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 나를 위한 싸움의 방법, 미하엘라
“전쟁은 이웃사람들이 평소에 조심스럽게 숨겨두었던 가장 최악의 민낯을 이윽고 꺼내보이게 했어. 새아빠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긴 했지만 나와는 잘 지내는 편이었어.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세르비아 지역에 있다가 이웃의 밀고를 당해서 잡혀간 거야. 누명이었어. 2년 동안이나 구금을 당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
민족 간 갈등을 겪으면서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짓까지도 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꽤 잔인했다. 11살이었던 쌍둥이 자매는 그날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엄마는 겨울을 나기 위해 쌓아 놓았던 장작을 반으로 잘랐다. 여자 넷만 살고 있던 이 집에 누군가 침입한다면 반으로 잘라놓은 이 나무 장작으로 가차 없이 몽둥이질을 하겠다고, 금방 손에 닿을 곳에 가져다 놓았다. 30대 싱글맘인 자신은 전쟁 중에도 어린아이들과 어머니를 먹이고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다. 마을 어귀엔 총알 자국이 여기저기에, 터지다 만 폭탄의 잔재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5년 동안을 전쟁통의 국경지역에서 지내며 가족은 매일 공포를 경험했다. 생존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하루치를 살아야 했다. 가난했던 살림은 더욱 곤궁해져 갔다. 십 대였던 쌍둥이 자매는 엄마를 돕기 위해 온갖 심부름과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 전쟁이 끝나자 16살이 되었고 가족이 동네 식료품점에서 외상으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한계치에 다다랐다. 장부에는 엄마 레이카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지만 갚을 수가 없었다. 공과금도 밀려있었다.
엄마 레이카는 닥치는 대로 잡다한 일을 모두 맡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은행에서는 담보 없이 더 이상의 대출을 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금융권의 돈을 빌려야 했다. 제3금융권에서는 이자를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빚은 쌓여갔다. 이자를 갚아야 하는 날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가족들의 시계는 그날을 기준으로 한 달이 지나갔다. 또 한 번 대출 서류를 갱신해야 했다. 이번에는 이자율이 더 높아졌다. 적십자의 구호식품을 받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미하엘라에게는 그날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우리는 주말마다 공장에 다녔어. 공장장 아저씨는 어느 날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불러다 얘기를 했어.
‘얘들아, 정말 미안하지만 더 이상 너희들에게 줄 일이 없단다. 다음 주까지만 말미를 줄게, 그 후로는 우리 공장에 나오지 않아도 돼. 내가 너희들을 도와주겠다고 없는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제는 정말이지 시킬 일이 없어.’”
미하엘라는 공장장보다 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생각해봐. 화학 공장에서 십 대 여자 아이들이 뭘 할 수 있었겠니. 우리는 사정이 절박했지만 아저씨들만 가득한 공장 안에서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거야.”
쌍둥이 자매는 성심으로 가계 살림을 도왔지만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십 대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2-3주 동안 주유소에서 일을 했어. 내가 몹시 사고 싶은 청바지가 한벌 있었거든. 꼬깃꼬깃 돈을 모았지. 주유하는 차들의 창문을 열심히 닦았어. 일당을 받아서 한 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어. 드디어 청바지를 살 돈이 마련이 된 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니. 그런데 엄마가 나한테 그 돈을 좀 달라는 거야. 그걸로 일단 사채 빚 이자를 갚자고 하는 거야. 지난달 전기세도 밀렸지 않냐고. 그때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꾸러 다니는 중이었어. 이제는 도리가 없다면서 나더러 그 돈을 달라고..”
엄마 앞에서 미하엘라는 엉엉 울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돈을 모았는지 아냐고. 엄마 레이카에게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돈을 손에 쥐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미하엘라를 상상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말았다. 인터뷰 중에는 내 감정을 앞세우지 않겠다고 그렇게나 결심했건만. 고개를 숙였다. 그를 연민한다고 느낄까 봐 나는 미하엘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염려는 기우였다. 나를 바라보며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진 미하엘라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인생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줄 아니. 동네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어. 글쎄 거기에 진열되어 있던 너무 예쁜 청바지를 고작 몇 푼에 나한테 가져가라고 하는 거야. 단 몇 쿠나도 받지 않고 거저 가져가라고 했어. 너무 사이즈가 작아서 지금껏 아무한테도 맞지 않았대. 그게 XXS 사이즈였거든. 사람들이 내가 입은 그 청바지를 보고 ‘어머 이거 어디서 샀어? 너무 예쁘다!’하며 앞뒤로 둘러보는데 그 상황이 너무 기가 막힌 거야.”
나는 안 울은 척 코를 훌쩍이며 폭소를 터뜨렸다. “아, 세상에. 미하엘라 너 진짜 말랐어. XXS 사이즈는 너 말고 아무한테도 안 맞아.” 별안간 마음이 안도가 되어 실없는 농담이 나왔다.
“그런데.. 그게 너무 후회가 돼. 엄마 앞에서 서운해하며 울었던 거. 엄마는 얼마나 어렵게 얘기를 꺼냈겠니. 지금 생각해도 결코 자랑스러운 기억이 못 된다. 이걸 엄마랑 한 번쯤 정리하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때 일을 미처 거론하지 못했네.. 그리고 이제는 영영 기회가 없어져 버렸어..”
미하엘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소매로 눈물을 몰래 훔쳤다. 엄마 레이카와 딸 미하엘라가 얼마나 혹독한 시기를 씩씩하게 넘어왔는지 감탄이 나오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파왔다. 가족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가며 아버지 없이 두 아이를 낳은 엄마는 생존을 위해 너무 많은 부담을 꾸역꾸역 감당했다. 어지러운 시국에서도 삶의 무게를 무겁게 짊어진 한 여성이 엄마 레이카였다. 나는 그의 위대한 공로에 다시금 놀라고 있던 중이었다. 키우던 앵무새를 자전거 뒷자리에 챙겨서 늙고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난 용감한 여성 레이카, 그는 딸들에게 자아를 만들어 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음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딸들은 원망의 대상을 만들지 않았다. 자신 앞의 생을 받아 들고 본인의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고귀한 힘을 배워나갔다.
미하엘라의 쌍둥이 언니가 크로아티아에 유럽 관광객들이 모이는 해변가 리조트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집을 몇 주간을 비웠던 날이었다. 언니는 미하엘라를 불러들였다. 여기서 바다 수영도 하고, 같이 며칠 놀자고. 오염되지 않은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 해변은 찬란하게 아름답다. 청소 근로자 숙소에 담요를 빌려 놓았으니 잠은 바닥에서 자면 된다고. 얼른 고속버스를 타고 언니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숙박 손님들이 체크 아웃을 한 시간에 언니가 청소를 하러 가면 미하엘라는 언니의 숙소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곤 했다. 그때였다. 엄마한테서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네 아빠가 전화를 했어. 아빠가 너희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지금껏 엄마는 딸들에게 너희들이 가지 못할 길이 없다고 말해왔다. ‘안돼, 너희들은 그걸 할 수 없어.’ 자매는 엄마로부터 이 같은 표현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으며 성장했다. “너희들의 선택이야. 원하는 결정을 하렴.” 절대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느껴왔다. 온갖 풍파에서도 선택의 기로에서 예외 없이 엄마는 같은 조언을 했다. 원하는 대로 결정하려무나. 딸들의 자아가 어떻게 단단해지고 있는지 레이카는 알고 있었다. 오래전에 사라진 남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그대로 전했다. 딸들에게 판단을 맡겼다.
미하엘라는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언니는 청소일을 하러 나가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곧이어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설명하기 힘든 강한 감정에 압도되었다. “나는 그를 지금껏 한 번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
언니는 달랐다. 항상 생물학적 부친에 대해 호기심을 거두지 않았고. 마치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듯 마음 깊이 담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동의했어. 그를 만나기로.”
엄마는 딸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약속을 한 날, 레스토랑에서 둘은 아버지를 기다렸다. 저 멀리 그가 등장했다. 미하엘라는 놀라움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고 한다.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아름다운 신사가 위아래 하얀 수트를 차려입고 어깨에는 캐시미어 스웨터를 걸친 채 우아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성이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큰 눈, 왼쪽 이마 위로 마치 브리치를 넣은 것처럼 하얗게 샌 몇 가닥의 머리카락까지.
인사를 해왔다. 익숙한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아주 반갑게. 임신한 엄마에게 낙태를 강요했고 출생 후 흔적 없이 사라진 그 남자는 유쾌하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근사한 신사였다. “너희들은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단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자 그제야 자식들 앞에 나타난 이 신사분은 오래 전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회상했다. “얘들아, 그때 나는 신체 건강한 남성 아니었겠니. 그 당시 내가 임신시킨 여성이 총 8명이었어. 다들 곧이어 임신중절 수술은 했더만 너희 엄마만 그렇게 유난히 고집을 피웠지. 나는 이제 너희들을 돕고 싶어. 너희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해.”
남겨진 여성들이 지금껏 무서운 가난과 전쟁과 편견을 뚫고 생존하자 남자는 이토록 멋들어진 모습을 하고 나타나 한 마디를 했다.
“너희 엄마가 말하는 거 다 믿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