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대등한 인간의 탄생 (1)

당신과 내가 어떤 지위에 있든

by Aeree Baik 애리백

스위스 최대 프라이빗 뱅크의 CEO와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 국제기구에서 공동 개최로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사진 전시회를 제안한 상황이었고, 나는 그 전시를 총괄했던 그쪽 회사의 기획자 둘과 협의를 하던 중이었다. 전시 기획자들은 영국 런던에 있었다. 제네바로 날아온 전시 기획자들과 먼저 1차 미팅을 무사히 마쳤다. 일이 순서대로 풀리니 뭔가 기운이 좋았다. 런던과 제네바를 오가던 공동 CEO 중 한 명은 마침 제네바 업무를 보기 위해 오는 김에 이쪽으로 와보겠다는 참이었다.

이 프라이빗 뱅크는 매년 환경 관련 사진 경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진들을 한 장씩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무척이나 근사한 사진 작품들이 올해의 수상작으로 뽑혀 홍콩 등지를 다니며 월드 투어를 하고 있었다. 그쪽에서는 우리 쪽에 작품집을 보내왔다. 일단 긍정적인 표시를 받아 무척 뿌듯했다. 내가 최초로 성사시키는 굵직한 이벤트였다.

인턴십을 하는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자료를 리서치하던 중 나는 이 사진 경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준비하고 있는 세계기후변화회의에서 사진전을 개최하고 이로서 사기업과의 접점도 만들어 가면 좋을 것으로 예상을 했다. CEO가 직접 이곳을 방문하겠다는 대답을 주었을 때 나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무명의 인턴이 되어 몇 달간의 인턴 기간을 마치고 소리 없이 사라질 나의 결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아무도 성과를 소원하지 않는 인턴사원일지라도 나는 스스로의 실적을 만들고 싶었다.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보았다. 대형 컨퍼런스홀을 꽉 채운 성대한 사진 전시회가 눈에 펼쳐졌다. ‘기후변화회의를 참석하는 각국 각료들이 전시 작품들 앞에서 리셉션을 하면 딱 좋은 동선이 되겠지?’

CEO의 방문 날짜가 정해졌다. 곧이어 그날이 다가왔다. 우리 팀은 니엔지 박사의 사무실 회의용 테이블에 사람 수만큼 기획안을 올려놓고, 짧게 사전 회의를 마쳤다. 컨퍼런스 조직팀의 국장도 동석했다. 인턴으로 선발되고 난 뒤 처음 컨퍼런스팀을 모두 만난 자리에서 그를 처음 봤다. 매우 차근차근 국제회의 참여 기본 조건과 프로토콜을 설명해주시던 미국인 여성이었다.

손님은 리셉션에 도착해서 ‘애리백’이라는 인물의 내선 번호로 전화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국제기구는 보안이 철저하다. 리셉션에 게스트가 도착하면 내부 직원이 그를 데리러 리셉션에 나가야 한다. 미팅 1시간 전쯤이었다. 나는 내 사무실 전화기가 잘 작동이 되는지 확인했다. 호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내 사무실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벨이 울렸다. 수화기의 소리는 매우 잘 들렸다.

“그치만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빌딩 1층 리셉션으로 마중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함께 일하는 인턴 알리시아에게 알리고 나는 직접 리셉션에 내려갔다. 그의 도착 예상 시각 5분 전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리셉션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10분, 그리고 15분이 넘어가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입구는 한 곳뿐이다. 사무실의 알리시아를 확인해보니 전화벨이 단 1회도 울리지 않았단다. ‘길이 엇갈렸나? 아직 도착을 못 했나?’ 런던에서 비행기로 온다고 했으니 시간이 늦어질 수는 있다. 일단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 보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니엔지 박사와 우리 팀은 준비된 회의 테이블에 앉아 CEO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업무 이야기를 했다. 난 거의 30초 간격으로 재킷 왼쪽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목이 탔다. 벌써 20분이 흘렀다.

그때 니엔지 박사의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화가 왔다. 사무총장실이었다. 응? 사무총장실에서 왜 전화를 했지? 사무총장의 비서는 니엔지 박사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니엔지 박사를 찾은 게 아니었다. 사무총장실에서는 ‘애리백’이라는 인물을 찾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나는 사무총장 비서에게서 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이 미즈 애리백이군요. 현재 스위스 뱅크의 CEO 미스터 OOO씨는 사무총장실에 계십니다. 미즈 백이 7층으로 와서 그분을 회의실로 모셔가시죠.”

말끔한 수트를 차려입은 날씬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나와 함께 니엔지 박사의 사무실에 당도한 CEO는 20분을 넘어가는 시간 동안 회의실에 앉아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던 모두를 향해 다가갔다. 나는 기획안을 올려놓은 자리로 재빨리 그를 안내했다. 그가 회의 테이블에 앉았다. 이어 느긋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다소 일찍 도착해서 제네바 공항에 넉넉히 들어왔어요. WMO에 와보니 10분 이르더군요. 그래서 곧장 사무총장실로 연락을 했어요. 내가 그를 좀 알거든. 온 김에 사무총장한테 인사나 할 겸?”

스위스 은행의 CEO는 그렇게 사전 연락도 없이 사무총장실로 직통 커뮤니케이션을 했고, 상황을 모르는 우리는 리셉션과 회의실을 번갈아 오가며 뒤숭숭했던 것이다. 회의실 테이블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인물들은 흑인 남자 2인, 백인 여자 2인, 동양인 여자 1인(나)이었다. 간단한 상황설명을 마친 그는 정확히 니엔지 박사(탄자니아)와 윌리엄(케냐)에게 순차적으로 악수를 청했고, 정확히 그 둘에게만 자신의 명함을 각각 한 장씩 건넸다. 쓴웃음이 나왔다.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던 여성 3인은 모두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 것이다. 지위와 나이와 인종에 상관없이.

그는 이 자리에서 가장 나이 많이 들어 보이는 ‘남성’ 두 명에게만 예의를 차려 인사했다.

한국에서 일할 때 겪었던 일들이 순간 머릿속에 스쳤다. 얄팍한 권력을 행사하며 교묘하게 행동하던 인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떠올랐다. 나는 사전 훈련을 너무 혹독하게 받았다. 이 같은 모습을 무수히 많이 봐서 매번 쓴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 저 영국식 억양이 강한 CEO의 모습은 차라리 소탈하다 보일 정도였다. 또 남성 마초 쇼비니스트구나.


제네바의 겨울


한국에서 사회생활은 자아를 부스러뜨리는 고난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어떤 이상한 모순을 감당하는 일이었다. 연속적 굴레였다. 물레방아 같달까. 물을 길어 올려 꽉 채우면 쿵! 하고 부닥쳐서 곡식을 찧어야 한다. 쿵! 쿵! 찧고 쏟아야 한다. 숭고한 명분을 위해서나, 겸양의 미덕을 쌓아 올리기 위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윗사람’의 분이 풀릴 만큼 굴러야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먹이사슬의 맨 끝에 존재했다. 사회생활 초년생, 20대 중반의 여성의 자리는 매우 취약했다. 이들의 투명인간 취급 조건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20대의 여성이 주변에게 행사할 권력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것은 정령 지옥의 혹한기였다.

사람들은 힘에 민감했다. 권력이란 대체 뭘까.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을 다르게 대했다. 어떤 자리건 참석한 머릿수만큼의 서열이 주어졌다. 자연히 호칭이 달라졌다. 상대방의 나이와 지위 성별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달리했다. 말투도 달라진다. 힘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손짓에 분위기가 변한다. 식사메뉴도 바뀐다. 한국은 나이 서열이 중요하다. 앉은자리도 그에 따라 재배치가 된다. ‘상석’이란다.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었다. 회의 중에 높은 사람이 나타나면 하던 얘기를 멈추고 모두가 기립을 한다.

안면도 없던 사람이 준 명함 한 장이 가문의 자랑이 되기도 하고 과시욕을 발휘할 충분한 명분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잘 활용하는 인물들이 있다. 사기꾼들이다. 유명인 누구와의 친분을 들먹이면 사람들은 넘어오기 시작한다. 본인의 생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도, 권력자에게는 일단 굽신거렸다. 이런 인물들이 본인보다 약한 존재를 대할 때 충분한 예의를 갖출 리 만무하다.

내가 일하던 방송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도 소설가도 정치인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이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패널로 섭외를 받아 방송국에 오면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금세 주위를 훑어봤다. 누가 본격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지 금방 파악하고 그를 향해 한껏 미소를 지으며 얼른 다가가고 싶어 했다. 이들은 방송국 PD들과 간부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실제로 고정 프로그램을 맡기도 한다. 영업에 능통한 인간 군상들이었다.

아이템 발굴이나 취재는 작가들이 한다. 그러므로 섭외 전화를 한 나와 최초의 통화를 한다. 흥미롭게 이야기가 잘 통하고 곧 섭외에 응한 후, 일정 조율과 방송 구성에 대한 몇 통의 이메일이 사전에 오간다. 다시 전화 통화로 방송 내용에 대한 세부적인 상의를 마친다. 본인이 방송을 망칠까 봐 발음이 부정확할까 봐 걱정을 하면 나는 메인 작가로서 이들을 안심시키는 역할도 맡았다. 원고를 미리 게스트에게 송부하며 마지막 조율을 한다. 사전 조사부터 섭외, 원고를 쓰고 공유하는 일이 모두 방송 작가와 이뤄진다.

그렇지만 이들이 방송국에 도착한 시점부터 많은 것이 변한다. 섭외한 게스트가 방송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작가가 전달하면 그제서야 PD가 편성국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작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던 출연자들의 기류가 순간 달라진다. 담당 PD와 첫 대면하는 순간에. 그때부터 작가는 투명인간이 되어 어느새 커피를 전달하고 있다. 명함도 그들끼리만 주고받는다. 나는 이들의 시야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다. 기대들이 충돌한다. 그렇지만 항의와 민원은 작가들이 고스란히 받는다. 배신감이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20대 초중반에는 이 모든 상황과 환경이 상처가 되었다.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있는 존재는 포수에게도 쫓기고 맹수에게도 쫓긴다.
나를 ‘덜 중요한 존재’로 취급한 인물들을 바라보며 화가 치솟았지만 있는 힘껏 참았다. 그동안 의견 조율을 하며 내게 깍듯하던 저 인물은 처음 스튜디오 앞에 나타난 PD와 안면을 트고 싶어 애쓰는구나.


방송국은 작가에게 명함을 제작해주지 않는다. 정식 직원도 아니고 당장 다음 달에 교체가 되어도 놀랄 일이 없는 프리랜서이지 않은가. 난 그게 서러웠다. 모든 일을 맡아하지만 별안간 사라져도 모를 그런 존재. 국가가 인정하는 사회보장체계도 제공받지 못한다. 4대 보험도 안 되는, ‘작가’라는 말로만 근사한 자리.

PD들도 사람 욕심 많기는 매한가지였다. 봄 개편에 내가 맡아하던 프로그램으로 발령받은 젊은 PD는 처음 만나 통성명하는 자리에서 내게 당당히 요구했다. 내 취재수첩에 적힌 모든 연락처를 자신에게 전부 넘기라고. 1년 넘은 시간 동안 축적한 내 취재수첩에는 300인이 넘는 문화계 인사들의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반협박성 발언을 하는 그를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상대해야 했다. 이건 내 직업이니까. 그는 담당 PD니까. 담당 PD는 작가를 당장 그 자리에서 교체해도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전권을 쥐고 있으니까. 타인의 업무 수첩을 통째로 내놓으라고 황당한 요구를 하던 그는 깐깐하게 구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나는 모멸감을 느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며 나를 대놓고 마음에 안 들어하던 PD도 행동은 마찬가지였다. 작가를 ‘수족처럼 부린다’는 오만한 표현을 어떤 필더링도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그였다. 툭하면 변덕을 부리고 신경질적인 표현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디서 전해 들은 남의 사생활을 굉장한 정보인양 공유했다. 본인이 언제나 주인공이어야 해서 주변인들과 생뚱맞은 심리전을 했다. 일종의 기싸움이다. 점차 나는 하대 당하는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나는 파쇄되기 일보직전의 상황으로 떠밀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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