜 그것들이 견딜 수 없었는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제는 마당에서 무를 뽑았어.'
-'공기가 축축해, 이따 비가 올 것 같으니 오늘 점심 피크닉은 깔뱅 묘지로 못 갈 것 같아.'
-'햇볕이 좋아서 오늘은 산책을 조금 할까 해. 주말에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엄청 창백하더라고.'
-'출근길에 보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제네바 분수가 호수 저편까지 물보라를 튀기더라.'

이따위 답답한 날씨 얘기를 듣느라 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상상하던 NGO 사무실의 모습은 모두들 미간 주름을 잔뜩 찡그리며 우리가 세계 평화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세상은 과연 전진하고 있는가, 따위를 매일같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대대적으로 프로젝트화 할 줄 알았다. 언제까지 날씨 얘기만 하며 세월을 허비할 것인가. 조바심이 났다. 난 잘하고 싶었던 것이다. 속이 탔다.

그로부터 3주 뒤 난 아침 출근을 하며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어제 해가 오후 4시에 졌어요, 아무리 그래도 밤이 너무 길지 않나요? 누군가 기숙사 주방에 이케아 와인따개를 두고 갔길래 와인을 한병 땄어요. 친구들과 다 나누어 마셨는데도 아직도 초저녁이더라고요. 대체 여름엔 해가 몇 시에 지나요?"
10월의 제네바는 가을로 한창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3주 만에 나는 이 우중충한 유럽에, 느리게 가는 시계에 적응을 했다.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호수의 수면이 반짝이는 걸 마주하며 공원의 사계절을 관찰해도 우리는 낙오되지 않았고 도산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책을 썼고 외국어를 공부하며 정년퇴직 준비를 했고 일은 계획대로 모두 잘 굴러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당시 동료들은 그런 나의 조바심을 알고도 모두 태연히 모른 척해주었다는 것을.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왔다.


제네바 레만 호수의 분수, 저 멀리 스위스 주라 산맥이 보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8화 드디어 NGO 첫 출근, 스위스 도착 이틀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