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스며드는 가을
깨달음이 스며드는 가을
침묵이 허락한 관찰
목요일은 침묵의 날이라 불렀다."침묵의 기간 동안 말의 가치를 다시 알게 될 것입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뱉지 않음으로써, 떠오르는 생각이 진정으로 해야 할 말인지 혹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보세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평소에 실제로 하는 말보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일지는 몰라도 침묵의 날은 내게 마음의 고요를 주는 날로 기억되었다. 오히려 항상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순간순간 나의 행동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고 느꼈다. 밥을 먹을 때 대화보다는 음식의 맛에 감각을 집중하고, 몇 번을 씹고 삼키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나의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더 평온하게 느껴진 것은 기분 탓일까. 일상에서 떠오르는 랜덤 한 생각들이 지금 현재 느끼는 감정이 아닐 수 있음을, 떠오르는 후회나 불안감은 나를 현재에서 멀어지게 하는 생각의 속임수 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침묵의 날이 허락한 관찰이 내게 가져다준 선물은 순간순간을 살아가는데 집중하자였다. 걱정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이 중헌디.
울림이 있는 가르침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들으며 기대하지 않았지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수업은 요가 철학수업이었다. 요가의 움직임을 뜻하는 아사나보다 더 중요한 근본을 다루는 것이 바로 삶에 대한 태도, 요가 철학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여정을 찾아 인도를 찾아온 우리들에게, 특히 인생의 변곡점을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요가가 말하는 삶의 태도는 울림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나간 선택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 ‘내가 한 선택이 과연 맞는 선택이었을까.' 이 생각은 항상 나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었다. 선생님께서 "우리 모두는 본인의 인생을 원하는 방식대로 이끌어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의심의 생각에 사로잡혔던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단순한 한 문장이 큰 위로로 다가온 것을 느끼는 순간, 내가 불안 속에서 나의 선택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구나를 깨달았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려놓고 또 내려놓자라고 그날 다짐하였다.
‘고통과 괴로움은 왜 우리를 갈아먹는 걸까’에서 시작된 수업에서 가장 화두가 된 것은 자아(ego 에고)였다. 부처의 말에 따르면 자아는 마치 유연한 물과 같아야 한다. 인생의 괴로움은 돌같이 딱딱한 자아가 상황과 충돌하면서 고통을 형성하고, 이러한 유연함의 결핍이 자신을 갈아먹는 요인인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주변의 환경을 받아들이기보다 부딪혀 싸우면서 마음의 짐이 하나씩 늘어난다. 살아가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였을 때, 우리는 인생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경험,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며 축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를 바라봤을 때, 행복하고 좋은 일만 소중히 여기는 것은 반쪽 인생만 소중히 여기는 태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에 일어나는 걱정이나 부정적 감정들이 피었다 지는 것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그를 통해 받아들임과 나아감을 배우는 것이 삶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인 것이다. 슬픔이와 불안이에겐 관심을 주지 않고 기쁨이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준 나를 위한 가르침이었다.
컨트롤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한 달의 프로그램 동안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을 겁니다. 어떤 날은 더 유연하게 쉽게 동작이 완성되고, 어떤 날은 뻐근하고 자세가 잘 안 되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날 이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우리 몸의 컨디션은 항상 업다운을 반복하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첫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셋째 날이 되던 날 이 말을 몸소 경험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전날 밤에 시작되었다. 저녁밥을 평소보다 조금 더 먹어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6시 수업 15분 전 아슬아슬하게 일어나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하루의 시작을 여유 없이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귀신같이 몸은 이를 바로 알아차렸다. 전날에 비해 몸이 뻣뻣했고, 평소엔 할 수 있는 자세도 괜히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어찌어찌 수업을 따라 움직이긴 하였지만, 진짜 문제는 다음 명상수업이었다. 1시간 내내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였다. 아침메뉴는 뭘까, 수업은 언제 끝날까, 다들 집중하고 있는 걸까 등등 나의 생각은 의미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구름이 낀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의 뻣뻣함이 정신의 산만함을 가져오고, 집중의 부족함이 몸의 흐트러짐으로 이어지던 그 날, 첫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랐다.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알람이 울렸다. 조금씩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이 덜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요가복을 입고,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요가홀로 향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의 공기는 상쾌했다. 항상 자리 잡는 자리에 요가 매트를 깔고, 편한 자세로 앉아서 차분히 눈을 감았다. 고요한 공간에서 들리는 숨소리에 집중하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알아차렸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하루를 시작할 마음 준비운동을 하였다. 그 순간 그 공간을 의식하면서. 몸의 알아차림을 느낀 건 아침 하타요가 수업시간이었다. 어제와 같은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볍게 느껴지던 그날, 자세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오늘 좀 잘되는데 라는 생각에 의욕이 넘치던 그날 아침, 나의 몸을 컨트롤하는 것은 나의 근육도 힘도 아닌, 평온한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도자 수업 첫 주를 보내면서 에너지를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데 집중하며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였다. 이를 통해, 정신과 생각이 맑아지고 한층 더 밝아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였다.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하는데 성의를 다하는 것이 나를 위한 길임을 깨달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찼던 인도에서의 첫 주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