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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Sep 05. 2016

히키코모리.

마음, 그거 어딘가에 떨어뜨렸나 봐.











세월은 나의 주위를 몇 바퀴나 빠르게 돌았다.

주변 풍경이나 사람들이 바뀌고 내가  자리가 바뀌도록

그렇게 모든 것이 세월마냥 자연스레 흘렀고 순조로웠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머릿속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빨간 경고등 하나가 깜빡였지만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찾아볼 새도 없었고 귀찮았다.













그것을 내가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날 잊은 것인지 무엇 하나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진실을 아는 게 

어쩌면 가장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잦아졌고 이상한 곳에서 

사람들과 사소한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에서 다쳐본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종이손가락베이듯 참을 수 없이 선명한 통증.

종이에 채 베이기도 전에 데자뷰처럼 나를 애워싸는, 그런.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공기.














이 때문에 난 상처를 채 후벼 파기도 전에 

곁에 접근해 오기만 하면 날카로운 처럼

날이 섰다. 영문도 모르는 채 나에게 당하는 

그의 표정은 사뭇 흥미로웠다. 꽤나 흥미로웠다. 

악당을 응징하듯 되갚아주는 기분이었다.

정의를 수호하는 기분이 들었다. 거창했다.














그렇게 한 바탕 내게만 유리한 

'순서'를 따지고 나면 이 후련해졌고 

이 감정은 꽤나 중독적이어서 어느 순간부터인지 

누군가 나를 건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이 그저 나와 가까워지려 

조금만 다가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고 잡고 늘어지면 될 일이었다. 

그 순서를 거치고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 

진정이 되면 나는 저번보다 후련해졌다.

합리화도 쉬웠다. '나쁜 인간' 이 한마디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줬다.













예전에 친구에게 그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을 조심해. 엄한데서 상처 입고

반드시 너에게 그 상처를 되갚으려 할 거야."
















얘기는 나를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순수한 인간관계의 진리였을까?

다쳐보고 상처도 입고 눈물도 흘려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했던 조언이 사실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니, 나처럼 약해빠진 인간이라야 할 수 있는 

비겁하고 치졸한 역할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내가 했던 조언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말이란 것인지 내 마음속을 파헤쳐보지만 

잘 모르겠다. 어디가 근원인지 찾을 수가 없다. 

글쎄, 어쩌면 사람은 원래 약한 개체일지도 

모르겠다며 또다시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인간은 너무나도 약해 빠져서 늘 무언가로 끊임없이 무장을 해대.

언어, 무기, 지식, 외모, 비싼 옷, 비싼 주얼리, 비싼 차, 문신 등.

사람들이 그 갑옷들을 갖기 위해 치르는 대가에는 한도가 없지.

인간은 그런 존재인 거야. 좋은 갑옷을 갖기 위해 늘 합리화를 일삼는.

도리어 그 대가에 값어치를 매겨대는 사람을 하등 동물 취급할 뿐이지.

사람들은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 아무것에도 두려움이 없어. 

자신의 갑옷에 대한 값어치는 오로지 자신만이 매길 수 있는 거야."













과 같은 마음에 품고 기다렸다는 듯 

조금의 불편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지만 내게서 풍기는 구린내는 맡지 못한다.

너무나도 구리고 조잡한 냄새가 풍기는 

겉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내면엔 무엇인가 

대단한 가치를 품고 있는 양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으스대며 눈을 치켜뜬다. 














내 갑옷은 낡아 해진 구식이었고 빈약하다.

세련되지 못했으며 약점을 드러낸 갑옷이었다.

상대에게 눈에 뻔히 보이는 전술로 대응했고 

방어를 빙자해 그로 명분을 삼고 공격을 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을 파고들어 

내면에 도달한 이들도 있었다.



언젠가 나와 같은 갑옷을 만들어 입은 적이 있는

비슷한 상처를 입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물어보지 못했다. 



무엇을 공감했느냐며 묻지를 못했다.

스쳐가는 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잡아두지를 않았다.

누군가를 잡아두기에 나는 무력했고, 용기도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제대로 상처받은 아이 티를 냈다.

아무도 날 찾아주지 않아 어둠 속에서 

잔뜩 를 갈고 있을 때에도 

그야말로 반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이라는 것을 난 잘 안다. 

잘 알지만 내 곁에서 지쳐 떠나도 잡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한편으로 너무 괘씸하고 짜증이 났다.

나의 내면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 보고 있으면 

을 올려 부치고 싶어 지고 토악질이 났다.













그러나 나의 오만은 곧 나를 외면했으며

그 때문에 내가 만든 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만 했기 때문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난 그저 

응석받이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나는 반드시 깨달아야만 했던 것이다.

정해진 순리처럼 자연스레 깨닫게 된 것이다.














질기디 질긴 인연의 끈을 억지로 모두 잘라내고 

누군가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고 나서야 난 생각한다.

그들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두가 기피하던 

나를 위해 '연민'을 품어줬던 다정한 이였다는 것을.

그리고 난 참 이기적이고 오만하다는 것을.













이제 그들은 오로지 내 방안에만 존재한다.

내가 이 방을 나서서 세상으로 들어서면 

그는 흔적도 없이 언제 존재했냐는 듯 사라진다. 

오로지 어둠 속에 있는 나만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

처럼,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고야 만다.












이게 내가 내 방문을 닫는 이유다.

이제 난 추억과 만나기 위해 방으로 들어서고

다시 방문을 닫고 어둠에 집중한다.

현실에는 없는 그들의 흔적은 이 방안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느 때나 함께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리울 때 혼자가 되나보다.

나도 가끔 그렇게 사람이 그리워서 혼자가 된다.















곁에 전과 같은 온도 감을 두고 싶을 때, 

나는 어둠 속에서 그렇게 혼자가 된다.

완전한 세상이란 그렇게 내 방 안에만 있는 것.

이 문을 나서면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다들, 그리움을 향해 히키코모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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