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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Nov 29. 2016

손가락질하지 말아요


당신도 아파본 적이 있잖아요.



어느 기분 좋은 날에 멋지게 차려입고 밖으로 나가 

얼굴을 감싸 오는 낮의 바람과 오후의 햇살을 한껏 느끼고 있는데,

별안간 '윙'하고 귀 근처를 울리는 재빠른 날갯짓소리에 소름이 돋아 

두 손을 허공에 허우적허우적.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허우적대다 

'따. 끔'하고 쏘여본 적 당신도 있잖아요.






한참 전에 당신과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어요.


당신은 길거리에 지나가는 이들을 보며 주먹을 둥글게 말아 쥔 채 

검지 손가락만을 구부정하게 뻗어 그 갈고리 같은 손가락 끝으로

열심히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까딱, 까딱' 하는 습관이 있잖아요.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쟤 봐. 너무 뚱뚱하다. 저 사람 봐. 옷 더럽게 못 입는다.

우와, 저 사람은 또 어떻고 다리통 봐, 들었나 봐. 표정 봐 울 것 같다." 였어요.



그 순간 나는 당신과 함께 걷고 싶지 않아졌어요.

 당신 곁에서 도망치고 싶어 쓴웃음을 지으며 

'그만해'라며 당신을 말렸는데 

분명히 나의 의도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마치 나의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또다시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까딱, 까딱'







한 번은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다가 

당신의 손가락 갈고리질에 걸린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 

그 사람이 당신에게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왔던 적이 있었지요.


당신은 그 사람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와중에도 

시선을 피하며 구시렁대기 시작했어요.


"와, 쟤 봐. 쟤 온다. 쟤 이리로 오는데 어쩌지?

 모르는 척해야겠다. 귀는 더럽게 밝네."








그 사람은 당신을 향해 곧은 걸음으로 걸어와 똑바로 서서 

어느 손가락 하나 뻗치지 않은 정갈한 손으로 뒷짐을 지고는 

얼굴을 한쪽으로 살짝 숙이며 "저기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하고 물었지요.


그러더니 덧붙여 묻기를,

"저를 향해 계속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웃으며 말하시던데 

혹시 그게 제가 직접적으로 들으면 기분이 상할만한 일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직접적으로 말해주시겠어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혼자서 곁눈질하고 큭큭대는게 

당사자의 입장에서 영 불편해서요."

라며 낮은 목소리로 당신에게 올바른 얘기를 했지요.









당신은 그 손가락 끝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참 열심히도 생채기 내더니

갈고리질에 걸려 아팠던 누군가가 앞에 서서 

'하고 싶은 얘기가 무어냐'라고 물으니

입을 꾹 다물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대며 

입술을 '쪼삣 쪼삣' 삐죽 대기 시작했어요.


나는 아픈 사람이 와서 '그러시면 사람이 다치니 그만하라'라고 

말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지만

당신은 '갈고리질에 걸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냐? 

내 잘못이야?'라는 표정을 하고 그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댔어요.








당신이 끝까지 다친 이에게 사과를 안 하길래 

내가 대신하여 그에게 사과를 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이건 어떻게 봐도 저희가 잘못을 한 거니까 

더 이상 기분 안 상하시게 사과 먼저 드릴게요."


그러자 그가 나에게 이렇게 대답을 해왔지요.


"아니요. 친구분이 사과하실 일은 아니신 것 같아요.

본인이 저렇게 딴청을 하고 계시니까 뭐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렇지만 저분 말이에요. 

되게 세상을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시네요.

아까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킥킥대시더니 

나오실 때 거울 안 보고 나오시나 봐요."









나는 사실은 그의 말에 웃음이 터질뻔했어요.

만일 내가 당신이 그를 보고 무어라 했는지 몰랐다면 

그 말을 듣고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를 보고 무어라 얘기하며 갈고리질을 해댔는지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이고, 제대로 걸렸구나. 큰일이다 엄청 혼나겠는데' 싶었지요.


그렇지만 그분이 한 말에 얼굴이 

울그락 불 그락 해진 당신을 위해 꾹 참았어요.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손가락질하는 거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남에게 갈고리질 할 때는 

손가락 하나만 펴서 찔러대면 되지만

자신이 당할 때는 피부 깊숙이 

파고드는 바늘에 더 아프고 괴로운 거라니까요.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부릅뜨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 소리하려는 당신의 팔을 붙잡고

그분께 인사하고 인파를 헤쳐가며 

길을 지나왔는데 당신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너는 내가 그 꼴을 당하고 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넌 친구한테 그런 취급하는 사람을 보고 화도 안나? 

내가 너였다면... 나는... 가서 확..ㄱ"









그리고 당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을 했지요.


"네가 누군가를 다치게 했는데 

너는 그게 장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그건 고의인 거야.

반대로 네가 당하면 그렇게 아파서 

소리를 내지 않고 못 버티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어?

너는 네가 등신 같은 짓을 하고 다녀도 

네가 잘했다고 말하는 친구가 좋니?

나는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눈치 보지 않고 

'네가 잘못됐다'라고 말하는 친구가 좋아."









그 일이 있고 난 후,

당신과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았었지요.

당신이 사람들에게 '걔는 잘못됐다. 

착한 척은 혼자 다하고 똑똑한 척도 혼자 다하는 게 같잖다.'라고 

내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에요. 

역시나 갈고리질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지요.


그렇게 몇 년간을 연락을 안 하고 지냈는데

갑자기 연락을 해왔었지요?

"얼굴이나 보자"며 말이에요.









그런데 나는 당신이 하나도 아쉽지가 않아요.

당신은 이 사람 저 사람의 험담을 하고 다니다 

결국 다 떨어져 나가 지금 아무도 곁에 없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나는 그중에 '생각 좀 한다는 사람'들만 남아 

잔잔하고 든든하니 참 마음 좋은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말이에요.

당신은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갈고리처럼 사람들을 향해 뻗어대는 

그 손가락을 가끔은 말없이 감싸 잡아줄 친구도 생겼으면 좋겠고요.


나는 그러지 못해 미안했어요. 

나는 갈고리질에 잘 걸리는 사람이지, 

그것마저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닌가 봐요.


그래도 말이에요.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저기,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내요.

이왕이면 이번 겨울에는 벙어리장갑을 선물 받았으면 좋겠네요.


그럼, 잘 지내요. 몸 건강하게 안녕(安寧)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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