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앞에 놓인 문을 스스로 여닫는 것

나의 선택, 나를 위한 싸움의 방법, 미하엘라

by Aeree Baik 애리백

누가 봐도 중년의 신사는 근사했다. 아이들이 18살이 되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생물학적 부친이었다. 테이블을 지나가는 웨이트리스에게 말을 건넬 때도 상대에게서 은은한 미소를 이끌어내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소한 제스처와 말투와 눈빛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매력적이었다. 여럿이 함께한 자리에서 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주인공의 풍모였다.

남자는 그간 이탈리아에서 몇 년 동안을 일했다면서 그다지 별일이 없었다는 듯 짐짓 가벼운 대화를 풀어나갔다. 두 딸들은 매우 복잡한 감정으로 그들의 인생에 최초로 등장한 아버지를 만났고 그는 쌍둥이 딸들과 첫 만남 이후 뜸하게 연락을 해왔다.

“엄마는 그의 행동에 아무 개입을 안 했어?”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성에게 지금껏 고생해서 키운 피붙이 딸들을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었는지 나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다시 질문하고야 말았다. 잔뜩 의구심을 품은 나의 질문은 레이카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아둔한 물음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No,라고 말한 적이 없어. 일절, 단 한 번도. 우리가 기로에 놓일 때 늘 하던 이야기가 같았어. “해 봐, 기회가 있을 때 가 봐. 원하는 대로 선택해. 너 자신의 소망을 거두지 마. 포기하지 마. 네 인생이란다.” 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줬어.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가로막지 않았어. “안돼, 그건 하지 마, 가지 마. 위험해. 어려워.”라는 건 들어보지 못한 표현들이야. 지금 회상해보면 엄마는 한 30년쯤은 훌쩍 시대를 앞서갔던 것 같아. 우리 동네는 정말 보수적이거든.”

엄마 레이카가 딸들의 고민과 선택을 아무 반대 의견 없이 인정해준 덕에 자매는 지금껏 실체 없던 아버지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동안 미지로 덮여있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이 같은 기회를 숨기지도, 결정을 막지도 않고 오롯이 존중했다. 미하엘라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나는 엄마 레이카의 면모를 여러 번 감탄했지만 이 스토리가 등장할 때만큼은 그의 비범함과 현명함에 더욱 강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미심쩍은 시기에 18년 만에 나타난 남자가 자신에 대한 오해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거나 그동안의 사연을 완벽하게 왜곡할 여지가 충분했음에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누적된 자신의 공로를 한순간 훼손할 수 있을 그 남자의 말보다 딸들의 결정이 먼저였다. 그렇게 엄마는 딸들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본 미하엘라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동유럽의 가난한 마을에서 더욱 빈곤했던 가정환경에서도 미하엘라는 너무도 당당했다. 타인과 웃을 줄 알고 농담을 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 거리낌 없이 솔직할 수 있는 그의 용기가 대체 어디서 왔는지 나는 이제야 아주 손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을 부끄러운 존재라고 느낀다면 저런 미하엘라의 도도함과 자신감이 결코 있을 수 없다.

하루는 미하엘라에게 엄마가 이야기를 했다. “그 무엇이 네 인생에 놓여있든지 나는 너를 응원할 거야. 너의 삶이고 너의 결정이니까. 설사 네가 흑인 집시를 데려와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너의 선택을 믿어.”

미하엘라는 내게 덧붙여 설명했다. “동유럽에서 ‘집시’는 가장 천시받는 존재야. 집 없이 규율도 없이, 책임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아무렇게나 여기서 하룻밤 저기서 하룻밤을 살며 방랑하는 집시들 말이야. 어딜 가나 집시들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해. 게다가 크로아티아엔 아직까지도 인종차별이 공공연하고 최근 전쟁과 인종청소까지 일어난 우리 지역에서 흑인들은 더더욱 입에 거론되기도 어려운 존재야. 이런 존재를 가족으로 맞이해도 괜찮다니, 그렇다 해도 엄마는 나를 지지해준다고 하는데 그건 엄마 개인의 역사에서 맥락이 드러나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족의 강요에 의해 사랑하는 연인과 강제로 이별을 경험했던 레이카는 이후 그보다 더 지독한 일들을 겪어내야 했다. 결코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사랑 없이 억지로 결혼을 해야 했다. 이후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었다. 늙은 남자에게서 도망쳐 나왔고, 아이들을 얻은 후에는 많은 편견과 어려움을 겪었다. 필사적인 생존이었다. 레이카는 그 반대급부로 아이들에게 또렷한 자아를 심어주었고, 딸들의 앞에 놓인 관문들을 스스로 여닫게 했다.

미하엘라는 한 장면을 꺼내놓았다. “전쟁이 종결된 이후 우리가 18살, 그리고 1년 뒤 19살이 되면서 2년 동안 수많은 유럽의 NGO와 정부단체들이 크로아티아에 들어왔어. 분쟁 지역 평화 사업이나 국가 재건 사업 등으로 엄청난 숫자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밀려들어온 거야. 사람들과 함께 대단한 규모의 펀드도 함께 들어왔어. 서로 불을 지르며 싸우고 죽이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를 다시 이웃 국가로서 화해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거였어. 정부 협력 프로젝트가 정말 많았어. 유엔이나 세계 노동기구, 난민기구 등이 크로아티아에 먼저 진입했지. 그때 언니와 나는 국제 청소년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했어. 우리로서는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였기도 하고, 견문을 넓히자는 취지였어.”
“그렇게 힘들게 사는 와중에 청소년 NGO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말이야? 정말 대단하다. 두 자매가 왜 이렇게 똑똑하니.”

“그때 슬로베니아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언니가 자원활동가로 참석을 하게 되었어. 유럽 지역의 참가자들이 가득 오는 행사였어. 언니는 NGO에서 여행 경비와 약간의 체류비를 지원받아서 슬로베니아로 떠날 수 있었어. 그때 언니가 심포지엄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된 거야. 프랑스 남자였어. 슬로베니아에서 돌아와 얼마 뒤 언니가 엄마한테 남자 친구를 만나러 이탈리아로 가겠다고 한 거야. 엄마는 차마 언니에게 ‘가지 마.’ 하지 않았어, 대신 이렇게 이야기했지. “너를 내가 막을 수는 없겠지.. 대신 정말 조심해라.. 몸조심해.”
타지에서 만난 한 이방인 청년을 만나러 기차를 타고 떠나는 언니를 배웅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떨고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그걸 분명히 봤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문을 열고 나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엄마는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하지만 끝까지 막지 않았어.”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레이카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던 청년은 이후에 독일로 떠나 큰 사업을 했고,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부유해졌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높이 쌓아 놓은 부와는 상관없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하엘라는 이 이야기를 하며 인생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지 설명하고 싶어 했다. 그 교훈으로 인해 엄마는 딸들에게 어떤 강요도, 윽박도 없이 튼튼한 심지를 세워주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웠고 타인의 압력에 무너지지 않는 성인이 되도록 누구보다 강한 지렛대가 되어주었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룰을 철저하게 적용했다. 딸이 낯선 청년을 만나러 국경을 넘어 밤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겠다는 걸 막지 못할 만큼.

어릴 때부터 가족을 위해 소소한 돈벌이를 해왔던 미하엘라는 처음으로 일자리다운 직장을 얻게 된다. 22살이었다. 자원활동을 하던 그 국제 청소년 NGO였다. 지역 개발과 교육 프로그램을 여러 나라에서 수행하는 단체였다. 전쟁을 거친 후의 크로아티아엔 유럽 연합의 수많은 기관들과 연계되어 프로젝트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1년 반 동안은 나의 월급 전부가 집안의 빚을 갚는데 쓰였어. 정말 빚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신경을 쏟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벌어서 갚았어.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전쟁으로 망가진 사회가 이미 폐허였지. 장애를 입거나 마음에 상처가 가득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때 나는 두 세계를 함께 경험했던 것 같아. 우리 기구에 평화 재건 프로젝트를 맡으러 온 수많은 외국인 동료들이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더라고. 겨울이었어, 어느 날은 내게 묻더라. “미하엘라, 다음 주말에 우리랑 오스트리아 알프스로 스키 여행 갈래?” 나는 2년 가까이 모든 월급을 빚 갚는 데에 쏟아붓고는 이미 빈털터리로 하루치 용돈을 겨우 쓰고 빵 한 봉지 구입하는 것에도 고민을 하고 또 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어. 그런데 이들은 크로아티아가 너무 아름답다면서 주말마다 꼬박꼬박 해변에 다녀오더니 이번에는 스키를 타러 오스트리아까지 가자는 거야. (하하하) 그런데 나는 거기 갈 돈도 없을 뿐 아니라, 평생 스키를 단 한 번도 안 타봤잖아.”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이마를 짚었다. 평화 재건의 모습이란 이런 거다. 기껏 도와주겠다고 그 나라에 진출해서는 현지 사람들과는 무척이나 괴리된 생활을 하며 기어코 허탈감을 선사하는. 그곳의 질서를 깨 놓고 마는. 정확히 1년 뒤 이들은 크로아티아에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했고 약속된 날짜에 기해 모든 기관이 일제히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절망스러워 할 수가 없더란다. 누군가에게 그 시절은 빵 한 조각을 사기 어려웠던 시기였다는 걸 이들을 모른다. 그런 상황을 겪은 우리가 지금 나란히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있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미하엘라는 그로부터 10년 뒤 자신이 국제기구에 들어갈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국제기구의 진짜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에 대한 환상이 나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나는 이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큰 해방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미하엘라의 구술을 받아적느라 필기도구를 꼭 쥐고서 바쁘게 일하던 내 손에서 펜을 내려놓았다.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허락된 틀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공통된 사회의 룰을 정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돌연변이처럼 지내고 있는 미하엘라의 가족사를 나는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누군가의 평가와 판단을 항상 받아오면서 나는 마음의 준비를 늘 해왔던 것 같아. 자신을 위해 싸워야 하는 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싸우는 방법을 구축하는 것. 전통적인 생활양식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작은 동네에서 우리는 수많은 편견을 거듭해 겪었어, 자연히 나는 싸움에 대비하는 인간이 되었어.”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의견에 반하여 무언가를 강제하는 타인의 모든 시도를 강하게 거부할 힘을 한쪽에 비축해 놓고 살았다. 마치 보조 배터리처럼.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정치적인 피해를 입을까 봐, 타인을 위해 절대 나서지 않는 우리 직장 분위기에서 미하엘라는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전투적 자세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이웃을 위해서 쓰였다. 바로 나였다.

그날을 회상하면 나는 많은 우연을 생각한다. 나와는 근무 층수가 다른 미하엘라와 복도에서 마주칠 확률, 장기 휴가를 떠나기 직전의 그와 몇 달 만에 스칠 확률, 내가 카페테리아에 커피를 뽑으러 가다가 회사 복도에서 길을 잃을 확률, 등이다. 나는 그날 이상하게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고 어떤 목소리를 견디기 힘들어서 내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시간을 한참이나 유예하고 있던 차였다. 집중할 수 없는 나날들을 힘 없이 통과하고 있던 어느 시점이었다.

머그컵을 들고 활기찬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는 미하엘라와 만나게 되었다. 기운 없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우물쭈물 대고 있는 나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는 내게 요즘 누구와 일하고 있는지 작년부터 부서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물어왔다. 나는 오랫동안 한 부서에서 전문성을 쌓아오던 차에 별안간 다른 팀에 영입이 되었다. 그는 대번에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몇 년 전에 OO와 출장을 가서 같은 팀으로 일했었어. 그리곤 단 일주일 만에 탈이 났어. 대판 싸웠어. 그렇게 무례하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뭐가 항상 그렇게 시급한 일이라고 사람을 꼼짝 못 하게 옆에 잡아두냐고. 그 사람이 그때부터 행동을 조심하더라. 나는 일주일 만에 사달이 났는데 넌 지금까지 부서가 바뀌고 6개월을 버텼으니 애리 너는 참을성이 대단하다. 그만큼 너도 강한 거야.”

그리고 그는 한 마디를 더했다. 아주 꼭꼭 씹어먹듯이 단호하고 분명하게. “그 사람 때문에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마. 우리가 너를 알아. We know you.”

미하엘라가 다시 씩씩한 걸음으로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그 목소리는 다시 에코를 만들어서 마치 내 귀에 더 가까이 속삭이는 듯했다. ‘우리가 너를 알아. 너를 의심하지 말아.’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꼼짝없이 복도의 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그 목소리를 재생했다. 내 사무실로 돌아가기 싫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문 앞에서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떤 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서성이던 이 마음이 미하엘라의 목소리로 덮이고 있었다. “너를 의심하지 마.”

몇 주일 뒤 나는 미하엘라의 사무실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나는 맞서 싸우기로 노선을 분명히 정했노라고 그에게 알리고 싶었다. 타인의 권위와 강압 때문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말하고 싶었다. 사무실 앞에서 다시 만난 그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는 나의 고민에 매몰되어 전혀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미하엘라 너 임신했어?” 만삭이었다. “응, 곧 출산 휴가야.” 이번이 두 번째 출산이었다. 미하엘라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출산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몇 달을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나의 인터뷰이가 되어달라고 당장 청했다. 그리하여 오늘 그와 이 미술관의 카페에 앉아 유구한 역사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눈부신 날에 듣는 감탄스러운 여성 서사를 마주하며 나는 다시 한번 그가 내게 말해준 한 마디를 음미했다. “우리가 너를 알아. We know you.”

내게도 그의 어머니 레이카에게 선사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이제 우리가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곧 그에게 물었다. “앞에 놓인 기로에서 이것이 과연 가치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 정말 이겨볼 만 한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해?” 그리고 다시 연거푸 질문했다. “아무런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을 때, 너무나 마음이 절망스러울 때, 무기력한 마음이 큰 파도처럼 엄습해올 때, 매일같이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반복해야 한다니 그저 너무 지칠 때, 넌 어떻게 하겠어?” 얼른 대답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속사포로 질문을 던졌다.

곧이어 나는 미하엘라가 오랜 파트너와 그의 프랑스 본가에서 기꺼이 ‘검은 양 black sheep’이 되기를 자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를 출산하고도 결혼을 거부한 아들의 여자 친구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무척이나 다루기 어려운 존재였다. 자신의 가치를 상대의 기대에 맞추어 조정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스스로 잘라내고 포장하며 꾸미기를 거부한 미하엘라, 그의 이야기에 서서히 내게도 묘한 쾌감이 올라왔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