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나는 지금 우아하고 위엄있게 나의 길을 찾는다

자족하는 방식을 만들어가기

by Aeree Baik 애리백

무급 인턴십의 나날들은 계속되고 있었다. 국제기구는 매우 화려하고 반짝이는, 보기에만 아름다운 빛깔의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익지 않은 살구는 보기에만 예뻤지 단맛, 쓴맛, 신맛을 두루 갖춘 그런 맛이었다. 성실하게 근무해도 취업이 보장되기는커녕 오히려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그렇다고 불성실하게 일하기엔 이제 겨우 임시방편으로 그럴듯하게 덮어놓은 나의 실력이 동료들 앞에서 손쉽게 들통이 났다. 뼈를 깎으며 열심히 일해도 어차피 ‘무급’ 인턴십이다. 장기간 근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키워주는’ 제도도 아니다. 참으로 심란한 일이었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기구 밀집 지역에서 가장 의기양양하게 유엔 뱃지를 목에 걸고 다니는 부류는 젊은 인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불과 몇달 뒤에 어깨가 축 쳐져서 매우 피곤한 얼굴로 트램에 몸을 싣고 퇴근을 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자신만만하던 모습의 인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한다.
‘너도 힘드니? 기숙사에 가서 파스타를 잔뜩 삶아 먹으렴.’

유엔 산하 국제기구에서의 인턴십은 내게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혼신을 힘을 다하면 뒷모습을 금세 보였다. 인턴들이 의기투합하여 기획안을 제출하고 곧 성과를 내려고 하면 주변의 팀들이 무임승차를 시도했다. 마음에서 갈등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서 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나라는 한 인간의 실적이 어딘가 세계기상기구(WMO)의 아카이브 사무소에 기록으로라도 남을까. 단 한 줄이라도? 한국에서 온 무명의 인간은 이토록 어설픈 모습으로 자그마치 11개월의 무급 인터십을 완성하고 그저 유유히 공기처럼 자취도 없이 이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유럽에서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비단 ‘경험을 위해’ 혹은 ‘이력서에 화려한 프로필 한 줄을 올리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여기기에는 금전적인 비용이 무척이나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동안 모아 둔 돈은 정확히 계산해서 빠듯하게 살 수 있을 만큼만 소분하여 살림살이를 운용하고 있었다. 많은 것들은 자본의 문제였다. 금전적으로 예산이 충분하면 나는 꽤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엔 국제기구에서의 경험은 만인이 인정하는 희소성을 갖춘 프로필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무엇? 국제기구 취업.

그랬다. 정확히 ‘빛이 좋은 개살구’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는 딱이었다. 단맛에 쉽게 현혹되지 말고, 신맛에 쉽게 포기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나의 길을 닦아야 한다. 결단코 절대적인 것은 없지만, 한가지는 반드시 내가 혼자 해내야 하는 무엇이 있었다. 나의 마음을 매일 붙들어 매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흔들리지 말자. 나는 이 경험이 공기처럼 흔적도, 자취도, 소리도 없이 사라지게 그저 놔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매일 지속했다.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숙명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침착하게 성숙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살구야, 빨리 좀 익을래?



함부로 내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은 무언가 일을 성사시키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도 않지만 매우 필수적인 일이었다. 깨끗하게 씻고, 셔츠와 자켓과 펜슬 스커트를 갑옷처럼 차려입고 매일 출근을 하며 내 마음을 단속했다. 지치거나 좌절하지 말자고. 나는 지금 우아하고 위엄있게 나의 길을 찾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전히 빠듯한 용돈을 모아 여행을 다니고, 일요일엔 무료 미술관에 가고, 평화로운 공원과 새파란 호수를 산책했다. 영위하던 많은 일들을 숨을 고르며 지속했다. 독일의 동베를린에서는 길고 긴 여행 일기를 썼고, 프랑스 보르도에서는 메독의 와인을 마시며 잔디밭을 밟고 다니며 곧이어 론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도를 했다.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지만 나는 그 많은 스토리들을 기록하고 또 감상했다. 비록 내가 쓰고 내가 읽는 글들이지만 나는 매우 충성도가 높은 나만의 독자였다. 그때 생각했다. 언젠가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내가 가져갈 무언가 한 가지는 건졌다. 그래, 나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막막함을 감당한다는 것은 얌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과는 꽤 다른 방식의 일이었다. 내 안의 부정성을 다루는 일은 매우 적극성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마치 보약을 먹을 때 다짐하는 그 마음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토록 쓰고 맛없는 고약한 탕약을 먹어야 한다. 코를 막고 얼굴을 있는대로 찡그리며 마신다. 30일치 보약, 때로는 꾸역꾸역 구역질을 참으며 억지로 검은 물을 삼킨다. 쓴뿌리를 참아라! 매일 세 번 먹으면 난 강해질 것이다! 외쳐보자!
‘난 곧 강건해 질 것이야! 아멘.’

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게 아니면?’ 열심히 믿고 있던 사실을 비틀어보는 것도 때로는 필요했다. 맛 없는 보약, 이거 혹시 플라시보 효과 아닐까? 그냥 효험도 거의 없는 칡뿌리가 아닐까. 맛만 쓰디 쓴 것을 마시고 나서 경이로운 결과를 소망한 것은 아닐까. 의학적인 효과가 전혀 없는 쓴 물 말이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좀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는 선결조건이 있지 않던가. 그 작용이 결정적일 수는 있겠지. 구역이 나오는 그 쓴 물의 고난에 앞서 해야 하는 일이 늘 있지 않았던가.

쓰고 맛없는 보약을 마시기 전에는 반드시 세 끼 밥을 챙겨 먹게 되어 있다. 바로 여기서 지금껏 믿던 바와 다른 사실이 등장할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놓치지 않고 탕약을 복용하여 건강해진 것이 아니라, 삼시세끼를 제시간에 먹으면서 건강한 리듬과 영양소 섭취가 가능하여 체력이 월등히 나아진 것이 아닌가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공복에 끼니를 거른채 밀린 잠을 잔다거나, 주전부리로 대강 허기를 다스리며 야근을 계속 했을텐데 말이지. 냉장고에 시꺼멓게 쌓여 있는 30일치 보약 90포를 빨리 해치우기 위해서라도 밥, 국, 반찬으로 이뤄진 밥상을 차렸다. 몸을 조금 움직이고 채소를 씻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면 칙칙 폭폭 김을 뿜어내던 압력밥솥이 내게 말을 걸었다.
‘백미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쿠쿠 씨.’

가짜 약을 먹기 위해서는 삼시세끼를 섭취해야했고, 그에 앞서 몸을 움직이고, 건강을 챙기는 나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건강하기 위해 애쓰자는 다짐은 오히려 스스로를 동정할 겨를을 허락하지 않은채 삶을 지탱해주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선순환이었다. 내 안에 있는 작은 기쁨들을 발굴하고, 세끼 밥을 지어 먹듯 나의 작은 성취들을 오래오래 감상하며 뜸을 들였다.

그러던 어느날은 주변으로부터 쓴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 처자의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도 ‘무급 인턴십’을 하고 있다니, 번갈아 가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주로 나를 향해 핀잔을 주는 발언들이었다.
‘결혼은 어쩌려고 그러냐?’
‘어쩌긴요. 결혼 계획은 전혀 없는데요?’

‘꼴이 한심하다’는 구체적인 표현까지는 차마 하지 못하고 겨우 참고 있는 상대방의 점잖은 얼굴 표정이 보였다. 억울함보다는 슬쩍 웃음이 나왔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들은 나의 행보를 예민하게 지켜봤다.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하고 그리고는 곧이어 무신경하게 발언했다. 다소 격식을 차린 그들의 참견은 어김없이 같은 패턴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렇다. 타인에 대한 의견이 생기면 상대방을 반드시 면전에 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래, 애리 씨는 인턴십이 끝나면 계획은 있어요? 어쩌려고 그래요?’

어차피 나는 모범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아보면 나는 지금 현재가 가장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부모님이 격하게 반대하던 나의 첫 직장인 잡지출판사는 결국 망했고, 이후 선택한 방송국에서는 한심한 계약직 신세였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있던 기라성같은 선배들이나 제네바에 파견을 나와 근무하고 있는 한국의 정무직 공무원들이 보기에 나의 현재의 모습은 무책임과 무계획, 무대뽀의 발현이겠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려는 의도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나는 이미 이단아였다. 격차는 충분히 벌어졌고, 나는 그들을 따라잡으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자동차 기어, 2단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이들의 말이 크게 아프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나만의 삶의 방식과 행보가 내게는 은근한 힘을 키워 주어 버티는 힘을 견인하고 있었다. 충전하고 또 방전을 거듭하며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이 커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상황이 되니 오히려 그들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성장이 느려 보이는 저 사람이 누리고 있는 기쁨의 원천에 관하여 말이다. 묻기 시작했다.
“불안하지 않아요? 잘 안될지도 모르는데.”
“대책 없이 불안하죠. 될 거라고 생각하고 일단 해보는 겁니다.”
“아니 그 상황에서 왜 그렇게 여행을 다녀요?”
“구들장 지고 있으면 뭐 해결이 되나요? 여행을 가면 좋아요. 재밌고 그냥 좋아요. 정말 좋아요.”

(여행 얘기에 눈이 반짝반짝)

자족은 어려운 일상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었다. 이것은 혹자가 말하는 ‘자존감’이란 건가. ‘홀로 즐거운 사람’이 되니 많은 것들이 걸러졌다. 작은 성취들이 쌓이면 감사할 거리들이 더 많이 늘어나 곧이어 나의 노트에 적힌 글들이 긍정성으로 가득찼다. 무급 인턴십이라는 막막한 신분을 잊고 잠시 자아도취에 빠지기까지 했다. 약간의 일탈이었다.
‘잘해내고 있어! 이러다 정말 큰 일 내는 거 아냐?’

‘빛이 좋은 개살구’는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만 동시에 반작용도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나의 길을 닦아 놓아야 한다는, 일종의 ‘계몽’의 기회를 제공했다. 대안적인 만족을 찾기 시작했다. 경로를 탐색하다보면 강한 신맛의 빛 좋은 개살구를 어떻게 다룰지 방향이 생기기도 한다. 덜익은 개살구? 달콤한 시럽을 뿌려서 단맛을 배가 시키면 되지, 설탕을 잔뜩 넣고 끓여서 살구잼을 만들면 되지, 술을 넣고 살구주를 조제하면 되지, 잘게 썰어 살구청을 만들어 달달한 차를 끓여 마시면 되지. 괜찮아, 방법은 있어. 얼마든지! 아니면 일단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은가. 아직 덜익은 것 뿐.

이렇게 스스로를 부지런히 다독이며 무급 인턴십의 일상을 지속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넉넉하게 대하는 방식을 찾아가며 자족하는 삶을 찾아갈 즈음이었다. 나는 스위스 최대의 프라이빗 뱅크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준비하고 있는 세계기후변화회의에 관련해 내가 본격적으로 제안하여 우리팀에서 완성한 전시 기획안을 함께 검토해보자는 내용이었다.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면 CEO가 직접 방문하겠다는 골자였다. ‘무명’의 게다가 ‘무급’의 인턴 사원 한 명이 성공 건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횡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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