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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Apr 10. 2016

위로는 잘하는데 위로받는 방법은 모르겠어








난 참 어려. 위로해주는 방법은 능숙한데 말야

위로받는 방법을 잘 몰라서 매일 같은 길을 헤매.










어깨를 토닥여준다던지 을 살포시

포개 본다던지 을 마주치며

웃어본다던지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아본다던지.









위로해줄 대상과 방법은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어.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내가 어떻게 했을 때

그들이 안정감을 느끼는지,

마음이 수그러드는지,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라도 숨을 돌리는지,




그리고, 덜 아파하는지.








아무리 멀어도 밖으로

향하는 길을 너무나도 잘 알아.





마치 누가 표시라도 해놓은 것처럼

혹은 캄캄한 밤중 가는 길을 밝혀놓은

가로등이 환히 켜져 있는 것처럼

난 너무나도 잘 알아.





어떻게 알게 되는 건지,

과정은 몰라도 그냥 잘 알아.







그렇다면 내 마음에도 능숙해야 하는 거잖아.

위로를 받고 싶은 본인은 나 하나뿐인데

한 발짝만 나아가서 뒤를 돌면 나에게로 오는길쯤

눈감고도 찾을 수 있을 텐데,


더듬거려도 손에 잡힐 텐데도

에게로 오는 은 잘 모르겠단 말이야?








타인의 기쁨을 나의 기쁨처럼 공감하고

함께하는 방법은 잘 알아도

나의 기쁨을 건넬 줄은 몰라.






내 곁에 선 이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해어진 그림자의 귀퉁이를 

큰 노력 없이 알아채지만


내 그림자가 몇 번이고 꿰매어진 상처

더 이상 꿰맬곳이 없을 때나 눈치를 채.







그래서 어제는 기대 보기로 했어.

한 번도 기대보지 않았지만 난 지는 것 같은

이 기분을 못 나오게 밖에서 막아두고

친구에게 찾아가 기대어 보기로 했어.

5, 6시쯤 해가 뉘엿뉘엿 지려는데

퇴근하는 친구를 호출해서 강변을 걸었어.







그나저나 날씨 참 좋더라

친구와 나란히 걷기에 말야.







길 따라 주욱 걷다가 벤치가 보이길래 앉았어.

마침 하늘은 어두운 주황빛으로 물이 들고

강물은 대낮처럼 맑게 빛나더라.





친구랑 앉아서 둘 다 정면을 보고 있었고







나는 "날씨 참 기분 좋네."하고 말했어.

그리고 용기를 내서 운을 띄운거야.





"요즘 나 말이야...."






혹시 자칫 부담스러울까 봐

살짝 미소도 지어 보였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말을 내뱉어 놓고도 고민이었지.






그런데 무슨 말을 늘어놓을 틈도 없이

속에서는 수많은 글자들이 맴돌아대더니

나가겠다며 격렬히 부딪혀대는 거야.




'2년 전에, 5일 전에, 1년 전에,

7년 전에, 2달 전에, 엊그제'...





이러다 부모님이 꾼 태몽까지

거슬러가려나 싶어서 일단 입술을 앙 다물었어.






그랬더니, 막혀버리는 거야 가슴이 '.' 하고

입속을 가득 채웠던 말들은 뱃속으로 가라앉아

그 위쯤 어딘가를 '둥둥둥 둥' 울려대며.







그러더니 옅게 지어진 미소위로

좀 더 옅은 미소가 한번 더 포개지고

입이 막혀버리더라.

마치 잠금장치처럼.






한번 더 미소가 지어져 그 위로

포개지고 나면 이 기회를 놓칠까 싶어

 어딘가를 맴도는 수많은 말들 중

간신히 할 말을 붙잡아 입 밖으로 던져버렸어.






"여행이 가고 싶다."




라는 말이 튀어나와서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런데 뜬금없이 잡은 무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뻔한 말을 뱉어버린 나의 한마디에




"가자."




라고 말하는 친구의 덤덤한 표정을 보고

그만 픽 웃어버렸어.

'아, 사실 이게 아닌데.' 싶어서

부끄러워지길래 말이야.





뭐 때문에 힘든지는 말 못 했어.

근데 또 친구가 그러잖아.





"여행 가서 뭐도 먹고 뭐도 먹고

술도 마시고 얘기도 하고 (어쩌고저쩌고..)"

'난 그게 아닌데 얘는 뭐가 그렇게 신났냐.'며

좀 더 답답해진 속으로 큭큭대는데






친구도 웃더라.

웃으면서 내 팔을 '' 쳐.

그러더니 생각만 해도 신났는지

내 발을 살짝 밟는 거야.




나 신발 더러워지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그 녀석에게 눈을 흘겼는데,






"가서 다 털고 오자."

걔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더라.






그리고는 정면에 있는 강줄기를 바라보더라.

그 아이의 눈에 담긴 강줄기는 주홍 햇살을

에 안고 다정하게 물들어가고 있었어.







'빛 노을'이라고 하나?







말하자면

그런 색이었을까?








보고 있자니 햇살이 부서져서

온 사방을 둘러싸고 내 가슴에도 스며들잖아.


그래서 울컥했어.




아마 노을이 마음에 비춘거겠지.

왜, 노을은 따뜻하잖아.


소리도, 색감도.




그러고도 한참을 친구랑 같이 앉아있는데

'어디 가서 뭐하자 언제 가자 뭐 먹자.' 같은 말,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거 더 이상 말 안 해도

왠지 이미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더라.








친구가 잠시 동안 나를 멀리

여행 보내준 기분이었어.




비유하자면,





'홍콩 갔다 온 기분.'





아, 어제 노을 너무 예쁘더라.

그리고 내 친구 너무 너무 예쁘더라.



그래서 난 이제 괜찮아.





친구도 예쁘고 노을도 예뻐서

난 이제 괜찮아졌어.





지금 생각해봐도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그래서 날씨가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어느새 괜찮아졌어.

그래서 난 이제 괜찮아.






그러니 너도 그날의 우리처럼 조금은

용기를 내보는게...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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