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1년: 사계절을 지나며 Part 2

쉼을 선물해 준 가을

by The Life Inspired

달리기를 평생 할 순 없다. 언젠가는 쓰러지기 마련이다.


퇴사 후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쉼, 진정한 휴식이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서 10년 만에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왔다. 캐리어에 가득 쌓은 짐은 정리도 다 하지 못한 채, 새로운 집에 내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등 따시고 배부른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매일 집에서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집밥을 먹고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는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며 내가 이걸 놓치고 있었구나 문득 깨달았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이야기했을 때 걱정하실 것 같았던 부모님은, 두 팔 벌려 잘 돌아왔다고 안아주셨다.


한 달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에게는 한국에 들어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 조건 없는 사랑만을 보여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바다를 가고, 훌쩍 드라이브를 가는 나날들을 한 달간 보내며 일상에 차분함을 더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퇴사 후 1달이 넘어서까지 회사와 관련된 꿈들을 꾸었다. 노트북도 반납하고, 회사생활은 다 정리했음에도 내 머릿속이 정리되는 데 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직 생각도 전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려면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 자신을 잃은 느낌, 길을 잃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천천히 요가를 시작하고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내게 지금 필요할게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며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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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다면 무모했던 여정. 하지만 돌아보면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던 나를 찾아가는 여행. 남은 2024년의 3개월은 나다운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냥 퇴사한 년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잡념을 비우고 평온한 마음을 위해 찾아갔던 인도 리시케시에서의 요가 순례. 온전히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덕분에, 인도에서는 앞으로의 여행을 계속해나갈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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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이 끝나고 델리에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날아갔다. 유럽과 소련의 분위기를 동시에 풍기는 조지아에서는 낮선공간에서 루틴을 찾아가는 경험을 했다. 도시에서 벗어나 카즈베기라는 산악마을에 다다랐을 때, 웅장한 산맥들과 눈이 덮인 고요한 작은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3일만 예약되어 있었던 호텔을 7일로 연장해가며, 매일 아침 만년설과 일출을 함께 눈에 담고,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위로 올라가 자연을 온몸으로 느꼈다. 조지아에 가보고 싶었던 다른 도시들도 많았지만 조금 아쉽게 떠나야 다음에 돌아오고 싶을 것을 알기에, 카즈베기에서 조지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튀르키예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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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튜버들의 영상으로만 보던 이스탄불에 내가 오다니. 그것도 편도 티켓으로 하는 여행이라니. 백수의 로망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느낌을 마음껏 느끼며 아름다운 도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모스크, 예술적인 문화들이 공존하는 갤러리와 박물관 그리고 궁전까지, 다양한 맛을 자랑하는 튀르키예 음식들, 친절한 현지인 분들까지. 이스탄불에서 해협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카이막과 티를 마시며 책을 읽던 그때의 기억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찬란한 해가 지고 저녁이 내려올 때, 불이 켜지는 모스크의 빛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던 그 도시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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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가장 사랑하는 도시, 하와이였다. 천국 같은 날씨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하와이는 내게 살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시작할 때도, 마지막은 꼭 호놀룰루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와이키키 비치 근처에 한 달간 머물 장기 렌트를 구해 매일 아침 윤슬에 빛나는 운하와 산 풍경을 마주하며 눈을 뜨고, 저녁 해변을 산책하며 핑크빛 석양을 마음속에 가득 담을 수 있었다. 하와이에서는 건강한 음식을 해 먹고, 완벽한 날씨를 만끽하며 걷고, 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곳의 매력에 하루하루 더 빠져들었다. 좋아하는 동네 서점에서 발견한 책들을 해변가에서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여유로운 하와이안 음악으로 집안을 물들이는 게 보통의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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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행지인 인도에서는 몸과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에게 가벼움을 선물했다. 조지아와 튀르키예에서는 새로움을 선물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 하와이에서는 내게 행복을 선물했다. 3개월간의 세계여행은 퇴사 후 나를 돌아보며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에너지를 얻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소중한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힐링을 통해 나를 찾아가고 감사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던 퇴사 후 첫 계절, 오래도록 기억에 남길.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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