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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Nov 27. 2016

분별 습관

그 가시적인 악의성.


나에게는 이상한 분별 습관이 있다.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서 행해지는 일이라 가끔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고 나면 수긍해버리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일이다.



분별 습관,

사람의 분별 습관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은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인지하고 있는 채로 '일어나기도' 한다.


분별 습관에는 긍정적인 방향과 다소 부정적인 방향으로 주체를 이끄는,

중간은 항상 없고 서로 자기주장을 하는 

두 극과 극의 이분법적인 성격만이 존재하는데

사실, 나를 빗대어서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사람들이 분별 습관을 갖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류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썩 긍정적인 의미는 갖지 못하는듯싶다.


예를 들면, '친모(親母)적 성향'의 분별 습관이 있는 사람의 경우

타인의 모성적인 부분에 감동하게 되고 이끌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평상시에 자신에게 끊임없이 대시하던 이성에게 호기심은 일지만

마음은 가지 않았다고 해도 그저 '작은' 계기만으로 방향 전환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야 마는 그런 분별 습관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단순히 모성애적인 부분에서만 감정의 동요가 이는 것이 아니라 

계기가 주어지는 동시에 그 외적인 것들은 부수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고 만다.


너무나도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으로 감정의 전환이 일어나,

그 주체가 되는 자신마저도 혼돈의 늪에 빠져버리고 마는 위험부담이 있지만


어찌 되었건 계기가 된 작은 스파크로 인해 추구하던 이상향과는 멀리 

저 멀리 어딘가로 떨어져 나가 쭈그러져 처박혀버린 자신의 자아를 설득하기 위해

도리어 제 자신이 고생을 자처하며 나서기도 할 정도로 그 '분별 습관'이란 놈은 무서운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팔다리가 고생한다는 옛말보다 더 무서운 것이 그것이다.


팔다리는 인체에 있어 상대적인 개념에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또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것이기도 하나,

우리의 인체를 행동하게 하는 우두머리인 머리가 일단 지 마음대로 특정 목적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 그 즉시, 스릴러 영화 속에 나오는 좀비라도 된 듯 타인의 눈에 '삐그덕'거리는 움직임으로 비쳐버리게 하는,


이렇듯 '분별 습관'이라는 놈은 자주 중심을 잃고 

아주 위험하고 찌질한 '고정관념'으로 작용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 

세상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만큼이나 다양한 가닥들이 존재하겠지만

나에게도 내 몸의 컨트롤 타워인 '뇌(腦)'만 알고 있는 분별 습관이 하나 있다.


무관심하거나 혹은 그렇게 밉고 싫던 사람도 해당 특성만 갖춘다면,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욱 이끌리듯 저절로 떠올리고 그리워하게 되는 그런 것.


그것은 바로 '책 선물'이다.


내 몸의 실세는 웬일인지 '책 선물'을 해준 대상에 

유독 집요하게 집착하는 변태적 페티쉬를 가지고 있어서


밉고 싫고 그와 나누는 공기마저도 차단하고 싶던 

극단적 성격의 증오마저도 그 대상으로부터 일단 책 선물이라는 것을 

받고 나면 마치 그 증오의 뿌리가 사실은 '강한 애정'이었던 것 마냥 순화되거나 

한술 더 떠 직전까지의 무시무시하고 부정(不正)적인 행보를 

원천적으로 부정(否定)하고 가던 길을 막아 강제로 돌려세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미련을 떨고 궁상스럽게 만들고는 한다.


사실 그런 의도를 위해 하는 것이 책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책이라는 것은 특정인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그의 가치관을 나누고픈 울림에서 시작된 '작은 머뭇거림'이기도 하니

책 선물이라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물을 받는 대상에게 깊게 각인되어 그의 세계관 어딘가의 지분을 

단단히 한몫 차지하고픈 의지의 반영 같은 것.


사람이라는 개체는 너무나도 불완전하고 미성숙해서 끊임없이 시험에 들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늘 한 번도 완성된 적이 없는 사고(思考)의 지도를 가지고 

캄캄하고 광활한 우주 어딘가를 독립적으로 표류하고 있는 존재하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큰 가닥에서는 '사고'라는 것 자체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고 

작은 가닥에서 보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 

인간이라는 특정 개체의 사고 속에 자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인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특권이 주어지는 매우 편파적이고

특별한 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늘 대상이 주는 '메시지'에 잠식되어 버리고 마는 위태로운 존재인 나는

책 선물을 받고 나면 화들짝 놀라는 동시에 어쩐지 입술을 씰룩거리며 기쁨을 드러내곤 한다.

수많은 선물 중에 책을 선물하기로 결심한 대상의 작은 야망과 의지가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선물이지만 나는 그 불순한 의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타인의 마음속에 깊게 침투하여 치명적이고 싶은 욕망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의 표명이기도 하며

자아실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밥 한 술'이라고 생각이 되어 

그가 떠먹여 주는 영양분이 오롯이 나에게 흡수되기를 어느새 소망하게 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저 그가 바라는 대로, 그가 기획한 대로, 그가 느낀 대로, 전해주고 싶은 대로 

나의 마음에 와서 녹아 수많은 생각들과 배경지식들과 함께 흘러 주는 것을 나는 간절하게 원하고는 한다.


책 선물은 참 영악하고 근사한 일이다.

누군가의 자양분이 되기를 자처한 일.


그저 책만을 선물하는데서 행위에 대한 정의가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먼저 읽어보다 문득 그 사람을 떠올렸다'라는 달콤함도 가져다주는 일.


받게 되는 사람을 위해 나의 생명력 중 적게는 1시간, 

많게는 여러 아침을 꼬박 새워서라도 기꺼이 희생하는 일.



내가 받은 한 책의 겉 껍데기에 이런 요약글이 있다.


변하고 사라질 것들에 너무 무거운 마음을 올려놓지 않으려 한다.

내일이면 변할지도 모를 사랑을 너무 절실하게 전하지 않기로 한다.

아주 오래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이야기는 꼬깃꼬깃 접어서 

열리지 않는 서랍에 넣어두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치는 걸음을 문득 멈추고 

조금 건조하고 조금 낮은 목소리로 

가벼운 인사만을 건네기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워지고 미안해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리석도록 깊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말이다. 


생각이 나서, 라는 그 말은


- 황경신, 생각이 나서 -



나는 그렇게 '영악하고 치밀하게 타인의 마음에 침투하고픈 누군가'의 '책 선물'을 

잔인하게 우대하고 심각하게 편애하는 끔찍한 분별 습관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글을 마치며 

약 4~5년 전 선물하는 날짜도 정확히 기재하지 않고 주는 이의 신원 역시 적지 않은, 

받는 이의 이름과 작은 글귀만이 적힌 채,

덤덤한 손위에 놓여 예측 가능한 대상을 통해 내게 도달한 이 영악한 책에 담겨있는, 

선물의 의도를 적나라하게 담아 붓펜으로 휘갈겨 적은 친구의 짧은 편지를 적어두고자 한다.


책을 통해 위로받고

책을 통해 사람을 보고

책을 통해 신을 알고

책을 통해 꿈을 꾸고


어쩌다 느껴지는 전율,


그걸로 하루가 다르기두 하고 

몇 년이 다르기도 했음 하다.


나는 그 아이의 작은 악의적 의도로 매우 위태로웠을지도 모를 지금을 

참으로 눈부시고 아름답게도 만끽하고 있다.


수평면이 끝없이 펼쳐진 넓고 거대한 바다 위에 

잘게 흩뿌려진 햇살의 조각들처럼 눈부신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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