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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Apr 12. 2016

빨라지고 느려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이에 작은 불씨가 지펴졌다.

사실 별 것도 아니었는데

불씨가 자꾸만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말도 끝까지 들어주고

잘못 말해도 한번 더 물어주고

적절한 단어를 쓰지 못해도 끄덕거리며 웃어줬는데

나이 얘기하고 시간 가는 얘기 하면

질색하는 사람들 답지 않게

이제는 눈에 불을 켜고 단점만 찾으려는 것 같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는데 소통은 점점 느려지고

세상은 점점 하나가 되는데

내 마음은 자꾸만 작아지고 한 발짝 앞도

잘 분간하지 못해 종종 실수가 된다.






'큰 물에서 놀아보자.'

꿈을 힘주어 말하던 내 친구는

고향마을로 내려와 공무원 준비를 하고







'나이 들면 예쁘게 하고 살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조금 고생해도 돼.'

하시던 우리 엄마의 오늘은 어쩐지

어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엄마의 단짝.

나의 영웅이던 우리 아빠.








장난을 좋아하던 우리 아빠는

언제부턴가 웃음을 잃었고

잃은 웃음과 함께 더 이상 영웅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돈 많이 벌어서 엄마랑 아빠랑

호강시켜드리고 자유롭게 살자.'던

나와 내 동생은 아직도 여전히 꿈이 뭔지

어지러워 잔뜩 위축된 마음으로 

움츠린 기상을 한다.









나름 빨라지는 세상에 적응하려,

더 멋진 어른이 되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봉사활동, 악기, 어학, 여행, 스포츠 등등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최대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어느 정도 배워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뒤돌아보면

일주일도 지나있고 한 달도 지나있고

그렇게 몇 번 '아차' 하면 1년도 지나가버려

어느새 나는 내가 원하던 모습의 어른과는

다른 무게감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별로 맘에 들지 않기까지 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끔은

이 세상의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나 싶어

절망스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명품을 몸에 두르지 않아도

내가 명품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아도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할 마음의 여유쯤은 넉넉하게 가진

진짜배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성인 '어른'이 되어도

성인은 영영 아니고 싶었으며

오랜만에 운동장을 뛰어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 않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려고 살아온 건 아닌데 

야속한 누군가에 의해 등이 떠밀려

'성인' 딱지를 떼고 세상에서

제일 까다로워 보이는 이들에게

통과의례처럼 여기저기 내밀었던 주민등록증은

더 이상 자랑스레 내밀 곳도 없어졌다.









친구는 애엄마가 됐고 애아빠도 됐으며

이모도 됐고 고모도 됐다.








내가 지금으로 오려고 한 게 아닌데

도대체 나의 을 떠민 게 누군지

당장 찾아가서 멱살잡이를 하지 않으면

오늘 밤은 이 안 올 것 같은 기분이라

한참을 잠자리에 누워 뒹굴대면서

괜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세상이 빠른 줄 알았으면 '좀 더 놀걸,

좀 더 공부할걸, 좀 더 과감하게 지내볼걸.'


원하지 않는 속도로 살아진다는 게

이토록 억울한 일인 줄 알았다면

'휴대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엄마 아빠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텐데' 싶다.









엄마 아빠가 내 패션을 보고 촌스럽단다.


왜 엄마 아빠 세대에 입던 옷을 입고 돌아다니느냐고 옷 좀 좋은 거

사 입으라고 잔소리하신다.






약간 억울해진 마음에

엄마 아빠 예전 사진을 봤는데






예전에 봤을 때랑은 또 다르게 예뻐 보인다.

다르게 보이는 부분은 젊음인 걸까 감각인 걸까.







심지어 나보다 엄마가 더 예뻤고

내 친구들보다 우리 아빠가 더 잘생겼다.








우리는 다 시간 속에 갇혀버린 것 같다.

인간의 생체적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무엇의 영향인지 우리의 실질적인 시간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론가 새어나간다.








유행이 돌아오면

시간도 돌아올 줄 알았는지

옷장 속에 고이 잠들던 들은

모순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색이 바래버렸다.








세상은 너무 빠르기도 하고

또 너무 느리기도 하다. 







'세계화에 발맞춰가는

적합한 인재'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외치고

이곳저곳에서 문화를 즐기고

열정 공유하려는 모임과

축제가 늘어나는데




막상 사람들은 '1인용 칸막이'가 있는

식당이 없다며 불평한다.





A와 B라는 문제에서 A를 유일한

해결책으로 피력하던 만인의 의견은

누군가의 입김 한 번에 B가 되어버리고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인터넷 안에서는

온갖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지지만

현관문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정적만이 흐른다.






세상을 현명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현명'한 일인지

세상은 아름답게 산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속도를 좀 잡을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바늘코에 꿰인 실처럼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듯 하루를 마친다.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유일하게

공평한 건 시간뿐이라지만

정말이지 나는 나의 시간을

강요당하는 모든 순간이

내일은 조금만  찾아왔으면 좋겠다.






집안의 모든 시계를 멈춰 서라도

시간을 붙잡아둘 수만 있다면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한다.'는

누군가의 다정한 말처럼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숨어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텐데.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난 아직 부족한 나이지만

세상은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이 세상과 끝없이 전투하고

굴복하지 않고 언젠가 눈을 마주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를 바라며 지금 이 시간마저도 똑딱거리는 야속한 내 방안의 시계 건전지를 빼버리고 잠에 들어야겠다.





내일 아침 모닝콜을 해줄 사람이

절실해지는 그런 깜깜한 이다.


아님, 그의 잠긴 목소리

해지고 싶어 지는 외로움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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