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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Sep 06. 2016

어떤 길 위의 아픔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아픔, 

그리고 나는  아픔들이 아프다.











첫 번째 아픔. 


친구와 약속이 있어 옷을 갖춰 입고 집을 나왔다.

방금 내 곁을 스친 노인은 슬리퍼와 얇은 조끼, 

안에는 반팔만을 입고 바지는 낡고 해진데다 

때가 탔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저 노인 참 얇게 입었다고 

생각할 때 즈음 그가 파는 털양말이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색도 참 다양하고 두터워 보이는 게

 제법 따뜻하겠구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구입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아픔.


그 노인이 어느 가게로 불쑥 들어갔고 

사장 내외는 '죄송하다'고 반사적인 말을 건넨다.


노인은 익숙한 듯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가게를 빠져나오며 재빠르게 옆 가게로 향한다.


가게 입구에는 정수기가 놓여있고 

냉장고 안에는 오렌지 주스가 놓여있었다.


종이컵 걸이에 걸린 들은 빼곡했지만 

노인을 위해서는 하나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 가게 주인들의 심정은 이해할만하다.

그런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보았기 때문에 

꽤나 익숙한 광경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무엇인가를 팔기 위해 일부러 

거지 행색을 하고 집집을 돌며 영업 중인데도 

손님들한테 불쑥 팔 물건들을 내밀기 때문에 


그도 그런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 번째 아픔.


그 노인은 굴하지 않고 

다른 가게로 연이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듯 가게 앞에 

축화환이 줄이어 놓여있는 국숫집이었다.


문 앞에 조차 망설임이 없는 행동으로 

가게에 들어가 노인은 말없이 털양말을 내밀기 시작한다.


역시 아무도 살려고 들지 않았고,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는  또한 없다. 


노인은 가게를 나온다

들어갈 때는 망설임이 없던 노인이 

문을 나서자 잠시 주춤한다. 

무엇인가가 생각이 난 듯 잠시

자신의 털양말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노인의 걸음이 빨라진다. 









네 번째 아픔.


노인은 방향을 틀어 이제 그가 서있는 길은 

이제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골목으로 접어들고 

더 이상 상가 골목이 아니라 주택이 즐비한 

한적한 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길 가에 골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자재를 쌓아두는 짧고 막다른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에서 쥐가 두 마리 나오다가 노인을 발견하고 

멈칫하더니 노인을 향해 맹렬히 찍찍댄다.


그 쥐를 보아하니 멀리서 봐도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한 쥐는 덩치가 크고 한 쥐는 덩치가 작다


덩치가 큰 쥐는 덩치값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작은 쥐의 꼬리만 입에 물고 망부석처럼 멈춰있다.

울어대는 쥐는 조그만 쥐뿐이다. 


안절부절 이리저리 앞발을 

올려 부치고 몸통을 둘러대지만

결코 자리를 떠나거나 멀리 나가지 않고 

선 자리에서만 연신 날카로운 소리로 울부짖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치 상황이 

잠시 지속되다가 노인이 먼저 쥐를 비켜간다.

쥐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느린 걸음으로 

덩치 크고 굼뜬 쥐와 길을 무사히 건넜다.

노인 역시 곧 길 위에서 멀어져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섯 번째 아픔.


그 쥐들이 맞은편 길가의 좁은 골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노인도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들도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어쩐지 마음속에는 

그 모습들이 떠나지를 않았다. 


빠른 시간에 목격한 두 가지 일.

그날따라 나를 둘러싼 공기가 어딘지 모르게 

달랐지만 크게 별 차이는 없었다.











여섯 번째 아픔.


친구와 한참을 수다도 떨고 공부도 하고 

음료도 마시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더 오래 앉아있었을 자리지만 

그 날 따라 집으로 빨리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와서 갖고 나갔던 물건들을 차례로 

화장대에 올려두고 잠시 편의점에 들르러 나온다.


아까 양말을 팔던 노인과 쥐가 대치하던 

길을 지나쳐 코너를 돌면 편의점이 나온다. 

편의점에 들러 우유를 사고 다시 그 길을 지나치다가 

쥐들이 나온 골목을 무심코 쳐다본다.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다가 골목 쪽으로 

걸음을 옮겨 바짝 붙는다.








일곱 번째 아픔.


막다른 골목길 위에 쥐가 

희미하게 두 마리 보인다. 


나를 마주 보고 있는지 등지고 있는지 

시력이 안 좋아 흐릿하지만

어찌 됐건 사람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는 게 참 대담하구나싶다.


길가에 다니는 쥐를 가까이 볼 일이 드무니 

나를 보고도 멈춰있는 대담한 쥐들을 향해 다가간다.

가까이 가니 제법 쥐의 형체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한 마리는 덩치가 컸고 한 마리는 차이가 나게 작았다. 


작은 쥐를 사람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1학년생 정도일까?








여덟 번째 아픔.


쥐의 형체가 모두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쥐가 도망치지를 않으니

참 신기한 일이구나 싶어 를 들여다보는데 

자세히 보니 두 마리는 길 위에 누워있다.


큰 쥐는 여전히 작은 쥐의 꼬리를 물었고 작은 쥐는 

대차게 앞장을 서던 그 모습 그대로 누워있다.

같이 산책을 갔다가 피곤해서 그대로 잠든 모양이다. 


어쩜 그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지 사람들이 질색을 하는 

생쥐 두 마리가 내 눈엔 굉장히 귀여워 보였다.









아홉 번째 아픔.


쥐가 자는 모습을 처음 보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쥐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무엇인가가 생각이 난다.


어쩐지 둔해보이고 느릿느릿한 게 

의지할 데라곤 자기보다 현저히 왜소하고 

작은 쥐의 꼬리뿐이라는 듯이 

머뭇거리며 두려워 보이는 큰 쥐의 움직임.


무언가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알아채지 못했던 것, 

큰 쥐의 움직임이 생각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 쥐를 데리고 걸음을 맞춰 사람이 바쁘게 오고 

가는 길 위를 천천히 걸어가던 작은 쥐.

그 쥐 두 마리는 결코 재빠르게 뛰거나 

한 마리가 앞서가는 법이 없이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었다.


차도 다니고 사람들도 다니는 길목에서 

그렇게 천천히 가는 쥐는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그 모습을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머리를 

무엇인가로 얻어맞은 듯이 아찔해졌다.









마지막의 아픔.


쥐 두 마리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쥐 두 마리는 털끝에 윤기가 없었고, 메말라 보였다.

한참이나 굶은 듯 가죽이 뼈에 달라붙어 앙상하게 드러났다.

가까이 가니 아까는 못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코앞까지 다가가도 

움직이지를 않았기 때문에 

손끝으로 작은 쥐를 만졌더니,

분명 몇 시간 전엔 움직이던 쥐를 봤는데 

그 대차던 생명력은 온데간데없고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큰 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덩치가 커 보였는데 앞장서던 쥐가 

너무 작아 커 보였던 건지 가까이 가니

역시 마찬가지로 앙상했고 크기도 작았다

두 마리 사후 경직이 어느 정도 진행된 듯

이리저리 움직여봐도 팔과 다리가 동시에 딸려왔다. 

앙상하고 작은 나뭇가지 같았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쥐는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큰 쪽이 어미던 작은 쪽이 어미던 둘 중에 하나는 어미 같았다.


눈이 먼 쪽을 이끌고 어디를 가려던 걸까? 

모를 일이지만 슬픈 일이었다.


그 작은 생명도 살고자 노력할 뿐만 아니라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쥐들은 그 길 위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큰 쥐를 버리고 도망가면 먹을 것쯤은

 얼마든 구해먹을 수 있는 작은 쥐는 

큰 쥐를 버리고 가지 않았고 

자기보다 수백 배는 몸집이 커다란 

사람에게 이를 드러내며 대들었다.

꽤나 필사적으로 대들었었다.


나는 나보다 몸집이 약 1.5배 정도 

동물도 무섭고 겁이나는데 말이다.


꽤나 필사적이었고 그 울음소리는 

내가 선 곳까지 들렸을 정도로 날카로웠었다.


그런데 왜 죽어있는 것일까. 

그토록 살고자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째서 죽어 누워있는 것일까.


왜 하필 이 죽음목격자는 나인 것이며 어쩜 그렇게 

길을 건너던 모습 그대로 꼬리를 물고 죽어 있을까.

마치, 내가 살인의 용의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비닐봉지를 구해 그 쥐들을 

옮겨 담았고 근처 콘크리트가 미처 

덮이지 못한 흙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두 마리를 묻고 한참을 발을 떼지 못한 채 

길 위에서 눈물만 뚝뚝 흘렸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말을 하니 

'큰 쥐가 엄마 쥐였나 보다'라고 하시더니 

이내 말이 없으셨다.


아픈 일이었다.

배운대로 더럽거나

하찮지가 않았다


어쩌면 사람보다 나았다. 

나보다도 훌륭했고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용감했다.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쥐가 후에 벌어질 비극을 모르고 

한참이나 자기보다 덩치가 큰 쥐를 이끌고 길을 건넜을 때

그 쥐의 최후의 행보를 목격한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다.


나, 그리고 허름한 옷차림의 

털양말을 파는 노인

우리 단 둘 뿐이었다. 


남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길. 

그 길은 아픈 길이었다.


눈에 띄기 힘든 아픔이지만

나에게는 매번 마음 한 켠을 

쓰라리게 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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