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역사 공부가 필요했다, 근현대사 (1)

국제기구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말야

by Aeree Baik 애리백

라마단(아랍어: رمضان)이 끝난 직후 무슬림 동료들은 우리 기구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그야말로 모든이들이 함께 즐기기 위해 모였다. 세계기상기구(WMO)의 카페테리아는 전면으로는 탁 트인 하늘과 산과 호수가 한 눈에 보이고 측면으로는 커다란 공원이 있어 전망이 좋다고 소문난 곳이다. 이곳이 더할나위 없이 근사하게 꾸며졌고 식탁은 중동의 소품들로 데코레이션이 되어 있었다. 중동의 물건들은 모양이나 색깔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여 공간을 통해 빛이 쏟아졌다. 공예품이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우리 국의 인물들도 호스트가 되어 마치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하는 것처럼 입구에 서서 사람들에게 라마단을 소개하고 동선을 고려하여 노련하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설탕이 범벅이 되어 끈적이는 디저트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하, 중동의 과자는 이런 맛이구나! 말랑말랑한 터키쉬 딜라이트도 가득 있었다. 저 뽀얀 것에서 장미향이 났다.


쫄깃하고 달콤한 터키쉬 딜라이트


국제기구에서 처음 인턴십을 하는 나로서는 많은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나를 제네바로 이끈 NGO도, 거주하고 있던 기숙사에서도 온갖 국적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해야 하지만 이런 풍경은 차원이 다른 스토리였다. 유엔의 회원국이 193개국이고 바티칸에서도 제네바에 대표를 두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매일같이 일상을 함께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총천연 컬러와 같은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 다양성을 다루는 일이었다.

“아, 오마르! 오늘 오마르도 이 행사의 공동 호스트였어요?”


내가 알고 있는 동료 중 가장 젠틀한 오마르, 직위가 꽤 높은 분인데 아침마다 팀 커피 타임을 함께 하며 조금씩 친밀도를 높이던 인물이다. 은발의 중년 남성인 오마르와 처음 통성명을 할 때 이상하게 그의 평온한 말투와 표정에 관심이 갔다. ‘모로코의 왕자님인가? 이름이 오마르라니. TV 만화 <시간 탐험대>에 나오던 오마르 왕자, 마치 실성한 것처럼 웃고 다니던 오마르 왕자와 이름이 똑같잖아! 하하하’ 마음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를 대했으나 그가 정말로 귀족일 줄은 전혀 몰랐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쩐지 기품있던 그의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오마르는 모로코의 왕자는 아니었지만 이날 조끼까지 정장 수트를 풀세트로 갖추어 입고 누구보다 안정된 제스처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벌써 몇년째 연례 행사로 치르고 있는 이벤트라 오마르는 매우 능숙한 호스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내가 아는 파키스탄 동료와, 이란 동료와, 인도네시아 동료와, 수단 동료들도 그 대열에 함께 있었다. 오호, 저분들도 모두 무슬림이구나! 그랬구나. 내가 눈치도 못챌만큼 조용히 그렇게 해가 떠있는동안 모두들 갈증과 고통을 감당하며 금식을 했었구나.


이집트의 모자이크 램프, 색상이 화려하다



무슬림이라고 하면 알카에다, 탈레반 등 당시 주요 뉴스로 오르내리던 제한된 단어들만을 은근히 떠올리던 시기였다. 나는 사실상 지리적인 위치를 칭하는 ‘중동 지역’에 대해서도, 무슬림이라는 종교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겨우 그거였다. 내가 얼마나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얼마나 편협하게 뭘 판단하겠다고 나섰는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것은 도덕적인 아쉬움보다는 스스로의 무식함을 적나라하게 확인한 후 얼굴이 화끈거리는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거리에서 동양인들을 발견하면 묻지도 않고 중국 사람으로 여긴다던가, 아시아인들은 모두들 중국어를 구사하는 줄 알고 무조건 ‘니하오’하고 말을 거는 것과 내 이 조악한 지식이 다를 바 무언가. 아시아인들은 모두들 불교 신자인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라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동양 정서와는 맞지 않을 거라 추측했다. 난 크리스천인데? 한국에 메가 쳐치가 얼마나 많은데! 응?
(특정 순복음 교회는 미국으로 수출이 되기까지 했지 않은가.)

무슬림 동료들이 초청한 그 근사한 자리에, 모두들기꺼이 응하여 와주었다. 라마단을 무사히 마치고 함께 식사를 드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슬림 동료들과 이들의 축하자리를 함께 하는 것, 우리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신과 교류하고 그의 생각을 묻고 또 때가 되면 서로의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주는 것과 다를 바 무어랴.

다양한 국적의, 매우 다른 종교적 성향으로 살고 있는 인물들을 대할 때 내가 그들을 어떤 태도로 맞이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들이 마음대로 나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고 원했던만큼에 미처 도달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이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국제기구 인턴십을 하며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사하라 북단과 남단을 구별한다. 정서와 정치 상황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는 프랑스령이었기에 그쪽 출신 동료들은 불어를 구사했다. 또한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국가들도 언어권의 구분이 달랐다. 아프리카 국가 안에서도 영국령이었던 국가들과 프랑스령이었던 국가들의 구별이 확실했고 일하는 방식도 달라야했다.

아침마다 함께 티타임을 하는 우리 국의 동료 중 한 인물은 한 번 토론을 시작하면 그 누구도 언변으로 그를 이기지 못했는데, 그의 출신국가는 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 이름이었다. 부르키나 파소 Burkina Faso. 대체 아프리카 대륙 어디메쯤 있는 나라일까? 금시초문의 국가명을 어디한번 찾아보려고 세계지도를 검색해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았다. 몇개의 생소한 나라명이 보였다.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말리 Mali, 말리라고는 뮤지션 밥 말리밖에 모르는 내가 말리부터, 르완다까지 지도를 보며 하나씩 훑어보았다. 올림픽 개회식 선수 입장 순서에서 귀기울여 들었으니 망정이지 모르는 국가명이 서너개쯤 되었다. 나미비아 Namibia와 보스와나 Botswana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국가명이었다.
‘티타임 때 무식이 탄로나지 않도록 어색한 미소를 최대한 유지해야겠군.’


아프리카 대륙, ‘아프리카’는 나라 이름이 아니다.



콩고는 나라가 두 개였다. 콩고 공화국République du Congo과 콩고 민주 공화국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엄연히 다른 두 나라였다. 두 나라를 지칭할 때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콩고 공화국은 수도 이름을 콕 찍어 ‘브라자빌 콩고’라고 불렀다. 이곳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었고, 콩고 민주 공화국은 벨기에의 지배로부터 1960년에 독립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을 만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이후 대답이 ‘코리아’라고 나오면 “North or South?“라고 묻는 것도 비슷한 이치였다. 자신들이 아는 코리아는 분명히 다른 두 개의 코리아니까. 내가 북한 사람처럼 보여서 묻는 게 아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를 보니 서구 강대국들이 자로 잰듯 그어놓은 국경이 약간의 무례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별안간 나는 이물적인 기시감에 휩싸였다. 내가 왜 이렇게 근/현대사에 무지한가 이상한 마음이 드는 걸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프리카 뿐 아니라 아시아나 남미의 근대사에 관해서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들은 풍월이라고는 다 영화에서 본 내용들이다. 르완다의 내전, 식민 지배 시절 인도차이나의 연인,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에서 초원을 여행하며 스토리텔링을 하던 미국인, 등.

하지만 케냐가 언제 영국으로부터 분리가 되었는지, 프랑스가 점령했던 나라들이 최근까지도 겪어야 했던 식민지 후의 역사, 아프리카에선 왜 허구헌날 내전인가, 이 모든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 별안간 당혹스러웠다. 유엔 국제기구에서 일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근/현대사에 실질적 역사맹이라는 사실이.

이스라엘과 분쟁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그리고 중국과 갈등을 계속하고 있는 대만이 유엔 회원국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고! 실제로 대만에 큰 태풍이 상륙하여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세계기상기구(WMO)는 ‘대만’이라는 ‘허가받지 못한’ 국가명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저 중국 남부 지역 어디쯤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외교적 분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팔레스타인은 국제회의에서 ‘옵저버’ 신분으로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선거에서 투표권도 없고 발언권도 없다. 그것도 다른 국가들이 결의를 해주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역사와 정치에 문외한인 나라는 인물은 갈 길이 멀었다.

길에서 동양 사람을 보면 ‘니하오!’하는 서양인들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되었다. 나도 그만큼 무식하거든. 자, 자웅을 겨뤄보자!

내게도 비슷한 상황이 주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옆방에 새로 들어온 기숙생을 보고 ‘어, 당신은 아르메니아 사람이군요!’하고 콕 찍어 알아맞출리 만무하지 않은가. 새로 시작한 인턴에게 ‘너는 아버지가 시리아인, 엄마가 프랑스인이니?’ 작두 탄듯 추측할 수 있기나 한가.
이쯤에서 나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자각은 다양한 동료들과 업무를 할 때도, 기숙사 친구들과 토론을 할 때도 불현듯 튀어나왔다. 근현대사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역시, 책을 파고 들어가는 정공법은 내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나만의 역사 공부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시대성과 정서를 함께 읽을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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